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환상들이 테스트 2

<칠흑과 순백의 무녀 (part.1)>과 이어지는 파트입니다. 아직 이전 파트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보시고 들어오시길 권장드립니다. (특히 즐기실 분들은 꼭)




Side 2

똑같았다. 오늘 꾼 꿈과 현재 목격한 「이변」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똑똑히 알고있다. 건물 옥상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가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과, 그들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고 있었다는 것.

그중엔 우리들도 있었다. 달리고······ 있었다.


 “헥······ 헥······ 흐······ 흐욱······”


숨이 거칠어지고 있던 터에,

어라? 할 만치 어설픈 물줄기 하나가 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난 곧 그 생각을 바로 고쳤다.

난 멍청이다, 바보다, 겁쟁이다. 그리고 배신자다. 고작 이정도 밖에 안되는 놈이었던 거다. 숨이 차도록 끊임없이 달리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도 어느 한쪽에서 차올라 결국 주체할 수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하지만 이런다고 달라질 게 하나 없다. 난 건물에 혼자 고립됐을 친구를 놨두고 둘이서만 달려나왔다. 이런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내가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시늉으로 옆에 [플레이어] 손목을 잡아끌었고, 영웅 흉내를 내는 것 마냥 이 상황을 잠깐이나마 환기시키려고 한 짓거리를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최악이다. 갑자기 달리기 싫어진다. 뒤에 그 괴물이 따라오는진 몰라도, 적어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그냥······ [플레이어]만 보내주도록 할까?


······!!

난 고개를 바로잡고 다시 전방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놀랐다, 그래서 붉어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더 빨리 다리를 놀렸다. 방금 무얼 본 걸까, 확실한 건 내가 무의식적으로 뒷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땐 금방 알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슬픈 표정으로 나의 얼굴을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 여린 손으로 내 손목을 약간 강하게 부여잡고 있었고, 조금씩, 떨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나같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상황이 어색하지 만은 않아’. 그렇기에 남들보다 비정상적인 관점으로 이 상황을 재빠르게 대처했다. 근데 이 관점을 모두가 당연한 듯 받아들인 게 큰 잘못이다. 정말 이상한 인간이 세상에 널려있을지라도 최소한 반 이상은, 일반인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중엔 [플레이어]도 포함되어 있을 테고. 나처럼 이상한 놈이 아니라면, 당연히 이 상황에 겁을 먹었을 게 당연한 건데······ 

그래, 난 바보였다. 내 의도와 달랐을지 몰라도, 마주한 결과는 결코 다르지 않다.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바로잡아 다시 뒷 편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뻔뻔한 미소를. 그러더니 [플레이어]는 안심한 표정으로 나와 같이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그래, 알겠어.

더는 너를 놓지 않을 게. 그리고 지킬 게. 내가 정녕 비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평범한 너를 보곤 바보같은 생각을 해도 무조건, 지켜줄 게. 평범하게.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절친을 구하러 가자. 건물은 넓고 단단하니까, 분명 살아있을 거야. 아니, 살아있어. 그러니 꼭 같이 가는 거다, 알겠지?


나는 그런 표정으로 말없이 상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상대도 말없이 끄덕였다.

통해서 다행이야, 꼭.

약속을 지키자.


•••


이후. 어느 후미진 거리.


여긴 어디지?

나는 그래도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어디선가 소름끼치는 괴성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무너진 건물들과 간판들이 이곳저곳에 널려있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익숙했던 도시의 지리가 파악이 되질 않는 것 같았다. 믿을 건 결국 나의 감인가. 괴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거리에 나를 고조시킨 건 등 뒤로 엄습하는 공포였다.

그렇다, 그들이 우릴 쫓아오고 있다. 몇마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몇마리든 도중에 멈추고 볼 정도의 여유따윈 없었다. 지금은 숨을 때를 찾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 무언의 약속을 곱씹으며, 나 자신을 스스로 진정시킬 때, 이번엔 더욱 가까이에서 끔찍한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키에에에엑—!!!”


그 괴성이 귓가에 제대로 꽂혀올 때, 내 걸음은 조금씩 갈피를 못잡고, 본능적으로 재빨리 눈에 보이는 곳으로 도망쳐 갔다. 부서진 두개의 건물들 사이. 틈. 저기다.

나는 거기가 쥐구멍이라도 되는 것 마냥, 굳게 잡은 손목을 더욱 꽉 잡고는 황급히 그 틈으로 파고들어 갔다. 좁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금방이라도 붙잡힐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때였다. 

