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는 없었고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길을 나섰다... 하는, 삼류도 아닌 사류 개그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줄거리가 떠올랐다. 내가 그러고 보니까 학창 시절에 소설을 취미로 썼던 것이 떠오른다.

 

하여튼 우리는 신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신포중앙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줄이 병원 문 바깥까지 늘어서 있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의료 기술과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북한 의사들의 면허를 인정하기 무리라고 판단한 한국 정부는 북한 의사들의 면허를 잠정 정지시킨 다음 갱신 절차를 밟게 하고 있다. 북한 의사들이 떠난 자리에는 남한 출신의 공중보건의 몇 명이 채우고 있었다. 1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일행의 차례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식중독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약을 먹고 하룻밤만 푹 쉬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여정을 계속하는 건 무리다. 신포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여관을 찾았다. '갑산댁 여관'이라고 벽에 커다랗게 써놓은 건물이 보여, 거기로 들어갔다. 가장 넓은 방을 잡았고, 주인 아주머니께 불을 따뜻하게 때 달라고 했다. 일행은 배탈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없고, 나 혼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여관 밖으로 나왔다. 마침 여관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다.

 

"어서 오시라우, 동무."

이곳 토박이인 듯한 젊은 남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컵라면 하나와, 내일 일행들에게 줄 레토르트 죽과, 내일 여행하면서 먹을 간식들을 골랐다. 계산을 하고 나서, 식탁에 앉아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여관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한때 짝사랑했던 여자애의 얼굴처럼 동그란 보름달을 봤다. 여관방에 다시 들어와서는 집에서 가져온 화툿장을 가지고 일행과 함께 민화투를 쳤다. 돈은 걸지 않고 그냥 점수 싸움만 했다. 시계가 11시를 가리키자, 요를 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주인 아주머니께 여기에 전자레인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께선 내가 들고 있던 봉투 안의 즉석 죽을 보고, 이게 웬 죽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어제 일행들이 배탈이 났기에 사온 것이라고 대답했고, 아주머니께서는 즉석보다는 직접 끓인 게 더 낫다면서 직접 채소 든 죽을 끓여주셨다. 우리는 아주머니의 인심에 감동하며 죽을 먹었다. '갑산댁'으로 추정되는 그 아주머니께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방삯을 내었다.

 

일행들의 몸 상태를 생각해,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이제 다시 북동쪽으로 갈 때이다. 신포IC에 진입해서, 북청 방향으로 운전대를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