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다음 순간, 도둑들의 뒷모습만 노려보던 디아나의 눈앞에 뜬금없이 높은 짚더미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비-!!!”

“어-?!?!”

멈춰서기에는 이미 늦었고, 상대는 품에 안고 있는 짚더미가 시야를 막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태. 그러니 당연히 정면충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어우···.”

“으으으···.”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두꺼운 짚더미가 완충 작용을 해주었다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워낙 세게 부딪힌 터라 양쪽 다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개구리처럼 엎어진 채 눈앞에서 통통 튀고 있는 별을 세고 있던 디아나는 불현듯 가슴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을 느꼈다.

‘···?’

규칙적으로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온기. 이게 뭔가 싶었던 디아나의 몽롱한 머리가 간신히 답을 추리해냈다.

‘콧김?’

그렇다면 지금 자신은 누군가의 얼굴을 가슴으로 짓누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화들짝 놀란 디아나의 정신이 삽시간에 맑아졌다.

‘...이, 이, 이런 미친!!!’

상대의 얼굴을 가슴으로 짓누르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자신의 허리를 두른 상대의 팔. 게다가 자신의 허벅지 안쪽에서 느껴지는 상대의 무릎.

“꺄아아아악!!!”

“우아아아악!!!”

소스라치게 놀란 디아나가 새된 비명을 내지른 순간, 상대의 비명 역시 그 위에 겹쳐졌다.

“디, 디아나?”

“꺄아아아!!!”

“잠-?! 진정해! 비켜 줄-”

“꺄아아아악!!!”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상대방의 목소리.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디아나는 사력을 다해 몸부림을 쳐 상대의 몸 위에서 도망쳐 내려왔다.

“허억... 허억...”

어찌나 놀랐는지 생전 처음으로 계집애처럼 양다리를 모으고 얌전히 앉은 채. 디아나는 열이 오르는 뺨에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저, 저기, 괜, 괜찮아?”

“어, 어?”

더듬거리는 상대의 목소리에 디아나는 간신히 자신이 가슴으로 깔아뭉갠 사람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잭, 잭이야?”

“잭이 아니고 재크···.”

약간 수줍게 대꾸하는 것은 디아나와 같은 금발의 통통한 소년. 나이도 비슷하고 머리색도 같고 하여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콩나무는 언제 찾으러 갈 거냐고 놀리면 버럭거리는 게 참으로 재미있더랬다. 요즘엔 그것도 질려서 잭 선장님, 출항은 언제인가요라고 놀리고 있었지만.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거 같은데.’

미쳐 날뛰던 심장이 가까스로 진정되자, 그런 의문이 떠오른 디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다, 꿀!”

“꿀?”

정신이 번쩍 든 디아나는 퍼뜩 도둑들이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녀석들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젠장!”

이깟 지방 덩어리 좀 문질러졌다고 뭘 이리 야단이란 말인가, 계집애도 아니고. 멍청한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은 디아나가 벌떡 일어섰을 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

갑자기 왜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이유를 몰라 멍하니 서 있던 디아나의 시선이 텅 빈 자신의 손에 닿았다.

“어?!”

구슬. 손에 쥐고 있던 붉은 구슬이 없어진 것이다. 부엌에서 급하게 뛰어나오는 통에 그만 들고 나왔고 내내 손에 들려 있었는데, 지금 디아나의 양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 어어어어어어···!!!”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디아나의 가슴 속에는 큰 구멍이 뻥 뚫려 버렸다. 공황에 빠진 디아나는 잃어버린 구슬을 찾아 필사적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손으로 마구 땅바닥을 훑어댔다.

“뭐 잃어버렸어? 내가 도와줄까?”

“응, 그럴래?!”

도와주겠다는 말이 오늘따라 왜 이리 반가운지. 디아나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크기는 이만한-”

허둥지둥 잃어버린 구슬에 대해 설명하며 잭을 돌아본 순간, 디아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홍당무처럼 빨간 얼굴. 흥분으로 벌렁거리는 콧구멍. 그리고 이따금 아래쪽을 향하는 저 음흉한 눈동자까지. 어딜 보고 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분명했다.

‘기분 나빠.’

명백히 자신을 이성으로 보고 있는 저 표정. 묵묵히 녀석을 바라보던 디아나가 말없이 소년을 향해 양손을 내뻗었다.

“어, 디아나? 왜- 으아아아아아악!!!!”

아무 죄 없는 불쌍한 소년은 그대로 멱살이 잡혀 공중을 날고 말았다. 굳이 죄가 있다면 한참 이성에게 관심이 많을 혈기 왕성할 나이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