 “아아악!!”

갑자기 일어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 고통은 진짜였다. 밑에, 밑에서 하늘을 향해 뾰족한 송곳니를 길게 내뻗은 납작한 새까만 괴물이 트랩을 치고있었고, 그걸 모르고 밟아버리고 만 것이다.

아프다. 너무나 쓰라린다. 허나 숨길수 없던 그 고통보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나를 강요했고, 신음을 내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 쓰라림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입술을 꽉 깨물면서도 차마 뒷편의 상대의 상태를 걱정할 타이밍 없이 무작정 달려나갔다. 여긴 어디고, 어디로 향해가는 거지? 하나 알 수 있던 건 현재의 난 이미 겁에 질렸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다. 저 길목 너머에 운명을 맡긴 거다. 미래는 확신할 수 없다.

그걸 증명하듯, 왠지 어둡게 그을린 햇살 아래 비치는 구석진 곳에 발을 내딛었을 땐,


쿠구구궁!!


불행하게도 멈춰선 발을 다시 움직이기엔,


쿠과과과광!!!


부서져 내리는 전철의 다리를.

그 바로 아래 있던 우리가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

······

····

··

.












••• •


······어디지?

······긴 어디지?

······여긴

······어디지?


······여긴 어디지?


 “앗!”

나는 눈을 떴다.

으음, 아까 뭐였지. 잠깐만, 언제 내가, 눈을 감고 있던 거지? 홀로 일어나서 무언가에 흥분한 나를 달래려 할 때, 서서히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잠시 가라앉았던 빈병이 떠오르는 것처럼.

····맞아. 방금 전 나는, 갑자기 나타난 검은 물체,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었어. 그래서 빠르게 도망가던 중, 결국 괴물들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괴물들에게 쫓겨 건물 틈으로 달려들어 갔어. 그리고, 아팠어. 아팠다고. 송곳니에 발바닥에 찍혀서, 피까지는 몰라도 쓰라린 통증을 안고 젖먹던 힘을 짜내어 기적적으로 벗어나리라 되뇌였어. 하지만 어딘지 미래가 불안하다 느껴졌고, 그리고,

전철은 없이 완전히 붕괴된 다리가 필연처럼, 내 아래로 떨어지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고 그다음은···· 어······ 기억이 안 나. 전혀. 그보다 잠만, 뭔가 이상한데. 무언가 중요한 걸 빠뜨리고 있는 느낌— (!)

 “[플레이어]!! 너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 어?”

그리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 희미하게 뜨고있던 눈꺼풀을 바로 뜨자, 이제서야 정말로 이상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뭐라고 형언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여기는 내가 있던 곳이 아니라는 거고 이 말도 안되는 풍경이 왠지······

어딘가 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 ••


 “(여긴 어딜까···?)”

몽환적인 풍경, 절대 지구상에 있을 수 없을 비과학적인 현상들이 당연하듯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만유인력을 무시하는 양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난생 처음보는 사물들을 더불어, 핑크빛 파스텔 풍으로 그려낸 것 같은 주위 환경에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더욱이 말이 안되는 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곳이 허공이란 거다. 밑에 아무것도 없는 말그대로 허공.

····내 머리가 잘못된 건가? 하는 감정이 어째선지 들지 않는다. 거기다 마치 데자뷰처럼 자연스레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나 자신을 볼 때면 말이다. 아니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플레이어]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낯설면서도 묘한 익숙함이 교차하는 이 곳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니까. 하여튼 하루빨리 찾아야한다.


그것도 잠시, 한참을 걷고나서야 새로운 물체가 저너머로 나타났다. 세밀하게 인지할 수 없었지만 보이는대로만 보자면, 판타지 로맨스 소설에나 나오는 후원에서 볼 법한 작은 정자였다.

특이하게도 화원은 주위에 없었지만, 대부분 하얀색 페인트 칠과 이색적인 구조물로 시선을 사로잡는데는 충분했다. 근데, 갑자기 생뚱맞다. 왜 이런 곳에 저런 정자 하나가 홀로 떡하니 있는 거지? 그렇게 의문을 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안쪽을 들여다봤다. ····응? 뭔가 잘못 본 건가? 다시다시.

에엥? 사람···· 인가? 나는 다시금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떠봤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설령 내가 본 게 거짓이 아니라면 진짜란 말인가? 이때, 잠들어있는 듯한 의문의 존재 옆에 놓인 조그마한 소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소반 위에는······.


