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악의 마법소녀를 가게 점원으로 들였다.
드디어 내 밑으로 후임이 생겼다!

*

악령 없이 하루하루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그날따라 보기 드물게 방에서 나와, 가게에 누워있던 여우가 기척을 느끼고 벌떡 일어섰다.



[왔나.]



문득 고개를 드니 아저씨가 있었다.



"아! 전의 그... 수염쟁이 아저씨!"



예의 수염 아저씨였다.


이름이 벨이랬지 아마?


기분탓인 걸까? 아저씨는 원체 크던 몸집이 더 커져있었다.


아저씨는 이번에도 바람 한점 없이 들어왔다.



"또 왔단다."


[왜 왔지?]


"왜 왔냐니. 찻집에 차를 마시러 왔지.

자넨 당연한 걸 묻는구만."


[흥! 몸도 성치 않을 텐데 대단한 취미생활이시군.]


"걱정해주는 겐가?"


[걱정은 무슨, 해가 중천이다.

잠꼬대하려거든 다른 가게로나 가.]



"솔직하지 못한 친구로구만"하며, 아저씨는 허허 웃었다.



"오늘은 사장님 있니?"


"있어요! 불러올게요."



아저씨가 후다닥 뛰어가려는 나를 제지했다.



"얘야, 넌 가지 말고.

차 내줄 사람이 한명은 있어야지."



나는 심부름꾼으로 부리고자, 막내를 먼저 불렀다.



"샤샤. 샤샤?"



신입 소녀가 본명을 불러도 꿈쩍도 않았다.


벨 아저씨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말이 안 들리는 것만 같았다.


에잇, 폐급 막내 같으니라고!


고깔 모자 소녀의 검은 고양이가 발을 뗐다.



-내가 깨우고 오마 먀아.



검은 고양이가 느릿느릿 행진했다.


저 속도론 집주인 끌고 오기까지 시간깨나 걸리겠네.


우리 막내 점원은 여전히 놀란 눈이었다.



"소, 소멸했을 텐데 어떻게...?"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떠올렸다.


맞다.


일이 바빠서 잊고 있었어.


저 사람 신이랬잖아.


소멸했댔고.


어떻게 살아서 이렇게 걸어다니는 거야.



"신은 신앙만 있으면 부활한단다."

 


아저씨의 설명은 간단명료하여 어딘가 치사하게까지 느껴졌다.


정말 신 맞구나.


신이래도 감회가 새롭거나 하진 않았다.


따지자면 발키리도 신이라서 그런 걸까.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릴리에겐 마을을 지켜달라했지.

날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있으면 언젠가 부활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도박을 하셨군그래. 실패하면 그대로 소멸인데.]


"도박을 한 게 아닐세. 그 외의 길이 없었던 거지.

대화재로 신전도, 신도도 불탔는데 뭘 어쩌겠나."


[하아. 나도 네 흉내라도 내봐야하나 싶다. 앙갚음은 관두고.]


"제발 그러게나.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우릴세. 파괴는 악마들이나 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잖냐.]



여우는 가끔, 나만 못 알아드는 대화를 펼치는 요령이 있었다.


소외당한 감각이라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커피로 하실 거죠? 손님."



둘의 대화는 따분하고 어려우니 나는 일에 집중할 속셈이었다.



"얘, 지루하니?

너한테도 해당되는 얘기란다."


"저요?"


"너 레긴레이프잖니.

네 부하들이라면 모를까, 넌 우리 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는 게 맞단다."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 수염쟁이 아저씨, 전부 꿰뚫어보고 있었다.


내가 발키리란 것도, 그중 레긴레이프란 것도.


... 아니, 이 '몸'이 그런 존재란 걸.


그러고보니 이 아저씨한테 물어볼 게 많았지. 참.



"어떻게 아셨어요.

현재 아스가르드의 왕이 오딘이 아니란 점이나 제가 레긴레이프란 점이나."


"게르만의 바람 끝에서 피비린내가 나더구나.

주인의 축복 없이 공허한 바람이었고.

오딘이 죽었다는 것도, 천지를 불사르던 대화재가 단순한 불이 아니란 것도 그때 알았단다.

대대로 레긴레이프는 혼란한 시기에 선출되었으니 필히 지금이리라 여겼다."


"'제가' 레긴레이프란 걸 아신 건요?"


"그야 기운으로 보면 발키리인데, 몸은 남자였으니까.

꽃집 꼬맹이 점원은 남자라고 소문이 자자하던 걸."



그 징글징글한 풍문이 또 한건했구나, 아이구 참.


답답해서 가슴을 쿵쿵 쳤다.


