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하늘을 하얗게 덮은 구름과 눈송이들을 바라봤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이 들었다.

삶은 부질없고, 세상은 더 부질없었다.
나는 이럴때에 구절들을 중얼거렸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었다.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모든 것은 헛되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인생은 부질 없다.
그것을 13살 때 알았다.

성적을 93점을 맞았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맞아본 최고의 점수였다.
그렇기에, 엄마한테 그것을 가져가서 말했다.

“저 잘했으니까 오늘만 봐주세요….”

하지만 먹히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때렸다.
술에 쩔어서, 취해서, 그래서 발길질을 했다.

아팠다.
얼굴이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엄마는 계속 나한테 말했다.

“내 인생은 너를 낳고서부터 추락했어, 너는 벌레 새끼야.”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부턴가 그렇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나한테 괜찮냐고 물었다.

매일 엄마한테 맞았고, 뼈가 부숴졌고, 아팠지만 변명했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맞은 거라고.

친구들한테는, 괜찮다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두의 관심이 끊기기 시작했다.

내 상처는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재미없고, 지루한 아이가 된 나는 언젠가부터 외톨이가 되었다.
겉돌고, 공부도 못하고, 쓸모 없는 인간 주제에.

그렇게 자조하며 어른까지 살아왔다.

“….”

나는 신을 믿었다.
엄마가 신을 욕해서 그랬다.

모태신앙의 집안은, 신을 싫어하게 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기에 신을 믿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서 기도를 올렸다.

이런 쓸모없는 자식이 죽어서 세계가 조금 더 깨끗해지기를.
아무 쓸모도 없이, 고작 가진 거라곤 열등한 자손을 남기는 유전자밖에 없는 내가 죽어서 깨끗해지기를.

사람은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옥에 가는 것이 내 첫번째 소원이었다.

어떤 지옥도 이보다는 나을 테니까.

덜컹거리는 난간, 사람들의 수근거림. 그리고 반짝이는 불빛들.
나는 떨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한테로 집중되었다.
파삭. 머리가 깨졌다.

피가 터져나왔다.

그것이, 내가 남자였을 때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사람이 희미하게 보인다.
나는 눈을 비비적거리다가,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안경이 없었다.

나는 위를 쳐다봤다.
엄마다, 엄마가 보였다.

엄마가 그리고서 내게 소리쳤다.

“나가! 나가 이 빌어먹을 년아! 당장 집에서 꺼져!”

그리고서 의자를 집어던졌다.

아, 이때가 기억난다.

나는 그때 19살이었다.
고등학교도 자퇴하고서 갓 성인이 되자마자 알바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억지로 벌어다준 머저리였다.

원래대로였으면 안 나갔겠지만, 이번에는 오기가 생겼다.

“…나갈 거야.”

그렇게 말하자, 이상한 목소리에 내가 놀랐다.
무슨 목소리야, 이거는.
여자처럼 가는 목소리였다.
새처럼 고운 목소리였다.

나는 목을 더듬거리며, 목울대의 부재를 깨달았다.
없구나, 없으니까 이렇게까지 예쁜 목소리구나.

“나가! 이 빌어먹을 썅년아!”

나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나가면 지금 당장 내가 살 곳이 없어진다.
생활비도 고작 30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미소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신을 믿어요?”

“…뭐?”

“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순간 멈칫했다.
그렇지만 나는 망설임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잡지 못하도록 전속력으로 뛰었다.

가슴이 덜렁거렸다.
브레지어는 제대로 차고 있는 걸까,

여자란 어떤 존재일까.

아니다. 이러한 대답은 의문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매력적이다.
그들은 그저 연애하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침대에서 유혹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래, 아랫도리가 사라졌으니까 쓸만해졌구나.
나는 그 순간,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았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었나.

바닥을 바라보니 흑발의 미소녀가 비쳐졌다.

예쁘구나.

정말로.

나는 그렇게 기분좋게 흥얼거리며 술집에 들어갔다.
젖어버린 여자가 안 쪽에 들어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미소지으면서 점원한테 말했다.

“소주 세병 주세요.”

나는 세병 마시면 딱 만취한다.

오늘은, 기분 좋게 즐겨보자.

엄마가 알코올에 왜 쩔었는지 알 시간이다.

*

*

*

나는 비틀거렸다.
그리고서 구토를 했다.
취객이 이래서 생기는구나, 나 그런데 위험한 거 아닌가?

여러분, 여기에 술에 잔뜩 꼴고 예쁜 여자가 지나가고 있어요.
이것 좀 보세요.

나는 기분좋게 미소지었다.

“…내가 나쁜 사람이니까.”

그 쯤이라도 겪어야 사람이 나아지겠지.
나는 쓰레기니까, 덜한 쓰레기한테 쳐맞으면 죄가 사라진다.

