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마지막 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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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 괴물 늑대는 어지간한 대호보다도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는 어린 아이 정도는 단숨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고, 채 가려지지 않고 드러난 흉측한 이빨은 이게 정녕 짐승이 맞는가 싶은 의문을 들게 할 정도였다.


광증에 시달리는 개처럼 놈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흐른 침이 땅에 닿자마자 연신 연기를 뿜어내는 것을 보아 보통 유독한 것이 아닐 성 싶었다.



내딛은 두 다리는 곰처럼 강건하였고 그 끝에 돋아난 발톱은 어지간한 갑옷 따위는 종잇장처럼 찢어버릴 만큼  날카로워 보였다.

가죽 너머로도 보이는 우락부락한 근육은 반대로 어지간한 날붙이로는 씨알도 안 먹힐 만큼 튼튼해보였다.


게다가 울음소리는 또 어찌나 소름끼치던지 대호의 노호보다도 더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허나, 그런 점들보다도 더욱 무서운 것은 놈의 몸에서 감출 기색도 없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사기의 양이었다.


그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산 사람은 속이 메스꺼워지는 그 역한 죽음의 기운은, 어째서 400구에 달하는 원혼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정도로 고약했다.


하기사 원귀 세 구가 붙은 창귀호조차 이등 이상 만신을 반드시 동반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운 상대라고 평가받으니, 원귀 400구를 매단 이놈이 얼마나 지독한 놈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사희는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연신 올라오는 신물을 간신히 눌러담으며, 품 속에서 정신 정화를 위한 부적을 꺼내 들었다.



“우욱, 후우… 이거 골 때리네요. 설마하니 이 정도로 많은 원귀가 등에 매달려 있을 거라고는 상상 못했는데.”



겨우 정신이 맑아진 사희는 불현듯 떠오르는 아까의 광경에 헛구역질을 했다.

수백에 달하는 원귀들이 제각기 아귀다툼을 하는 그 모습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정신 오염을 선사 했었다.



어째서 이런 놈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싶을 정도로 실로 고약한 기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시르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며 입을 열었다.



“지난 이틀간, 난 단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산줄기가 이어지는 모든 곳을 뒤지고 다녔어. 귀신들이 좋아하는 그늘이나 동굴 속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많은 민가나 시장통까지 가리는 곳 없이 쏘다녔지. 


허나, 지금 녀석과 마주하기 전까지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어.



대체 어째서일까? 이 정도로 수많은 원귀가 들러붙은 놈이었다면 사기를 숨길 생각 따윈 못하니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았을 텐데. 이래서야 꼭, 누가 숨겨 줬던 거 같잖아. 안 그래?”


“그렇죠. 하지만 맹세컨대 저희는 아닙니다. 만약 저희가 진짜 범인이었으면 적어도 시르 님께서는 이 자리에 계시지 못하시지 않겠어요?”



갑작스레 저를 향한 의심의 화살에, 사희는 조금의 불쾌감도 숨길 생각 없이 곧장 그렇게 쏘아붙였다.

시르 역시 그냥 해본 소리였는지 곧장 그런 그녀에게 사과했다.



“맞아. 후배님과 아가씨가 범인이라기에는 좀 아귀가 안 맞는 부분들이 있지.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두 사람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벌어진 일이라면 어떨까? 


그러니까, 후배님들을 노리고 때를 기다리던 녀석이 있었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공교롭게도, 처음 강림 부장님께 사건이 접수되었던 무렵 현장 근처에 무지개가 떴다고 하더라고.”



‘무지개'라는 말에 시구르드는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자신들을 노리고 일부러 함정을 파둘 만큼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원귀의 사기를 감출 수 있는 모종의 수단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무지개를 이용해 수작을 부릴 수 있는 자.




“비프로스트… 오딘인가?”



신들을 손수 멸망시키고 지상에 끝나지 않을 겨울을 끝내고 봄을 되찾아주겠다는 이단자 발키리들의 원대한 구상.


어디서 새어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오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반역자에 대한 처형인을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시구르드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런 시구르드의 추측은 곧 진실로 밝혀졌다.




“아오오오오ㅡ!”



