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민족지로서 활약한 것은 맞음. 그러나 이것이 김성수나 방응모가 한 것이 아님->동아일보 본사에는 기자가 7명에 불과했고, 지방 지국의 통신원들이 취재하여 기사를 송달했음


2. 일제가 편천한 고등경찰용어사전에서는 "조선의 공산주의는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라고 서술되어 있음


3.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대중적 지명도가 높았던 인물은 김일성, 여운형, 이승만. 김일성은 30년대 중후반 무장투쟁으로 유명해졌으며, 북한 지역에 조직들을 장악해갔음. 이승만은 미군정의 도움을 받아 VOA에 자주 출연했고, 여운형은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음. 김규식, 김구와 같은 임정 세력은 암암리에 활약했기에 대중적 지명도가 높지 않았음. 박헌영은 벽돌공장 노동자로 위장하여 살았으니 말할 것도 없고.


4.  김구는 반공주의적 성향이 강했음. 김구가 파견한 백의사가 평양의 3.1절 기념식에서 수류탄을 던질 정도로.


5.  민주의원 의장 이승만이 미국의 극우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돌베어에게 운산금광채굴권을 팔겠다고 제안->그러나 그당시 이승만은 아무 실권도 없었음,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면 팔아먹겠다고 말함->이것이 신문에 공개되어 여론이 악화되었고, 이승만은 민주의원 의장직에서 밀려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