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깨문: 사장님은 전두환 때 대체 어떻게 어린시절을 견디신 거에요?

             학교에서 맨날 반공교육에, 선생님한테 전두환찬양 못외우면 맞고

             집에오면 착취당하는 아버지 맞이하면서 온가족은 어두컴컴한 집 ...이하략


섹스트라: ...............................................


야씨발, 전두환시대를 요즘 어떻게 교육시킨거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험자 반박들어간다.

1. 79년에서 81년 사이에 놀란게, 거지가 없어졌다. 진짜 구걸하는 사람 줄었었다.

   78-79년 사이는 문앞에서 "10원가져가!(어머니) vs 100원주셈(거지)" 이런 실랑이 꽤 봤다.

   이게 삼청교육대 때문인가? 사회정화운동때문인가? 는 몰랐지만, 1개 주민으로서 좋아한거는

   100원달라고 행패부리는 거지가 없어서 좋았다. 나같은 애는 100원 사수한다고 거지한테 개기면 맞았고,

   조모님 그거보시고 열받아 다듬이방망이 갖고오셔서 구출해 주시던 시대였다.

   참고로 그 때 짜장면이 300-500원 했을 때임.


2. 강남 내려가기 전인데, 그 때 서울에 거지는 있어도, 일반인 거주레벨 보면 집은 90년대 보는 다세대주택 같은 곳이 많았다.

   90년대와 차이가 있다면, 70년대에는 그런 집에서 1가구가 조부조모님 모시고 살았었다.

   70년대, 그 덕에 닭날개는 우리차지였다. 다리, 몸통은 조부모님/부모님 선, 

   날개랑 조부조모님 자비와 아량으로 내려온 고기가 우리몫 ㅠㅠ 


3. 79년 기준으로 1주1번 닭고기(생선이야 2일1회 올랐다만, 이 땐 진짜 생선 쌌다.), 

   편육이나 겨우 노인정 따라가서 얻어먹었고, 돼지고기가 1달에 1번이었나? 국 말고 구워먹는거.

   그러던게 83년 가니까 매일 반찬에 오르게 되더라. 조부조모님이 82년 처음에 "이거 낭비아니냐" 

   하고 걱정하시던 기억이다. 그리고 3개월에 한번먹던 소고기가 1달에 1번까지 줄어들더라.


4. 83년부터 마이카시대 란 말이 돌게되더라.

   참고로 80년만 해도 차타는 집은 갑부집이었다. 코티나 마크V같으면 진짜...;;;

   85년 되면 웬만한 집들은 거의 중형차급으로 갈아타더라. 포니2가 84년에 서민차로 추락(...)
   85-86에 궁미낙교에서 "우리집 차있다!" 하고 집 차자랑 할 때 포니나오면 다들 비웃었다(...)

   라기보다는 집에 차 있는게 "당연" 한 레벨까지 접근한거지. 단 80년부터 6년만에말야.


5. 집 쉽게 사시더라.

    쌤쑹다니셨는데, 그 때야 삼성 강하다 볼 수 없던 곳이었지. 회사하면 현대최강이었으니까.

    대충 그 때 급여가 얼추 85만원 받으시던거 기억하는데, 개포, 둔촌동 주공이(올라서) 2300만이었음.

    일요일밤에 김병조 배추머리가 복부인 타령할 때, 아버지어머니 힘합쳐서 82-84 사이에 3채 추가하시더라.

     어머니도 그 시절 그리워하신다. 그럴 때 안올거라고


6. 2주에 한번은 서울에서 청평양평으로 가족놀이로 놀러다녔다. 

    여름에는 휴가받아서 동해안 방갈로 하나 전세내고 4박5일 여행도 가능했음.

     그렇게 여행하는 비용이 23만원정도 들었다 하셨던가? 9급공무원 월급으로 봐도 비싸다보긴 힘들었다.


7. 일반 서민들은 글쎄? 정권의 통제를 느끼고 살기 힘들었다 리얼.

    대학가서 운동권 들어간 놈들 제외하면 매우 자유스럽고 살기 좋았던 때로 기억들 할거야.

    박정희때 진짜...이 때랑 비교하면 말이지. 당장 통금이 없어졌었으니까.

    통금때 아버지 안들어오시면 조부모님에 어머니까지 전화통앞에서 대기타셨다.

    나도 새벽2시까지 그 때 처음 깨어있었는데, 아버지 전화가 드디어 울렸고, 아버지 조부님한테 대박 깨지시고(...)

    조모님이랑 어머니랑 나 붙잡고 우시더라. 사실 나중에 아버지 회상인데 박정희때 잘못 붙들려가서 병신되는 경우 진짜 있었거든.

    전두환 때 이런 것은 없어졌다고 하시더라. 공단은 운동권애들 위장취업 하면서 시끄러워졌고.


8. 공단다니던 주위 사람들도 현장에서 관리자 승진 잘 되어 금방 집 사더라.

    밑에서 위로 승진도 참 빠르던 때였다. 공원으로 살던 고종사촌누나도 81-83년 일하고 서울에 집사더라.

    재형저축이 정말 도움되었던 시기야. 그 누나 나중에 우리집보다 부동산테크 잘타서 지금도 더 부자다. 

    얻어먹으러 갈 때 정말 도움되는 누나다. 지금도 귀여워(...)해주니. ㅋㅋㅋ 


9. 반공교육 하면 반공표어나 반공글짓기 둘중 하나가 메인인데,

    a. 지역대회 입상할 만한 놈 몇놈 골라서 글짓기시키고 표어는 반 전원에게 모집한다.

    b. 성적 좋아서 글 잘 쓰는놈은 피곤한 주간 된다. 83년하고 86년인가는 열받았다.

        6월시즌 (6.25/현충일)에만 글 쓰면 되는데, 소련에서 일내는 통에 글쓰라고 지시내려오는통에

        본의아니게 반공정신이 투철해지더라. (ㅆㅂ 소련놈들 때문에 또 써야돼....)

    전교 애들 전부 동원해서 북조선식 구호외치기는 1변인가 있었다. 83년 007기 사건때. 

     그 때 아버지 돌아가신 후배놈 하나 기억나는데, 그 애 동 전체서 신경 써 준 기억이다.


결론: 전두환시대를 무슨 북조선 인민수준으로 교육하고 있나???

         어린 나이에 기억하기에도, 80년대가 제일 밝았어. 90년대 이후로 어두워지던 느낌이지.

         사람들도 보면, 80년대 사람들은 적어도 "염치" 를 알았음. 시비 안가리고 목소리 큰놈은 경찰도 상놈취급함.



P.S: 84년에 성내동 물난리때 내려온 북한쌀로 밥 지어먹었다.

       조부님 묵언... 조모님 말씀은 "이게 쌀 맞냐? 안남미도 안이럴건데...?"
       어머님: "그래도 쌀이니까 내일 방앗간 갖고가겠습니다."
       다음날, 조모님, 어어니, 나 (누나는 힘약하다고 열외) 방앗간에 갔다.
       우리랑 같은 생각을, 쌀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고있었다.  

        2시간동안 진심 누나랑 동생이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참고로 성내동 사람들하고 쌀 교환해온거다. 그것도 1:3 비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