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사과

프롤로그

A 부족


우두머리가 나와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부족은, 오늘 서쪽으로 떠날 것이다.”

 

 그러자 한 노인이 나와 물었다.

 “서쪽으로 가면 더워서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족장이 맞받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르신.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허허, 저 같이 어리석은 옹이 안다면 뭐 얼마나 알겠습니까? 차기 족장님께선 너무 마음 속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부족민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서쪽으로 떠났다. 공기는 점점 더워져 옷은 땀으로 눅진해지고, 다들 입에서 절로 헉헉거리는 소리가 났다. 슬슬 족장에 대한 불만이 터질 무렵, 그가 직접 나와서 말했다.

 “일단 여기에 짐을 펴라.”

 

 역시나 처음은 부족이 분열하기 전과 똑같았다. 짐을 풀고, 수렵채집하고, 자원 부족해지면 옮기고. 다시 짐을 풀고, 수렵채집하고, 옮기고... 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중, 족장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발표했다.

 "저 동물이 의외로 쓸모가 많더군. 나의 오래된 대업인 사막 횡단을 위해 쓰일 수 있겠어."

 

 족장은 낙타를 보고 그리 말하였다. 부족민들은 잘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그동안 낙타를 단지 먹을 것 정도로만 생각했지 제대로 이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직접 보여주지. 낙시무스, 이리로 오거라!”

 

 낙시무스가 족장 쪽으로 갔다.

 “으으흐으흐으흐으흥.” 

 

 족장이 부족민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귀와 눈을 전부 집중하도록."

 

 족장은 낙타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먼저 낙타의 발바닥을 보아라. 뭔가 덮개처럼 덮여 있는 게 보이지 않는가?”

 

 부족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타는 이 덕분에 사막을 다녀도 절대로 발이 빠지지 않지. 그다음으로는 낙타의 입을 보여 주겠다.”

 

 족장이 낙시무스의 입을 벌렸다. 그러자 입천장의 뾰족한 돌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낙타는 이 돌기 덕분에 선인장도 다치지 않고 먹을 수 있지. 이것만 봐도 정말 사막을 건너기에 최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족장이 설명을 마치고 으쓱했다. 부족민들은 놀라서 이마를 탁 짚었다.

 “우리 부족이 여기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에만 계속 머무르면 더 이상 우리 부족에게 미래가 없음을. 그리하여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하던 와중 저 낙타들을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느냔 생각이 들었고, 낙타를 직접 관찰하고 탑승까지 하며 연구해보더니 그 생각이 딱 들어맞더군.

 그러니 부족민은 지금부터 모두 낙타 길들이기와 탑승 훈련에 매진하라. 나와 부족장들도 기꺼이 너희들을 돕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낙타에 익숙해졌다. 족장이 부족민들을 모아 다시 연설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저 사막을 단지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우리는 저 사막을 건너서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어쩌면 옛 선조들이 생각처럼 사악한 악마들이 득시글댈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부족의 미래를 위해서 저 사막을 건너가야 한다. 고단한 여행이 될 터이니 다들 채비를 단단히 하도록.”

 

 “옙!”

 

 여행이 시작되었다. 몇몇 낙타는 타고, 몇몇 낙타에는 짐을 싣고 서쪽으로 떠났다. 장거리 시승은 처음이라 그런지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대로 가면 모든 부족민이 지쳐 위험해질 처지였다. 족장은 잠깐 멈춰서 멀미의 원인을 연구하였다.

 “낙시무스, 한번 앞으로 가 보거라!”

 

 멀미의 이유는 단순했다. 한쪽 다리가 한 번에 두 개씩—이를테면 왼쪽 앞다리, 왼쪽 뒷다리, 오른쪽 앞다리, 오른쪽 뒷다리와 같은—나가는 낙타의 독특한 주법으로 인해 탑승자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족장은 이러한 연유를 밝히면서 그 해결책도 알렸다. 그러자 자연히 멀미하는 사람이 줄었다.

 

 다시 여행길에 올랐는데 얼마 가지 않아 뭔가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족장은 사람을 하나 뽑아 정탐시켰다. 곧 그가 돌아와, 오아시스 근처에 도적 캠프가 있으며 오늘 밤 우리 쪽으로 들이칠 것이라 알렸다.

 

 족장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내 이럴 줄 알고 특히 군사들에게 낙타 위에서의 무술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했지.”

 

 그리고 군사 대장에게 도적을 깨뜨릴 계책을 일러준 후, 나머지 부족민들을 언덕 뒤로 대피시켰다.

 

 밤이 되었다. 도적들은 짐을 실은 낙타가 매여 있는 곳으로 침입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눈이 돌아가서 각종 재물을 쓸어 담고 떠나려던 그때,

  “도적들은 게 섰거라!”

 

 왼쪽 언덕에선 족장이, 오른쪽 언덕에선 군사 대장이 낙타 병사들을 밀고 들어 왔다. 도적들은 금은보화를 버리고 도망쳤다. 족장은 도망치는 도적들을 전부 무찔렀고, 군사 대장은 그 기세로 본거지까지 쳐 없앴다.

 

 부족민들은 그날 밤 웃고 떠들며 쉬고 다음 날 다시 여행을 떠났다. 열흘 쯤 지나서 사막의 끝에 도달했다. 그들은 장막으로 거처를 만들고, 주위의 쓸 만한 가축이며 자원들을 거둬들였다.

 

 족장이 여러 번 바뀔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부족민들은 그때 거둔 가축들로 유목 생활을 했다. 또한 사막을 건널 수 있는 독보적인 기술을 통해 사막 너머에 있는 여러 부족과 중계 무역도 하였다. 그런 식으로 자원을 축적하여 부족은 마침내 국가가 됐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본인들이 모든 것을 갖추었다 생각하였고, 지금 가진 재산도 지키기 급급하여 그러한 것들을 잃을 수도 있는 도전을 몹시 꺼렸다. 그래서 나라는 한없이 정체되었다. 1년이고, 10년이고,  100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