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명과 지명은 사실과는 관계가 없으며, 이 이야기는 일체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음을 밝힙니다)

"저기 청년, 괜찮아?"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119, 119!"

"어떡해.."

"......."

 

 

 

 

 

 

 

 

 

 

 

 

"환자 분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눈을 떠보니 간호사가 말을 걸고 있었다. 의천 병원. 나는 서둘러 병원비를 결제한 후 병원을 나섰다. 해는 벌써 저물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이라 더웠다.

"의천군청... 여긴 어디야, 대체?"

바로 옆에 의천역이 있길래 기차 표를 사서 집으로 가려 했는데 젠장, 벌써 표는 끊겼다고 했다. 역무원이 내일 오전에나 다시 오랜다.

"에이씨... 그럼 어떡하지.."

일단 피곤하지는 않으니까 최대한 걸어가보자는 심정으로 걷고 있었다. 근데 최대의 결점이 있었다. 밥을 안 먹었다.

"아이, 배고픈데.."

마침 늦은 시간에도 운영하는 기사식당이 있어 거기서 밥을 먹고 최대한 걸어가보기로 했다. 포등령고개. 빛은 가로등 불빛 몇 개 뿐이고 이정표도 1.5km마다 하나씩 보인다. 제길. 오늘은 운이 없나 보네. 그때였다.

"민호야!"

낯익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고갤 돌려봐도 아무도 없었다.

"그래, 부모님은 여기 없어. 내가 아마 환청을 들었나 보지."

"민호야! 앞쪽!"

그러나 이건 너무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게 들렸다. 말대로 앞쪽을 봤더니 어머니가 계셨던 것이다!

"어, 엄마?"

"민호야, 밥은 먹었니?"

"네, 엄마."

그리운 엄마 곁으로 뛰어가려는데 가까이 가는 순간 자꾸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져있다.

"어..?"

아무래도 이젠 환각까지 보이나 보다. 그렇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계속 걷다보니 스마트폰의 시계는 21시 3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시간 쯤 걸은 모양인데, 그제야 다른 마을인지, 희미하게나마 불빛들이 보였다. 이정표가 있었다. [ 동지대역 ] 이라고 써져 있었다. 동지대학교도 보였다. 아, 여기가 한국의 명문대구나. 나도 한 때 여기 오려고 엄청 노력했었지. 사람이 보이길래 말을 걸어 봤다.

"저, 저기.."

"아, 꺼져! 공부해야된단 말이야!"

"......"

너무 매정하게 말을 끊겨 버렸다. 다른 사람도 말을 걸어봤지만 반응은 비슷했다. 갑자기 인생의 주마등이 지나가듯이, 고3 때, 공부에만 매진하느라 틀어져버린, 돌이킬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만들어버린 내가 생각났다. 기시감이 들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계속 퉁명스럽게 굴었다. 그래, 이건 내 진짜 성격이 아니었어. 후회가 된다. 역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야, 함민호!"

"아, 쫌!"

"하, 함민호, 너 갑자기 왜, 왜 그래..?"

"아, 닥쳐!"

"윽, 윽, 그, 그러면 아, 안.. 으아어아아어엉!!"

악몽을 꿔버렸다. 아침 8시. 날짜는 7월 31일. 우선 집에 가기로 했다.

"기천역까지 가요."

"네. 잠시만요... 표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차타고 집에 가는길.
함주역,
민천역,
호수역,
정주역,
신천역,
차산역,
려선역 등 처음 보는 역들을 지났다. 이런 역들도 있었구나.

"이번 역은 기천 역입니다. This station is Gicheon. 오른쪽 문으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The door is on your right."

어라? 벌써 밤이라고? 스마트폰의 시계는 낮 2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또 그때였다.

"함민호, 뭐하냐 안 나오고? 놀이터에서 놀자매!"

한창 초딩 때 친구, 연호였다. 그 때는 참 좋았지. 공부도 안 하고, 지금처럼 걱정할 일도 없고.. 순간 동심에 빠졌다.

"알았어, 빨리 갈께!"

그런데, 또 가까이 가자마자 사라졌다. 참 기묘한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둡지? 일단 역 밖으로 나왔긴 하니까 집을 찾아야겠다는 심정으로 1021번 버스를 탔다. 중학교 때는 이 버스를 많이 타고 등교했었지. 딱히 버스 안에서 할 게 없어서 창 밖을 보면서 가는 중이었다.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라.. 잠깐, 눈? 지금은 여름인데? 버스도 평소 가던 길이 아닌 완전 이상한 길로 가고 있었다. 반대쪽 종점으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낮이 밤이 되고, 여름에 눈이 오고, 버스도 이상해졌다. 이건 틀림없이 뭔가 잘못되었다! 일단 나는 버스 벨을 눌렀다. 내렸다.

"여, 여긴.."

이정표에 크게 [ 의천시청 ] 이라고 써져 있었다. 어젠 의천군청이었는데? 이것 뿐만이 아니다. 어젠 작은 시골 정도였던 도시가 번화가가 되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고 뛰어갔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채.

 

"눈을 떠, 함민호."

"마음의 눈을 떠."

갑자기 두 목소리가 들렸다. 난 일단 눈을 뜬 뒤 주변을 봤다. 완전한 암흑이었다. 순간 공포심이 들었다.

"누, 누구세요?"

두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얘기했다.

"너 빼고 갑자기 모든 게 바뀌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니?"

"넌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느끼게 했어."

"당황하게 했어."

"고민하게 했어."

"또, 멀어지게 했지."

"너 때문이야."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너 하나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지."

"이건 다 너 때문이야."

"히히히히히."

"이건 다 너 때문이야."

공포심이 극한까지 이르렀다.

"제, 제발 그마아아안!! 다 잘할 게... 헥.... 매정하게 대하지... 않을께.... 헥...... 친근하게......... 헥............ 대해줄께............. 헥... 그러니까......................."

 

 

 

 

 

 

 

 

 

순간, 눈이 떠졌다.

"환자분! 정신차리시겠어요?"

"헤.. 여긴... 헤... 어디죠...?"

"구급차 안입니다!"

"지금... 헤... 몇 시에요...?"

"7월 30일 오전 11시 9분입니다."

꿈이었다. 그러나 난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함민호,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