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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 다큐멘터리 "크흠컴퍼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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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컴퍼니 유래는 구한말 시절인 1884년 2월 8일에 상인들을 모아 만든 "계음상사"이며, 닭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던 상인인 ㄱ모 씨가 수장이 되어 회사를 운영했었다. 당시 계음상사는 당시 물 밀듯이 조선으로 유입되던 청과 일본 상인들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 의류, 신발, 요식업의 4개 업종에 있던 상인들이 연합해서 설립했고, 그 상인들은 다들 "일본과 청을 이기고 큰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해외에 나서는 데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이곳에서 만든 전시 및 소장용 자기와 고급화된 전통 한복, 삼계탕, 그리고 갓을 비롯한 제품들은 고급화를 통해 해외 수출까지 고려했고, 일부는 서구 스타일과 퓨전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계음상사를 사문난적이나 외국 앞잡이라고 혹평하던 곳도 있었다.

 

그러다가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를 통해 전 세계에 자사를 소개하려던 중 "계음상사"를 어떻게 외국어로 표기할 지를 고심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계음상사"라고 그대로 표기를 들고 나갔다가 이름 때문에 관객들의 의문만 키우고 홍보를 제대로 못했었다. 이후 수년간 독립 협회를 비롯해 외국어를 아는 인사들과 접촉하던 중에 "Kheum Company"라는 표시를 제안받은 것이 지금의 "크흠"의 유래가 되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점으로 국내에서는 계음상사를 유지하고 해외에서는 Kheum Company라는 상표로 사업을 나섰는데, 이때는 보통 "크흠"보다는 "케헴", "케이험"에 가깝게 발음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때문에 1910년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삼계탕을 '케이험 스튜'로 부르던 예가 있곤 했다. 계음상사는 해외에 진출해 있던 조선인 교포들을 자주 고용했으며, 고객에 따라 "애국심 마케팅"과 "그동안 몰랐던 동양적인 독특함"을 내세워 홍보하곤 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는 외국 기업인 것처럼 포장해서 탄압을 피하려던 미봉책으로 정식 명칭을 Khm Company로 통일했다. 이때 한글 표기는 "크흠유한"으로 바꾸었고,  공식적으로는 본사도 중국 내의 영어권 대사관 근처로 등록했으며, 고위 관리직들도 미국이나 영국 출신을 데려와 해외 기업인 것처럼 꾸민 뒤 공식적인 "역사"와 "창립자"도 새로 만들어냈다. 반대로 임원들과 실질적인 관리직을 구성하던 한국인들은 일본이나 중국 고객으로 위장해서 다녔으며, 창립자 ㄱ모씨부터 구한말 때부터 써오던 일본어와 중국어 실력을 원어민 수준으로 다듬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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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