거대한 늑대가 포효를 하자, 그 등 뒤로 마치 망토처럼 검게 눌러붙어 있던 원귀들이 꾸물꾸물 움직여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뭉쳐진 원귀의 덩어리들은 연신 끔직한 비명을 내지르며 부서졌다 뭉쳤다를 반복하며 점차 하나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마치 타르로 빚어낸 듯한 거인의 상반신.



그렇게 태어난 타르 거인은 마치 허리 아래 달린 늑대의 광기에 전염된 것처럼 사납게 울부짖었다.



“네 이놈ㅡ! 감히 주군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그 더러운 입에 함부로 이름을 담기까지 하다니. 그분의 위대한 전사, 나 비요른의 아들 할프단이 주군의 모욕을 갚기 위해 네 놈에게 피의 독수리 형을 선사해주겠노라!”


거인의 외침과 함께 막대한 양의 사기가 전방위로 방출되었다.

사희가 급히 친 결계 뒤편을 제외한 근방의 모든 초목들은 그 독한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누렇게 말라 비틀어 죽었다.


명색이 모든 주술에 대해 면역에 가까운 저항력을 지닌다는 저승사자 시르조차도 객기를 부리는 대신 얌전히 결계 뒤로 피한다는 선택을 할 정도로 거인이 내뿜은 사기의 파도는 실로 지독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시르와 사희는 그 절륜한 독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이 결계 몇 번이나 더 펼칠 수 있겠어? 대충 보니까 1시진만 버티면 될 거 같은데.”


“후후, 제가 이래뵈도 백옥패를 지닌 일등만신이랍니다. 1시진은 커녕 하루종일도 해드릴 수 있어요.”


원귀란, 기본적으로 강력한 맹독이다. 

살아있는 자의 영혼을 갉아먹고 이성을 파괴하는 아주 강력한 맹독.

그렇기에 원귀에 씌인 짐승들은 평소 이상으로 강력한 육체적 능력을 얻게 되지만, 동시에 이성을 상실하고 힘을 쓰면 쓸수록 제 명을 재촉하는 시한부의 몸이 된다.


인간 역시 원귀를 사용하면 짐승들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능력의 대부분은 이성과 정신에 근간을 두고 있는 만큼 이성을 파괴하는 원귀를 사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큰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과정이 심히 고통스럽기 까지 했고.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눈앞의 저 타르 거인은 패배가 예정된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비록 짐승과 혼을 섞은 덕에 지금껏 이성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다만, 무려 400여구나 되는 원귀를 두른 만큼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이성 없이 원귀에 조종당하는 귀신이 된다면, 소멸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사건 종료다.

만신과 저승사자만큼이나 그런 원귀의 천적인 대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희망적인 예측을 들은 시구르드는 얼굴을 딱딱히 굳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맹독에 당해 영혼째 붕괴해버릴 존재란 바로, 그의 인간 시절 먼저 간 전우였으니까.


고작 옛 친구와 싸우게 하는 것이 전부냐고 내심 비웃던 시구르드는 비로소 오딘의 짙은 악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제기랄.”


시구르드는 분한듯 입술을 깨물었다. 

가족과 동포를 구하기 위해 발키리가 되었건만, 제 친구의 영혼 하나 구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이 너무나도 분했던 탓이다. 


물론, 그가 억지를 부린다면 그의 길동무는 늘 그렇듯 무언가 기발한 전략으로 그의 소원을 충족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언제나 시구르드 자신에게 충실했고, 시구르드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처럼 느끼는 그런 소녀였으니까.


그래서 시구르드는 감히 부탁할 수 없었다.

고작 제 사사로운 기분을 위해, 저의 소중한 동료를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그녀의 길동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흠흠. 그런데요 시르 님.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분명 염라대왕님께서 범인을 ‘잡아’ 오라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저렇게 두면 영혼이 전부 파괴되어서 안될 거 같은데.”


사희는 능청스러운 태도로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대뜸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사희와 시구르드를 번갈아 바라보던 시르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씨익 웃으며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아, 그렇지. 확실히 우리 사장님께서는 범인을 잡아 오라고 하셨지. 그리고 그러려면 당연히 원귀에 영혼이 파괴되기 전에 제압해 데려가야 할테고 말이야.”



