1. 4.3 사건에서 남로당은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음

-그전부터 3.1운동 기념식 때 아이가 치여 죽은 것, 일제 경찰을 그대로 등용한 것, 미군정시기 제주도가 기근이었던 것이 남로당이라는 기폭제를 만나면서 터짐, 물론 이렇게 반발한 사람은 제주도민의 대다수는 아니었으나 다수가 미군정에 분노했다는 것은 5.10 총선 때 제주도 선거구 2개가 박살난 것으로 드러남

2. 군과 남로당이 자체적으로 합의할려고 했으나 미군정이 깽판침

-남로당의 김달삼과 군의 김익렬은 도민의 피해가 계속되자 합의를 하고 있었음, 그러나 남로당을 완전히 박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미군정이 김익렬 자르고 우익인 사람을 군에 앉힘->이는 군의 제주도민 학살로 이어짐

3. 군경, 남로당 둘다 도민을 학살함 그러나 군경이 더 강조됨

그 이유는 일단 숫자임. 남로당은 1700명 군경은 1만명 정도임. 게다가 산간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해안 5km로 옮기지 않으면 남로당으로 간주하고 다 죽인다고 했음. 그러나 해안지역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나면서 제주도민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음

4. 이승만의 개입

이승만이 도민 학살을 아주 직접적으로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미를 보면 도민 학살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들어있음. 서북청년당을 제주도로 파견하고, 예비검속을 지지시함(예비검속은 싹수가 보이는 놈들 다 잡아다가 족치는 거,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비슷함). 이래서 4.3 보고서에는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됐고 대부분의 중산간마을이 불에 타는 등 글자 그대로 ‘초토화’ 됐다. 초토화의 책임은 당시 정부와 주한미군사고문단에게 있다고 판단된다.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군 통수권자이며, 미군은 당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기 때 문이다."라고 서술함. 심지어 미군은 우익청년들이 일으킨 오라리 방화사건을 좌익이 일으킨 것 처럼 조작하기도 했음. 심지어 제주도를 'red island'라고 부르기까지 함.

5. 제주도민

제주도민들이 좌익으로 몰려 죽자, 한국전쟁 초기에는 제주도민들이 나서서 우리가 빨갱이가 아님을 보여주자 하면서 해병대에 다수가 입대함. 그래서 제주도에 육군은 없어도 해병대는 있음. 그리고 80년대까지 4.3 사건에서 가족이 죽은 것을 말하지 못함. 말하면 빨갱이 가족이라고 엮어지니까. 그러다가 민주화 이후에야 제대로 말할 수 있었음. 그리고 4.3사건때문에 많은 제주도민이 4.3에 제사를 지냄.

6. 결론

제주도민에게 있어서 미군정과 이승만이 공산화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켰다는 것을 빼놓고는 미군정과 이승만은 최악이었음. 그렇다고 해서 남로당은 선이 아님. 굳이 따지면 최악에 매우 가까운 차악이랄까. 총선때 제주도에서 민주당이 대승하는 것을 보면 노무현 시기의 4.3보고서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함.

(참고로 제주도민이었는데 대학다니느라 서울로 올라온 청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