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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는 보성군에 속한 읍인데, 인구가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보다 많고 상권도 여느 군의 읍내처럼 발달되어있으며 원래는 보성군이 아닌 별개의 고을 낙안군에 속했던 역사적 배경도 있어, 꼭 '보성'과는 다른 별개의 고을이라는 인상을 여러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벌교 사람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된다. 벌교 사람은 보성군 밖에서도 자기를 '벌교' 사람이라고 하지, '보성' 사람이라고 안 한다. 물론 벌교 사람을 보성군에 산다는 의미로 보성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벌교는 적어도 지역민들에게 각인되어있는 인지 지역으로서의 '보성'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벌교 사람을 포함한 보성군민한테 보성과 벌교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주진 못해도 최소한 '벌교는 행정구역은 보성군인데 실질적으로는 다른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 정도는 매우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벌교 시가지는 원래는 지역 중심지가 아니었고 낙안읍성 일대가 낙안군의 중심지였다. 다만 바다에 면한 포구로서 정기 시장 정도는 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인들이 바닷가인 벌교를 개발하면서 옛 낙안군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벌교등기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그 관할 구역이 옛 낙안군 지역을 전부 포함하고 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벌교는 비록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전라남도에서 한 손에 꼽으면 들어올 정도의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주요 개항장이었던 목포, 도청 소재지 광주, 또다른 개항장이었던 여수, 그리고 개발 요인은 적지만 나름 전통있는 도시였던 순천에 이어 벌교는 전남 5대 도시였다. 나주도 벌교한테 발렸다. 물론 나주는 나주읍이랑 영산포읍 합치면 벌교보다 많긴 했는데 그래도 나주읍내 시가지랑 영산포 시가지가 연담된 역사가 길지 않고 기차역도 따로따로 있었으니 이 글에서는 별개로 치겠다.

 

어쨌든 벌교는 단숨에 일제에서 비롯된 자본이 오가는 번화한 지역이 되었다. 금융 거래를 위한 금융조합도 들어오고, 당시 꽤 좋은 숙박 장소였다는 보성여관도 생겼고, 경찰서와 등기소도 생겼다. 유흥업소도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더 큰 도시들에 비하면 그때도 촌구석이었겠지만 적어도 줄곧 깡촌이었던 보성읍 같은 곳보다는 훨씬 번화했으니 그러려니 하자. 돈이 오가면 반드시 돈 냄새를 맡고 돈 떨어지는 것 좀 챙겨보려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폭력꾼들이다. 이들은 상인들한테도 돈을 뜯었다고 한다. 벌교 폭력배의 모습은 소설 <<태백산맥>>에도 염상구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인들이 퇴각하면서도 높은 출산율로 인한 인구 증가로 벌교읍의 인구는 거의 5만을 찍기도 했으나, 아무런 산업 기반도 없이 사람이랑 꼬막만 많은 벌교는 다른 촌동네들처럼 망테크를 타게 됐다. 나주는 그래도 비료 공장이라도 있었지 벌교는 걍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 넘어가면 벌교는 광양이랑 운명이 뒤바뀌게 된다. 광양의 전통 중심지인 광양읍은 그 이전까지는 벌교보다도 인구가 적었으나, 제철소 배후 지구인 동광양이 개발되고 광양읍도 인구가 증가하며 이제는 광양읍이 훨씬 많다. 동광양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벌교 조폭의 명맥은 한참을 갔으며, 벌교는 기질이 드세고 욕과 싸움을 잘 하는 동네라는 이미지가 씌워진다. 영화 <황산벌>에서는 신라 군사들이 백제를 놀리러 오자 백제 진영에서 벌교 출신 군사들을 불러 욕 공격을 시키는 명장면이 나온다. <써니>에도 앞부분에 벌교에서 전학 온 임나미가 패싸움에 껴서 상대에게 욕을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위험한 상견례>도 벌교가 잘 언급된 영화인데 여기는 앞의 두 영화처럼 벌교 사람이 욕하는 장면은 안 나왔다. TV 채널을 돌리면서 잠깐 <더 킹>이 나왔는데 거기서도 벌교라는 지명이 언급되는 걸 들었다. 창작물에서도 이렇게 벌교에 대한 인상에 대해 볼 수 있었다.

 

근데 최근에는 '벌교 주먹'이 일제 때부터 활개친 벌교의 폭력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더 선대의 사람을 가리킨다는 설이 떠오르고 있다. 바로 보성의 머슴 출신 의병장 안규홍이다. 참고로 이분 내 종친 어르신이시다. 안규홍은 조선 최말기에 일어난 정미의병 중 한 사람으로, 보성에서 처음 의병 활동을 시작하여 전남 동부권 일대에서 활동을 했는데, 벌교에서도 안규홍 의병 부대가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규홍이 벌교 장터에서 일본 순사를 때려 즉사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안규홍 의병의 활동 시기와 낙안군 폐군 일자가 시기적으로 꽤 맞물리기 때문에 낙안군 폐군이 의병 활동에 대한 보복이었다 하는 추측도 하고 있다. 폐군과 관련한 문서가 소실되어 공식적인 폐군 이유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벌교 주먹의 연원이 보성 출신 인물에게 있으므로 보성도 벌교 못지 않게 세다???

 

 

 

이상 아무말 대잔치. 이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