아저씨가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고민거리라도 있니?"


"조금요."


"말해보렴. 후련해질지도 모르잖니."


"자꾸만 주변에 거짓이 생겨나는 게 고민이에요.

발키리 보고 마법소녀라고 하질 않나.

여자 보고 남자라고 하질 않나.

도우려는 걸 두고 잡아먹지 말라고 하질 않나."


"하하. 그런 때 있지. 넌 어쩌고 싶니."


"어쩌기도 싫어요. 해명하는 것도 지쳤고. 제가 뭔지 저도 잘 모르겠고.

전 그냥 제가 잘하는 거나 하고 싶어요. 때려부수고, 때려잡고."


"못하는 일이래도 간혹 수행해야 하는 시기가 있지.

나도 신왕 따위 하기 싫었는데 쓸만한 후보가 다 죽으니 나보고 왕하라고 하더구나.

왕 같은 거 도무지 성미에도 안 맞고, 나는 하던 대로 양이나 치고 노래라 부르며 살고 싶었는데 말이야."


"아저씨 왕이에요?"


"왕이래도 한 열명 이끄는 왕이란다. 조별과제 조장이나 다름없지."


[네가 왕이라니 말세군. 페룬도 죽은 거냐?]


"암, 죽었지.

선왕이 살아있었으면 왕 자리 왜 바뀌겠나."


[그도 그렇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질 기세였다.


나는 화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래서요? 아저씨는 어떻게 했어요?"


"받아들였단다.

왕이 돼서 슬라브 땅 곳곳에 마을을 만들게 했단다.

대화재로 집을 잃은 아이들을 거둘 마을을.

나도 직접 관여해서 하나 만들었고."


"왜요? 왕 싫다면서요."


"때로는 '내가 어떠한가' 보다, '내가 어찌해야 하는가' 라는 것도 중요하잖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괜스레 숙연해졌다.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너는?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법소녀로서 남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아니면 발키리로서의 네가 남아야한다고 생각하니?

그도 아니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네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저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아저씨가 뭘 묻는지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때맞춰 타이머가 삑삑거렸다.


설정해뒀던 시간이 되었길래 커피에 적당히 라떼아트를 그렸다.


얼핏 눈치를 살피니 우리 신입 점원님께선 심경이 복잡해보였다.


고민을 하는 낯빛이었다.


요즘엔 대고민 시대로구나.


너나 할 것 없이 고민들만 하고 있으니.


집주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여우도 고민이 있는 것 같았고.


멍하니 있으니 아저씨는 다시금 여우와의 잡담을 즐기고 있었다.



[퍽 으스대는군. 너흰 그걸 해냈다 이거냐?]


"아니, 못했지.

그러니 멸망했잖나.

우리 서리거인은."


"서리거인?"



내가 끼어들었다.


방금까진 신이라고 해놓고서 거인?



"아스가르드에선 우리 보고 그렇게 부른더구나."



벨 아저씨는 그 한마디만 하고 대화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홀로 남겨진 기분으로 기억을 되짚었다.


발키리 양성소 시절에 봤던 지도를 떠올렸다.


서리 거인은 게르만족 땅의 북쪽에 있다고 했는데... 이곳 위치와 비슷한 듯도 싶었다.



[페룬 녀석은 부활 안하냐?]


"지금껏 잠잠한 걸 보면 불가능할 거야.

자네도 알잖나. 확률이란 게 희박하단 걸."


[얌전히 죽은 거냐?

요정이나 요괴로 변하면 소멸하지 않았을 텐데.

신왕씩이나 되는 놈이 그 방법을 몰랐을 리도 없고.]


"잘은 모르지만 자존심이 허락 않았겠지."


[놈도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군.

요정이든 뭐든으로 전락하더라도 일단 살아남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을.]


"옳아, 현자 납셨군.

자네 경험담인가?"


[너 오늘 나한테 다시 죽고 싶냐?]



아저씨의 마지막 문구에, 여우가 이빨을 드러내었다.


아저씨는 태평히 웃었다.



"하하! 진정하게나.

이 친구, 농담 가지고 열내기는."


"아버지...?"



머뭇거리며 가게 뒷문에서 나타난 이는 집주인이었다.


집주인은 며칠새 초췌해진 눈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 정말 아버지에요...?"



아저씨는 소리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집주인을 본 아저씨는, 처음엔 아무말 않고 복잡미묘한 얼굴을 지었다.


아저씨는 힘겹게 입술을 뗐다.



"그래, 나란다."



집주인은 주춤주춤 다가와 벨 아저씨에게 손을 뻗었다.


