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의 대일청구권 협상결과는 알다시피 최악에 가까운 편이었지. 근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 
1960년대에는 미국의 압력에 바탕한,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도에서, 한국이 쩔쩔매는 한일협상을 맞이했지.

아마도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일협상에 매우 유리한 시기라면, 
1950년대 후반기 이시바시 탄잔(친한파) 내각과 기시 노부스케(지한파) 내각 시절이다.

주일본 이스라엘 대사를 초청해(1950년대에 이미 주일 이스라엘 대사관 있었다) 
동서독 양국과 이스라엘의 손실보상 및 손해배상의 경험담을 문답한 뒤에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중재아래 양국이 신임하는 특사들을 파견해 한일적십자회담과 특사회담을 병행하되 
 일제시대 피해자들의 권익대표 총회(징용자, 피폭자, 전범, 한센병환자, 위안부, 독립운동가, 농어민)도 구성해야 했다.

물론 현실은 안타깝게도 마귀할배로 변한 이승만 대통령이 다스리던 시절이니 잘 될 리가 없지. 
그러니까 이승만은 협상과정에서 아예 배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어쨌든 ICRC 중재로 이뤄지는 한일적십자회담과 특사회담에서 반드시 관철해야 할게 있는데....

(1) 일본의 체면을 고려해 민감한 낱말들(손해배상/손실보상)을 배제하고, 
가장 먼저 [한일화해협정]을 발효한 다음에 한일양국 정식수교 다음 해에 맞춰 
일본 내각총리대신의 1월 1일 심야(0시0분)성명을 NHK라디오방송으로 발표해 따로 사죄하면 되지 않겠는가?

(2) 1947년도 일본 제국의회의 전비지출 총결산은 1조 엔에 근접했고, 
1956년도 일본 중앙정부의 매년 정기예산은 1조 엔을 돌파했다.
근데 1940년대 후반기의 일본 암시장 환율은 1달러=1000엔이라 약 20억 달러쯤 될 게다.

1980년대 일본 정기예산은 10조엔은 가볍게 넘었고, 2000년대부터 100조엔 초과했지?
내 생각엔 미국 달러화가 아니라 일본 엔화로 지급하되 
현찰의 즉시 지급이 아닌 장부상의 지출.송금.입금.인출로 해치우면 되겠다.

(3) [한일화해협정]에서 청산자금(settlement) 명목으로 
2조 엔을 20년간 무상제공해 분할지급하되, 

예를 들면 신한은행처럼 재일교포 한인들이 운영하는 
일본 국내의 은행 법인에 개설한 한국 재무부의 예금계좌에 장부상으로 입금하면서
한국 정부는 한국 회사들의 수입신청을 예약해 일본산 공산품의 수입에 지출한다.

그림 일본의 주식회사들과 협동조합들은 일본정부의 우회보조금(장부상 지급된 대일청구권 손실보상금)
을 꼬박꼬박 받아먹으며 한국으로 수출을 늘리니까 이익이잖아. 
한국은 (장부상 송금한 엔화로 수입한) 일본산 생산재를 경제개발에 효율적으로 투자하면 되거든?

(4) 그 대신에 한국 정부는 일제시대 조선인들의 친일행적과 전범행위를 통감하여
양안 중국(대만 중화민국/대륙 공산중국)에 대한 손해배상을 한국 정부가 전액지불을 확약한다.

어차피 대만 중화민국은 한국 경제의 현실을 잘아니까 당분간 내버려뒀을 테고, 
공산중국은 1990년대에야 협상 창구를 마련하면서 내놓으라고 요구할 테니까
그때맞춰 양안 중국의 동시 수교를 요구하는 3자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면 그만이지.
물론 지급해도 현물(한국산 수출품)로만 가격환산분량만큼 배달해 주면 끝나거든.

(5) 추가로 한국 재무부에 20억 USA 달러를 20년간 분할지급 신용대출(연이율 10%)로 지급한다.
즉 해마다 1억 달러씩 20년간 빌리고 20년간 갚으면 되는 것임.

(6) 일제시대 피해자들은 일일이 조사하는 것부터 골치가 아프니까 속편하게 
[1조 엔=1조 원]÷[1930년도 이전 출생자의 총인구 1000만명]=1명당 지급액 10만원을 계산하고,


1930년 이전 출생한 자연인에게 그냥 평등하게 연금국채를 교부하고,
만50세부터 사망년까지 매년 연이율 30% 이자만 지급하면 그만이다. 

일제시대에 매우 큰 손실을 입은 법인에게는 일시불 형태가 아니라
수출장려금, 가격보조금, 채무탕감, 불하대금으로 전환해서 청산하면 그만이다. 

(7) [한일화해협정]은 원폭피폭, BC급 조선인 전범, 한센병환자, 위안부에 대한 
손실보상 청구는 다루지 않고, 해당대표 권익총회와 별도로 양자협상하라는 단서조항을 달아놓는다.


(8) 참고로 1930년대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하아바라 협정( https://en.wikipedia.org/wiki/Haavara_Agreement )과
의 내용을 토대로 고심끝에 써놓았다. 기실 이들 2개 협정의 내용이 한일화해에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