대체 저 둘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하며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던 시구르드는 뒤늦게 저 둘이 자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처음과 달리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무슨 소리인가! 확실히 범인은 저 비요른이라는 사내이네만 그 사내의 본체는 새까만 타르 거인 밑에 달린 늑대일세. 그러니 구태여 놈에게 당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임무는 달성할 수 있다는 거지. 어찌하여 그대들은 스스로를 위험에 내모는 겐가?”


시구르드는 진심을 다해 둘을 설득하고자 했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둘이 자신으로 인해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면 그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자신을 도무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건 사희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시구르드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것은 조금도 바라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무턱대고 정에 이끌려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기도 했다.

그래서 사희는 잔뜩 열이 오른 시구르드의 두 뺨을 양손으로 살포시 붙잡은 뒤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아저씨, 저 못 믿어요? 저 백옥패를 지닌 일등만신 금사희에요. 세상 가장 비천한 천애고아로 태어나 만신의 자리에 올랐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하얀 짐승을 길들였으며, 끝내는 저승사자마저 제압하는데 성공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아저씨와 고향 사람들을 위해 악신을 무찌르고 봄을 되찾아 줄 세계 제일의 만신이기도 하지요. 이런 제가 아니면 대체 누굴 믿을 수 있겠냐고요. 안 그래요?”



시구르드는 얌전히 소녀의 손길에 따라 그녀의 묵빛 눈동자를 바라 보았다.

그 한없이 맑고 투명한 묵빛 눈동자 너머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울것처럼 인상을 찌푸린 백발의 꼬마가 보였다.


사희는 오늘 낮, 시구르드가 그랬듯 뺨에 짚었던 손을 떼서 살포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마치 동생을 달래는 언니처럼 사근사근히 속삭였다.



“걱정말아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 저는 죽을 생각이 하나 없거든요. 마찬가지로 아저씨 역시 죽게할 생각 없으니 안심 하세요. 그러니까ㅡ”



거기까지 말한 사희는 살포시 시구르드를 품 안에서 밀어낸 뒤 손에 부적 하나를 쥐어 주었다.



“아저씨는 지금부터 시르 님과 함께 저 거인의 몸에서 원귀를 최대한 많이 잘라내주세요. 아저씨 친구 분의 영혼이 담긴 핵이 드러날 때가지요. 그래야 제가 지닌 이 족자 결계 속에 아저씨 친구 분의 영혼만 뽑아서 봉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뽑아낸 영혼은 내가 안전하게 데려가서 착실히 회복시켜두도록 하지. 아무렴 죄값을 치루려면 우선 몸이 멀쩡해야하지 않겠나?”



시르는 시구르드가 너무 무안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그렇게 대꾸했다.



“모두, 고맙다.”



두 사람에게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시구르드는 그 짧은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저의 옛 전우를 향해 한줄기 빛이 되어 날아들었다.




***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시간 제약이 있는 탓에 싸움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각종 저주와 주술에 대해 상당히 높은 저항력을 지닌 시르가 타르 거인의 공격을 받아내면, 곧장 교대하듯 시구르드가 파고들어 빠르게 원귀들을 끊어내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적의 사각에서 짓쳐드는 공격에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지만, 사희의 적절한 서포트가 있었기에 승부는 세 사람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격렬한 밤을 보낸 다음 날.
족자와 함께 저승으로 급히 떠난 시르를 보낸 뒤, 두 사람은 현재 어느 행상의 마차를 빌려탄 채 여정을 거듭하던 중이었다.



어젯밤의 강행군으로 지친 사희는 시구르드의 무릎을 벤 채 새곤새곤 꿈나라를 여행하던 중이었고, 발키리라 별다른 수면이 필요 없는 시구르드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시구르드는 소녀와 자신의 아들 크누트를 겹쳐 보았다.



성별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지만, 

자신이 발키리가 되는 선택을 했던 것이 크누트 때문이었던 것처럼,

사희는 제가 지금껏 포기하지 않고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 있어 이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들의 야욕을 꺾어야만 한다.



"역시, 발키리는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


부디 그 날을 자신의 손으로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구르드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소녀를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