아저씨의 거구에 손을 댄 집주인은 "진짜구나. 정말 아버지구나" 하고 중얼거리더니 아저씨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아버지! 아버지아버지아버지아버지!"


"여기 있다."


"죽은 줄만 알았어요. 그때, 흑, 죽은 줄만 알았어요!"


"한번 죽었지. 부활한 거란다. 네 덕에 말이야."


"내가... 내가 흐윽, 진짜 열심히 했는데...!

아버지가 말한 대로 마을, 흑, 열심히 지켰는데!

다들 나보고... 흐윽, 잡아먹지 말라고만  하고!

마법소녀 모습만 보면, 히끅... 무서워만 하고...!"



집주인이 울먹거렸다.


보고 있기 불편해서였을까.


우리 가게 신입 점원께서 내게 조용히 일렀다.



"잠시 나가서 산책산책하다 올게요."



집주인을 깨우느라 고생한 검은 고양이 요정을 데리고, 그녀가 나갔다.


집주인은 부녀간의 쌓인 감정을 푸느라 여념이 없어보였다.



"아빠 장례식 때조차도... 흐윽, 주저앉아 울고 싶은데...

자꾸, 흑, 괴수 나타나고... 가서 물리치고, 흑!

나쁜 놈들... 울지도 못하게, 흑, 하고... 흐앙!"



쌓인 게 많았구나.


보고 있기 편한 광경은 아니었다.


한동안 계속되겠거니 싶어 버티기 애매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쳐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야외로 나와보니 우리 막내 점원의 말소리가 가게 뒷쪽 으슥한 구석에서 들려왔다.


친히 자신의 검은 고양이 요정님과 노가리를 까고 계셨던 것이다.



"완전완전 이상하잖아! 이런 거.

나는 모두 해피해피해지라고 하는 건데.

정작 우리 때문에 주민들은 연중 끙끙 속만 앓고."


-행복은 주관적인 거다 먀.


"주관도 100개 모이면 객관이야!"



막내가 화를 냈다.


대화가 멈추지 않는 꼴로 보아, 날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이런 엿듣기가 꼭 중요한 이벤트에서 도움이 되는 법인지라, 나또한 전력으로 청취하였다.



"그야 목적을 위해선 진흙탕길이라도 뚫고 으쌰으쌰해야 하는 거라고 보스도 그랬지만서두...."


-께름칙하다고? 먀.


"응."


-그러면 그냥 다 불어라 먀.


"뭐? 어떻게 그래!

그런 짓 했다간 언니가 나 미워할지도 몰라!

그리고 너도 곤란해지는 거 아냐?"


-그 점은 신경 쓰지 마라 먀.


"... 껄룩이 너어, 남의 일이라고 대충대충 말하고 그럴 거야?"



그 말에 고양이는 질색하며 답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 안 한다 먀. 네 일은 내 일이다 먀.

네가 걔들을 등지더라도, 걔들을 따르더라도.

"... 그랬지 참. 껄룩이 너는 날 따라서 여기까지 와준 거였지."



그러곤 조용해졌다.


뭔가를 심사숙고하는 중일까.


아니면 할 말이 없어져 그런 걸까.



*



껄룩이와 처음 만났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고깔 모자를 쓰게 된 날의 일을.


마법소녀가 되던 날의 일을.



"으으... 누나."



상처가 욱씬거려 잠을 깬 어느날이었다.


누나는 늘 그렇듯, 쪽지 한장 남기고 사라져 없었다.



'식량이 떨어졌으니 구하고 오겠어요.

저 없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꼭 챙겨드세요.

약과 붕대는 선반에 있어요.'



모든 게 불에 타고 재와 눈만 남은 세계에서 식량을 구해온다라.


그것도, 동상에 걸린 팔 한짝을 잘라낸, 외팔의 여고생이.


쉬운 일은 아닐 터.


어쩌면 목숨이 오가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에게 물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었지만,

힘들게 구해오는 식량이리라는 것은 뻔했다.


나는 누나가 그렇게 힘들게 구해오는 식량을, 뻔뻔스럽게 먹어치우는 게 단 하나의 일과였다.


이따금 고통에 젖어 잠이 깨면 지친 누나에게 붕대를 갈아달라며 조르는 정도를 뺀다면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누나에게 늘 죄짓는 기분이었다.



"선반... 선반에 약...."



아픈 몸뚱이를 이끌고, 발 없는 다리를 이끌고 선반으로 기어갔다.


앞으로 갈 적마다 잘라내 버린 발에서 통증이 전해졌다.



"아으으, 환상통 짱 싫어...!"



