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2월 2일

청일전쟁의 마지막 지상전이 일본의 승리로 끝남. 남은 것은 청나라의 장식용 수군 뿐.

항복 및 시모노세키 조약은 4월 17일이었지만, 이 때 이미 청일전쟁은 끝난 상황.


조선은 이 소식을 듣자 마자 바로 영은문/삼전도비 자빠뜨리며 청나라와의 사대관계 청산을 선언함.

뭐 조선의 역사학계엔 이 청산시점에 여러가지 해석이 있던데, 영은문/삼전도비 자빠링 자체가 사대관계 청산이라고 봐야지.

만약 청일전쟁에서 청군이 압승하고 일본제국군이 궤멸당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니까. 그 두 물건이 바로 사대관계의 굴욕적 상징이었으니.


1895년 10월 8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썅년 민자영을 일본 칼잡이가 처단.

동학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임오군란 하나만으로도 이년은 조기숙이 쳐빨던 공덕비에 빡빡 비벼죽였어야 할 썅년이었지.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국가의 지도자라는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도주. 주권 포기 행위지?ㅋ

궁극썅년 민자영이 처단당하자 그년의 기둥서방이었던 자신도 처단당할까봐 쫄았나보지.


1897년 2월 20일

러시아 공관으로 도주했던 고종, 경복궁도 아닌 경운궁으로 슬며시 복귀.

이런 쪼발린 새끼를 왕이라고 쳐빠는 역사학자들은 도데체ㅋ


1897년 8월 14일 (고종 34년 8월 14일)

뜬금없이 새 연호로써 광무(光武) 선포. 

http://sillok.history.go.kr/id/kza_13408014_001

광무가 대한제국의 연호라는 얘기가 아직도 돌아다니던데, 실상은 가출했다 돌아와 쪽팔린 고종의 정신승리용 연호였을 뿐.

조선왕조 실록을 보면 고종 34년 8월 13일에 연호 정하라고 뜬금없이 지랄해서 14일에 심순택이 광무/경덕 두개를 가져오니까 광무를 골라 선포한 거였음. 만약 뒤에서 따로 논의를 진행했었다면 애초에 연호를 자기가 정해왔겠지.


1897년 10월 12일 (고종 34년 10월 12일)

전날까지 요상한 쌩쑈를 벌이더니, 이 날 드디어 고종 황제 참칭-뒈진 민자영 황후 참칭-아들은 황태자 참칭.

http://sillok.history.go.kr/id/kza_13410012_001

명성황후는 뒈지고 나서 한참 후 이 때 붙여준 명칭이었음. 

애초에 청나라 똘마니국 왕의 예편네가 황후가 될 수가 없지. 청나라 황제가 민자영 데려다 NTR 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은ㅋ

민비는 멸칭이 아니라, 민자영이 살아있던 시절의 원래 명칭일 뿐.


1897년 10월 13일 (고종 34년 10월 13일)

국호는 대한, 공식적으로 황제 참칭 선포

http://sillok.history.go.kr/id/kza_13410013_002

대한이란 명칭은 마한, 진한, 변한을 통합해 만들어진 삼한이 크다 뭐 이런 뜻이라나ㅋㅋㅋ

이 날 실록의 황제 참칭 사유를 들어보면


"흐... 흥! 누... 누가 황제따위 하고 싶은줄 알아? 

훗! 나... 난 싫지만 니들이 자꾸 그렇게 요구하니까 하... 할 수 없지. 화... 황제가 되어줄 수 밖에!"


사상 초유의 츤데레 황제 탄생이라니ㅋㅋㅋ

아니 최소한 망국의 위기 속에서 황제를 선언하려면 최소한 제국 선포의 의도라도 좀 그럴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보다시피 대한제국 선포는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아무 상관 없는, 고종의 정신승리극이었을 뿐임.

저 시점에선 이미 청나라는 존재감 자체가 없었고, 일본과 러시아 둘 중에 누구한테 대줄까 어장관리하는 상황이었으니.

솔직히 실록을 쳐보면... 고교 시절 배웠던 역사가 판타지로 보일 지경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