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늑대가 서식하는 숲으로 향했다. 보통은 늑대를 잡는 데에는 초보 전사 1명이 나서는 경우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엄청난 반복행동으로 찌르기와 베기 등을 연습했다. 그에 따라 힘, 민첩, 체력, 인내 등을 연마했기에 늑대쯤을 가능할 것으로 자부할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니 내 능력치가 보였다. 

- 힘: 2010
- 민첩: 1985
- 체력: 2135
- 인내: 105
- 스테미너: 2450

힘, 민첩, 그리고 체력은 내가 처음 이 꿈속으로 들어올 때에는 각각 1000이었으니 이제는 거의 두 배 가량 상승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내가 과거에 플레이를 했던 일반적으로 RPG에서처럼 엄청난 상승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차근차근 증가하는 식이었지만, 그래도 엄청난 연습을 통해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용을 상대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아직까지 용의 기본적인 능력치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다만 평균적인 전사의 경우에는 1천 명과 싸워도 용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 휴. 한숨이 먼저 나오는군.

늑대가 자주 출몰하는 숲은 고요했다. 여기에서 이곳저곳을 샅샅이 돌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늑대는 인간의 피냄새를 잘 맡기 때문에 기다리기만 하면 스스로 찾아올 테니까. 나는 전투길드에서 배웠던 2번 베기와 2번 찌르기를 연마했다. 허공을 상대로 2번씩 찌르고 베는 것은 아주 어려운 동작은 아니었다. 단지 순간적으로 많은 스테미너를 소모할 뿐이었다. 한참 연습을 하니 역시 기운이 많이 빠졌다. 

나무 밑 풀밭에 앉아 느긋하게 호밀빵을 베어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늑대 3마리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바로 일어나 대결자세를 취했고 늑대로 경계성으로 으릉렁대기 시작했다. 늑대가 동시에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덤비는 한 놈부터 제압하면 되었다. 

숨을 가다듬는다. 가슴은 평온하다. 과거 고블린과 싸울 때에는 아저씨와 함께였지만, 지금은 내가 홀로 적을 감당해야 한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냉혹한 생존의 싸움이다. 늑대들의 눈을 노려보았다. 기세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늑대도 마찬가지일 터다. 내가 실력을 쌓는다면 우렁찬 으르렁거림이 언젠가는 깨갱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늑대가 달려오며 입을 벌렸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앞으로 전진하면서 늑대의 입 오른쪽으로 벗어나 놈의 목을 힘껏 베었다. 늑대의 목은 하나의 타격에 댕강 베어지지 않았지만 늑대는 덜렁거리는 목을 고꾸라뜨리며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어 쓰러졌다. 자신감을 얻어 달려 오는 두 놈의 가운데로 슬쩍 빠진 뒤 2번 베기를 시도했다. 일순간 대각선을 교차하며 늑대 두 마리의 목을 거의 동시에 베었다. 나는 3회의 손놀림만으로 늑대 3마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단검을 놀려 늑대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야말로 전투보다 더욱 지겹고 힘든 일이었다. 전투 시간은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늑대 가죽을 온전히 벗기는 데는 1시간 가량 걸렸으니 말이다. 일반적인 RPG에서는 기술을 시전하면 바로 가죽이 벗겨지더니. 내 꿈속에서는 상당히 더디고 고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늑대와의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나는 오직 걸음걸이와 검 휘두르기를 결합한 단련을 1년간 했을 뿐이었고 실전은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민첩과 힘으로 쉽게 늑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늑대 떼가 10마리 넘게 도전을 해왔지만 1마리당 1분의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과연 고블린과 늑대 중 어느 놈이 더 강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년간의 수련이 나로 하여금 장족의 발전을 내딛게 한 것만은 분명하다. 

날은 어두워졌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늑대 가죽을 벗기는 기술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는 했어도 하루 내내 벗긴 가죽은 40마리에 불과했다. 나는 나무를 기어 올라가 튼튼한 가지에 몸을 눕히면서 떨어지지 않게 가죽으로 몸을 동여맸다. 나 홀로 사냥을 하는 것이라 불침번을 세울 수도 없었기 때문에 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무 위에서 잠을 자는 것도 처음 몇 시간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언뜻 잠에 빠져들었으며 곧 깨어났다. 

다시 아침부터 사냥이 시작되었다. 점심에는 불을 피워 늑대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노릿한 냄새가 역겹기는 했다. 이런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는 언젠가 돈을 모아 향신료를 구매하면 될 것이다. 또 늑대고기를 장기간 식량으로 활용하기 위해 포를 떠서 나무에 매달았다. 나무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늑대 포가 장관을 연출했다. 

이런 나를 보고 늑대들은 달려들려고 하다가 슬슬 피하기도  했지만 나는 집요하게 추적을 해서 끝내 100마리의 할당량을 채울 수 있었다. 어제부터 시작된 가죽 벗기기는 조금씩 능숙해졌다. 사실 이러한 손놀림을 통해서 손기술의 능력을 향상시킴과 아울러 나의 민첩성 수치도 조금씩 상승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곰이나 늑대와 같은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재봉기술도 익히면 좋을 것이다. 용병도 일종의 사냥꾼일 테니까. 사냥꾼만 가죽옷을 입으라는 법은 없다. 

늑대가죽을 100장 벗겨냈지만 시간은 너무 늦었다. 용병길드의 근무시간이 지난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용병길드 앞에 있는 시내의 광장에서 잠을 청했다. 길을 오가는 사람은 비릿한 냄새에 코를 쥐어잡고 나를 피해 걸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개울가에서 몸을 씻을 수 없었다. 또 낮에는 따뜻했지만 밤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에 몸을 씻고 자면 감기에 걸릴지도 몰랐다. 아직은 돈이 없어 여관을 이용할 처지가 되지 않았다. 

다음 날은 일어나자마자 개울에서 깨끗이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옷을 빨아 말렸다. 참으로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는 셈이겠지만, 옷이 한벌밖에 없어 옷이 다 마르기까지 서너 시간의 물놀이는 심신을 개운하게 했다. 

용병길드를 찾아 100장의 늑대가죽을 제시하자 길드 사무원은 내 능력을 인정한다면서 아주 간단한 의뢰를 쪽지에 적어주었다. 나는 늑대가죽 100장과 가죽을 벗기는 단도를 교환하면서 담보로 맡긴 검을 되찾고 1실버의 돈도 벌 수 있었다. 과연 1실버의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우선 향신료와 바늘과 실이 필요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돈이 더 모인다면 앞으로는 노지가 아니라 여관에서 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