무릎 아래가 없는데 발에서 통증이 올라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누나는 환상통이리라고 말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딱히 거짓된 말이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의자에 기대어 몸을 일으켰다.


선반의 4층을 더듬었다.


약은 없었다.


선반의 3층을 더듬었다.


약은 없었다.


환상통으로 눈이 뒤집힐 듯하였다.


이를 꽉 깨물고 2층을 더듬었다.


약이 있었다.


물을 따르는 일도 수난이었다.


이 버려진 오두막의 전주인은 키가 큰 사람이었는지 물컵을 높이도 올려놨으니까.


... 아니, 침착히 생각해보면 그럴 리 없지.


단순히 내 키가... 무릎 아래가 잘린 만큼 줄어서 그런 거겠지.



"나와라, 빨리. 빨리빨리."



동방 어느 나라에서 심볼로 민다는 문구가 무의식 중에 입에서 튀어나왔다.


꼭지를 연 물통에서 지붕의 얼음이 녹은 물이 흘러떨어졌다.


오염된 물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잠시, 어쨌거나 먹을 만한 담수는 이 뿐이라는 점을 자각하였다.


약을 훌훌 털어넣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콜록, 켈록켈록!"



썩을. 


아무래도 일전에 앓았던 감기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전, 일전이란 게 얼마 전의 일이던가.


오랫동안 드러누워 자면 시간감각이 멍해지는 점이 크나큰 흠이었다.


나는 속으로 셈하여 보았다.


그땐 식량이 한참 남아있었지, 분명.



"그 죽... 2달은 족히 먹는다고 했지.

둘이니까 1달 동안 냠냠한다고 치자.

식량이 떨어졌다고 누나가 표현할 정도면 한 일주일치 남짓 남았을 테니까...."



2~3주?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2주가 넘게 지속되는 감기면 감기일 리가 없었다.


되는 일이 없었다.


폐렴은 전염성이 강하단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누나, 요 얼마 전부터 기침을 시작했지 싶었다.


누나에겐 폐만 끼치는 거구나.


머리를 쥐어뜯었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나가 깨끗히 닦은 오두막 바닥에, 내 지저분한 머리카락이 더해질 뿐이었다.


문득, 누나가 한 청소를 내가 말아먹겠다 싶어져 머리카락을 주워담았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한탄하기보단, 무언가 성취를 해서 들고 와야 했다.


누나도 필시 그걸 기뻐할 터였다.


누나가 만들어줬던 내 전용 설피를 찾았다. 


오두막을 나가니 이 추위에 생존한 야생동물이 있었다.


전승속 악마를 닮은 크고 우람한, 나선형으로 굽은 뿔.


산양의 일종이었다.



"저거 고기면 며칠간 안심안심이겠지."



도둑 쫓을 때 쓰라고 만들어줬던 지팡이를 들고 덤볐다.


최초의 몇번은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하는 눈으로 공격을 피하기만 하던 산양은, 몇번 반복되자 질려버린 듯했다.


산양은 내게서 흥미를 잃고 뿔로 들이받아버렸다.


불완전한 다리론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맞고, 눈밭에 쓰러졌다.


아두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산양은 떠나고, 나는 기력도 체력도 잃은 채 눈밭에 누워있었다.


설원에 쌓인 숫눈이 붉어지는 걸 보니 피도 잃은 모양이었다.


어쩐지 우스꽝스러워서 하하 웃었다.


크게 웃다가는 갈비뼈가 폐를 찌를까 우려스러워, 작게 웃었다.


작게, 길게 웃었다.


얼마나 웃은 건지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기이하게 여긴 걸까.


이 북유럽에 보일 리 없는 고양이가 불쑥 나타났다.



-실성했냐 먀?



검은 고양이의 과격한 첫인사였다.



"고양이가 말을 하는 걸 보니 내가 미치긴 했나보네."


-다리도 없는데 왜 공격한 거냐 먀?



나는 입을 닫았다.


알려준들 이해하지 못할 거라 믿었다.



-하아. 됐다 먀.

너 인간, 혼자 사냐 먀?


"아니. 누나랑 함께 살아."


-그 강한 마력은 그럼 누나 거였나 보네 먀.


"마력?"


-난 요정이다 먀.

마법소녀를 만들기 위해 강한 마력을 쫓아 이곳에 온 거다 먀.


"내가 피를 너무너무 줄줄했나...."


-환각 아니다 먀.



검은 고양이가 내게 말랑말랑한 육구를 들이밀었다.


여지껏 눈에 닿아있어서 그런지 차가웠다.


요정이란 건 동화에서나 봤는데, 신묘한 경험이었다.



-누나는 어디 갔냐 먀?


