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탄 열차는 SRT였다. 총 8량으로 되어있는 고속열차인데, 우리는 그 중 8호칸에 탑승했다. 수서역은 잠실이랑 가까워서 SRT를 골랐다고 했다. 대충 52분 정도 걸린다나.

 

최은준 씨가 창가 쪽 자리에 앉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리에 앉았다. 나는 복도 쪽에 있는 최은준 씨 옆자리였다.

"근데 수서역에 가면 어디로 가요?"

"거기 가면 잡아놓은 모텔 하나가 있습네다. 거기로 갈 겁네다.

나는 곧바로 수긍했다. 린장 시에서도 짐을 풀었던 곳이 모텔이랑 비슷한 곳이었으니까. 예전에 시즈오카 씨가 그랬는데 모텔이 가격도 공간도 적당해서 앞으로 자주 들를 거라고 했다.

 

최은준 씨의 말을 듣다보니 그가 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열차가 멈춰도 그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말을 재미있게 잘 해서 좋았다.

최은준 씨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최은준 씨는 예전에 평안북도 삭주군에 살았었다. 그의 아버지는 수풍로동자구에서 근무하셨는데 백두산 폭발로 인해 강이 범람하면서 휩쓸려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와중에 김정은이 지진으로 사망하면서 북한에 권력다툼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권력을 잡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고, 그가 인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개혁을 하던 과정에서 주체사상을 폐지시키고 현대식 교육을 도입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렸던 최은준 씨는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며 마지막에는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교에 유학을 갈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최은준 씨가 거기서 안드로이드 연구에 힘썼다길래 나랑 공통분모가 있어서 더 주의깊게 들었다.

 

그 외에도 리와인더에 대한 이야기나 지난 달에 김정은을 만난 이야기 등 그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끝까지 들을 새도 없이 열차가 수서역에 도착하는 바람에 말하는 도중에 내려야 했다. 참고로 시즈오카 씨랑 멜리사 씨는 피곤했는지 그동안 계속 옆에서 자고 있었다. 간간히 코를 골기도 했었다.

 

최은준 씨가 열차에서 내리고 말했다.

"아, 이거 말 안 해드렸수다. 이거이 원래 한혜림 동무가 가지고 다니던 건데, 주변이 안드로이드가 나타나면 위치를 알려주는 도구입네다. 3D 프린터로 복사했소웨다. 이거 가지라요."

"뭘 이런 걸 다..."

"일 없수다. 우리 다 하나씩 가지고 있수다."

나는 최은준 씨가 건넨 장비를 받아 내 가방에 넣었다. 가만히 보니 한혜림 씨가 밴에서 지도를 보여줄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스마트워치였다. 그녀가 이런 걸 가지고 다녔던 것은 아마 안드로이드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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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지제역-동탄역 구간에서 안드로이드와 리와인더 간의 전투가 벌어지는 걸 묘사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하면 수사받으므로 해당 스토리는 취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