“…?”

그때쯤에 멀리서 한 형체가 눈에 들어온다.
빛나는 하얀색 옷을 입은 여성이었다.

“저, 저기. 우산도 안 들고 어딜 가세요?”

“…가출했어요.”

“가출이요?”

그녀는 내 얼굴과 몸을 둘러보다가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성인인데…?”

“네, 성인이에요. 혹시 저 어떻게 보여요? 예뻐요? 지나가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잡혀 당할 것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저, 저기. 가출이라면….”

“….”

“집에다 데려다 드릴까요? 아니면 뭐 어떻게….”

“저기요, 참견 심하세요. 저 이래뵈도 성인이거든요. 가출했으니까 제 마음대로 할게요. 지나가다가 무슨 일 생겨도 상관 없거든요. 저는 어차피 쓰레기니까.”

“쓰레기?”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붙잡았다.

“저, 저기. 일단은 진정하실래요? 이대로 가다가 술 깨면 못 볼 일 당할 것 같은데,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잠깐만 앉아계실래요?”

“참견 그만해요, 제발. 참견은….”

나는 그녀를 밀쳐내려다가 그만뒀다.
여인은 갑자기 나를 계단에 앉혔다.
털썩, 젖어버린 옷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디 갈데, 진짜로 없는거죠?”

“….”

“없나 보네. 혹시, 학대당해서 가출한 거에요?”

“모르겠네요, 어차피 맞을 짓 해서 맞은 건 아닐까.”

잠시 그녀가 멈췄다.

“…일단은 알겠어요. 이대로 가다가 진짜로 심각해질 것도 같으니까, 제 집에 잠시 들려주실래요?”

“집에는 왜요?”

“그야 갈 데도 없잖아요.”

“…혹시 레즈비언이에요? 그래도 괜찮은데.”

“아니에요. 일단은 군말 말고 좀 따라와봐요. 계속 그렇게 이상한 말만 하지 말구요.”

여인이 나한테 우산을 씌워줬다.

“갈 데 없으면, 잠시만 들려요. 이대로 지나가기가 좀 그러니깐. 알겠죠?”

“…네.”

이건 뭐라고 해야할까.
행운일까.

*

*

*

주원은 여자의 기행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이렇게 비에 젖고 술에도 꼴은 채 뒷골목을 지나다니는 건 뭔가.
그녀가 발견해서 망정이지, 어느 깊은 데에 들어갔다가 심한 꼴을 당해도 모를 지경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고서 주원은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를 기다렸다.

“…저기.”

“네?”

“따듯한 물 나오는데, 이거 어떻게 꺼요?”

“뜨거우세요? 뜨거우면 돌리시면 되는데….”

“제가 낭비를 싫어해서요. 감기 걸려도 일주일이면 낫고. 심하면 온 몸 아픈 채 일주일을 내리 누워있어야 하지만은, 그래도 관리비 더 나오는 것보단 낫잖아요.”

“….”

주원은 이마를 짚으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서 침을 꼴깍 삼켰다.
무슨 몸매가.

“관리비 나와도 되니까 딱 맞는 온도로 틀으셔도 돼요. 어차피 제 돈이라니까요? 아니다. 차라리 목욕하실래요? 배스밤도 있는데.”

“저, 그렇게까지 착한 사람은 아닌-”

“그러면 오늘부로 착한 사람 하세요.”

주원은 이상한 여자를 갑자기 집으로 데려오고, 예상에도 없는 지출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묘하게 즐거웠다.

“…고마워요.”

“고맙다고요?”

“이런 친절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서.”

“…뭐, 그러면 이전에는 뜨거운 물로 샤워도 못 해봤어요?”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갑자기 숙연해진 주원은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그녀에게 여러가지 물건들을 가져다 줬다.

“이 닦고, 세수하고, 술 조금 깨면은 얘기하러 와요. 그리고 넘어질 지도 모르니까 여기서 있을게요. 몸 안 볼테니까 걱정 말고.”

“…봐도 되는데.”

“그런 거, 사람들한테 막 보여주는 거 아니에요. 알겠어요?”

“…네.”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여자를 보며 주원은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이렇게 모자란 인간이 나왔을까.
하긴, 학대를 당했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여기에서 내일 풀어주게 된다면?

다시 또 술에 꼴아가지고, 위험한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자, 주원은 순간 기묘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여자가 독립을 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줘야 될까.

“….”

솔직히 좀 암 걸릴 것 같긴 하지만.
너무나도 불안하다.

그래, 그냥 지르자.
어차피 돈은 많고, 시간도 남아도니까.

애 하나 키우는 마음가짐으로 가면 되지.

주원은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