"식량 구하러 갔어."


-구하러 갔으면 가만히 거처에서 대기하지, 넌 왜 나온 거냐 먀?


"목표는 누나 아니야?

왜 계속 나한테 관심을 붙여.

이상한 요정이네...."


-관심 붙인 적 없다 먀!

그냥 다쳐있길래... 그냥... 그냥 물어보는 거다 먀.


"내가 한심해서. 너무 한심해서.

그래서 나온 거야."



검은 고양이가 무슨 말이냐 되묻었다.


여기저기 뼈에 손상이 간 게 느껴졌다.


추하게도, 살고 싶단 생존본능이 있었기에, 속삭이듯 답했다. 



"대단한 거 없어.

한번이라도 누나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어.

내 탓에 누나는 날이 바뀔 때마다 상처가 늘어나니까.


엄마아빠 죽었을 때, 울기 바쁜 코찔찔이 날 끌고 와준 게 누나야.

달랑 고등학생 나이고, 자기도 부모님 죽어서 슬픈 건 똑같은데.

누나가 너무 불쌍하잖아.

나 같은 짐을 안느라 고생만 하면. 

그래서 도움이 되고 싶었어."



사정을 들은 고양이는 '으으'하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고양이가 뭐라 중얼거렸다.



-으... 그치만 한 사람 밖에 못 고르는데 어쩐다 먀.



오랫동안 전전긍긍대던 고양이가 태도를 바꾼 건 10분 쯤 지나서였다.



-에잇 모르겠다 먀! 인간 너, 이름이 뭐냐 먀.


"쟈쟈."


-이제부터 샤샤로 살아라 먀.


"샤샤? 여자 이름 같네."



나는 피식하였다.


요정은 진지했다.



-그래, 여자가 되라는 말이다 먀.

새 육체를 만들어줄 거다 먀.


"새 육체?"


-변신을 하기 전에도, 후에도 여자로 살아갈 거다 먀.

사지 멀쩡한 몸이다 먀.



사태를 그제서야 파악한 나는 질겁하였다.



"그런 짓 해도 되는 거야?

전설에서 보기로, 마법소녀는 한 요정당 한 명까지만이라고 들었는데?"


-맞다 먀. 1 요정 1 소녀다 먀.


"하지 마! 우리 누나시켜!

마력인가 뭔가, 누나가 더 강한 듯하다며?

나 따위가 마법소녀해도 잘할 리가 없어!"


-시끄럽다 먀!



고양이가 호통쳤다.


기백에 눌린 나는 항의를 멈추고 말았다.



-그러면 나더러, 어린애가 울고 있는데, 나더러 그걸 무시하고 떠나란 말이냐 먀?


"그래도 누나가 더 마력이... 마력 강한 것 같다면서."


-그러니까 잘해라 먀. 너 고른 거 후회 안하게.



고양이가 목을 물었다.


스스로의 발로 땅을 밟는 느낌은, 무척 오랜만이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마법소녀가 되었다.


껄룩이와는 그렇게 만났다.


옛일을 떠올리는 건 양심이 콕콕 찔려 선호하지 않았다.


그렇대도 잠자리에 누워서 자지 않으면 할 만한 건 회고 정도이니, 오지 않는 잠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껄룩이... 나 고른 거 속으로 후회하고 있겠지?"



이제는 익숙해진, 여자아이의 작은 손으로 검은 고양이 요정을 어루만졌다.


수면 중인 요정이 골골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우으 언니 가재는 그만... 저 해산물 싫어해요오."



화들짝 놀라 침대를 보았다.


가게 선배의, 발키리 마법소녀의 잠꼬대였다.


이 선배는 잠꼬대만 하면 열에 여닐곱은 가재가 어쩌고 하는 내용이다.


도대체 가재가 그리도 좋은 걸까?

그렇게 데여놓고서?



"어휴, 뒤숭숭뒤숭숭하네."



오늘 소멸했던 신을 만나며 마음이 흔들렸다.


성불 없이도 악령이 되지 않는 기술.


그를 위한 데이터 수집.


눈 딱 감고 수행해오던 일인데, 왜 이다지도 오늘 밤은 날 괴롭히는 걸까.


냉수 한컵을 따라 마셨다.


깨끗한 호숫물을 떠왔다는 냉수였다.



"나 어떻게 해야할까. 껄룩아, 언니...."



잠자리에 누웠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밤만 깊어갔다.



*


검은고양이네 마법소녀는 원래 [태생부터 여동생]으로 하려다가 안 꼴려서 [ts한 여동생]으로 바꿨음.
... 설정 뭐 이상하게 충돌하는 부분은... 없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