 “어라♪ 너는 누구야?”


••• •••


???

방금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군가가 누구였는지 인지하는데 단 3초만으로 충분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앉아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던 미지의 생명체가 눈을 뜬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보니, 미지라고 하기엔 눈에 띄는 몇몇 부분을 제외하곤 괴리감은 일절 들지 않았다.

작은 체구에 전체적으로 붉은 색으로 이루어진 복장은, 서양 동화에서나 볼 법한 전형적인 스커트 복장을 한 어린 소녀였다. 이를 반증하듯 금발의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붉은 눈동자에 특이한 수면 모자를 쓰고 있는 희안한 인상착의까지는 코스프레 복장으로 본다면 그리 어색한 건 아니다. 그러나····.

 “······”

 “응?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

 “아, 아니, 아무것도!”

 “뭐야 뭐야.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서~♫”

 “그···· 그게······.”

끝으로 본 소녀의 등 뒤에 붙어있는 ‘괴상한 날개’를 본 순간 결코 평범한 아이로 보기엔 힘들었다. 역시 내 눈이 틀린 게 아니었다. 괴기하기 짝이 없는, 얼핏 보면 날개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수준인데 거기다 알록달록한 보석들까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잠만.

 “그, 그보다! 넌 대체 누구야! 여긴 어디고?!”

 “누구냐니? 그건 플랑이 먼저 질문했잖아. 플랑의 질문에 먼저 대답하지 않으면 절대 대답하지 않을 거거든!”

 “(···)”

일단 이름은 ‘플랑’인 모양이다. 플랑···· 암만 봐도 내가 살던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름이다. 정말로 이상한 데로 떨어진 것인가. 떨어졌다니, 원래 세계와는 동 떨어진 곳이란 말인가. 대체 여긴 어디지?

설마···· 지옥이라도 되는 거야. 뭐야, 그게. 나 죽은 거라고? 내가 왜···· 으아아아! 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람! 그래, 이건 분명 꿈이야! 제발 깨라 깨! 하지만 아무리 볼을 세게 꼬집어 봐도 애꿎은 통각만 자극할 뿐이었다. 흐으으으····.

 “푸핫! 너 엄청 재밌다! 푸하하하하!”

 “(정녕 이게 꿈이 아니란 말이야?)”

 “푸하하, 플랑보다 재밌는 아이는 처음이야···· 어라?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그건 내가 하고싶은 말이었다고!!)”

하아아···· 틀렸다. 암만 봐도 상대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다. 하긴 여기있는 주위만 둘러봐도 설명이 안되는 상황이니 그렇다 치자. 그럼 이젠 어쩌면 좋지? 다시 말하지만 난 이곳은 처음이다. 제아무리 익숙하다 해도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아이를 데리고 가면 탈출구를 찾을수 있을까? 아니지, 고작 어린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없잖아. 그렇다면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요! 으아아아, 신이시여!

 “응? 왜 저러지? 그보다 여기 놓여있는 이거, 네거야?”

 “······뭐?”

나는 허황된 상상을 하고 있던 중, 아무데나 응시하고있던 시선을 소녀가 가르키는 방향 쪽으로 바라봤다. 맞다, 저게 있었지.

소반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의문의 카드 뭉치.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플랑이라는 아이와 같이, 옆에서 줄곧 제자리를 지키고 놓여져 있어서, 나는 저게 자동으로 소녀의 소지품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물어보는 것으로 보아 본인조차 처음 보는 물품인 것 같았다. 어디다 쓰이는 걸까. 마치 계속 보고있자니, 카드에게 점점 시선이 이끌려 나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렸다.

마치 먼 주인을 애타게 부르는 것처럼······.


 “네 거 아니야? 그럼 플랑이 잠깐 둘러봐도 되는 거지~♫”


그러자 그 소녀, 플랑은 서서히 고사리 손을 뻗어 자신에게 가까이에 놓인 카드 뭉치에 다가간다. 왜 이러지? 갑자기 나는 원인 모를 불안감도 내게로 같이 다가왔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태엽 인형을 두고보는 양 가슴 안팎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런 거야?

곧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카드에 알 수 없는 떨림이 느껴져왔고, 더는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을. 주된 원인이 뭐든지 간에 난 무의식적으로 떨려오는 본능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자, 이제 나는 어쩌면 좋을까.



<카드 뭉치를 집어든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