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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와 증평은 공통점이 꽤 많아 나는 증평에 '충북의 벌교'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었다.

 

1. 원래 독자적인 고을로 존재했으나 일제에 의해 옆 고을과 강제 통합되었다.

- 원래 벌교는 낙안군에, 증평은 청안군에 속한 곳이었으나 낙안군은 1908년에 폐군되며 순천군과 보성군에 반반씩 편입되었고, 청안군은 1914년에 괴산군과 통합되었다.

 

2.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중심지가 아니었으나 교통의 요지로서 지역이 발달했다.

- 원래 낙안군과 청안군의 중심지는 현 낙안면, 청안면 지역이었다. 하지만 벌교는 순천에서 보성이나 고흥을 오가는 길목에 있고, 일제 강점기에 전남 내륙의 물자를 해양으로 내보내는 수탈항의 역할을 하여 성장하였다. 증평은 충북선 철도가 지나고 청주~충주 도로와 괴산을 연결하는 지점이다.

 

3. 통합 이후의 군에서 군청 소재지보다 인구가 많았다.

- 현재 벌교의 인구는 보성읍보다 4천 명 정도 많으며 보성군 전체 인구 중 보성읍이 20% 가량을 차지한다면 벌교는 30%를 차지한다. 벌교 인구가 5만 가까이 갔을 때는 당시 전남에서 제일 큰 읍이었으니 설명이 필요없다. 지금이야 여순광 여순광 그러지 그때는 벌교가 광양 따위는 가볍게 처발랐다. 증평의 경우는 지금은 증평이 독립해 있지만 지금 괴산읍이랑 증평읍 비교하면 증평읍이 3배는 넘는다.

 

4. 현재 행정구역 기준으로, 통합 이전 군에 속했던 곳들과 시군이 다르다.

- 낙안군에는 현 벌교읍과 낙안면, 외서면 지역이 소속돼 있었으나 벌교가 보성군으로 편입될 때 낙안, 외서는 순천군으로 편입이 되었다. 청안군은 비록 괴산에 더부살이했지만 옛 청안군 지역이 통째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한 데 뭉치기는 쉬웠는데, 하필이면 증평군이 분리될 때 옛 청안군 전역이 분리된 게 아니라 증평읍과 도안면만 분리되어 나가는 바람에 좀 애매해졌다.

 

5. 지금도 통합 이전 군에 속했던 곳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현재 벌교에서 낙안읍성 가는 버스 회차를 다 합쳐보면 보성교통 전체 노선 중 2위의 운행횟수이며 이는 순천 63번과 68번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심지어 외서면에는 벌교 가는 버스가 순천 버스보다 더 많이 다닌다. 그리고 청안면과 사리면에는 괴산농협이 아니라 증평농협 지점이 있으니 말 다 했다.

 

6. 바로 옆의 지역 중심 도시로 가는 시내버스가 절찬리에 운행한다.

- 순천 88번이 신대지구에서 조례동 국민은행과 순천역을 거쳐 벌교읍내까지 절찬리에 운행하고 있다. 15~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옛날에는 배차간격이 더 짧았다고 한다. 증평은............... 청주 좌석버스 105번이면 설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