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터키탕" 하면 뿌연 증기사우나 속에서 남성 손님들이랑 마사지사 눈나들이랑 응응하고 거시기한 짓을 하는 그런 불건전업소를 생각하는데 실제 터키탕은 일본 못지않은 유구한 즈언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목욕탕계의 양대산맥이다. 이 터키탕의 기원을 찾으려면 무려 서기 600년대 중반 이슬람교 발흥 초기까지 올라가야 한다.


당시 서로마 멸망 이후 미개르만 부족들이 세운 소왕국들간의 빤쓰레슬링으로 개판이 되어 평생 하는 목욕이라고는 응애때 받는 세례가 전부였던 유럽과는 달리 아라비아 반도는 이슬람의 발흥으로 여러 도시 국가들이 분쟁을 멈추고 알라의 깃발 아래 하나로 모이면서 평화가 찾아오고, 알라께 잘보이려면 우선 위생부터 챙겨야 한다는 이슬람교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수많은 무슬림들이 목욕탕을 찾았다. 그러니 동로마 강역을 점거+이슬람교를 주류 종교로 신봉하던 오스만 터키 제국에서 목욕문화가 발달했던 것은 안봐도 비디오 아닐까.



오스만 터키 제국의 목욕탕, 줄여서 "터키탕"은 기존 로마식 목욕탕에서 바뀐 점이 많은데, 우선 고대 로마의 목욕탕과는 달리 터키탕은  고인 물을 부정하게 여기던 튀르크계 민족의 취향에 맞게 욕조에 물을 받아 쓰지 않는다. 대신 괴벡타쉬 (Göbektaşı) 라고 하는 구들장마냥 뜨끈한 돌 위에 누워서 거기서 나오는 수증기로 때를 불리고 있으면 남탕은 세신사 아재, 여탕은 세신사 아지매가 와서 때도 밀어주고 마사지도 해준다. 그렇게 때미리가 끝나면 괴벡타쉬에서 내려와 구석에 있는 수도꼭지에 나오는 물로 몸을 헹구면 된다. 또한 목욕탕이랍시고 고대 로마나 일본식 목욕탕처럼 홀딱 깨벗고 다니면 목욕탕 관리인 아저씨가 "으,,,,딜 알라님 영접하기 전에 몸을 씻는 신~성한 목욕탕에서 공연음란죄를 저지르느냐,,,,고~연 노무 이교도 쉐끼덜!!" 하면서 버럭 화를 내니 혹시나 터키탕에 가게 되면 페슈타말 (Peştamal) 이라고 하는 치부 가리개용 타월을 꼭 두르고 들어가자. 당연히 한국과 달리 개인 탈의실이 구비되어 있다.


터키인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하게도 오스만 제국의 공공위생에 지대한 기여를 한 터키탕은 유럽인들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인해 오스만 황실의 하렘 이미지가 섞이면서 우리가 아는 "증기탕에서 깨벗은 미녀들이랑 구르면서 거시기한거 하는 퇴폐업소"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실제 터키와 아랍권의 목욕탕은 알라께 기도 드리기 전에 몸을 씻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앞에 나온대로 남녀 구별과 노출 금지의 원칙에 철저했으며, 아무리 지좆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폭군도 목욕탕에서 음탕한 짓을 했다간 신하들이 뚝배기를 깨버려도 할말이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중세 유럽의 목욕탕이 고대 로마의 그것처럼 매춘업소를 겸했던 것을 감안하면 돼지 눈에눈 돼지만 보인다고 태조 이성계를 디스하신 무학대사님이 1승을 챙기신 것이다.


실제로 일본과 한국에서 목욕탕+안마시술소 컨셉의 성매매 업소를 터키탕으로 불러왔으나, 1996년 터키 대사관이 양국 대사관에 강력 항의하여 일본에서는 소프랜드, 한국에서는 증기탕으로 이름을 바꿨던 전력이 있다. 오죽 빡쳤으면 주한터키대사관에서 "터키탕 이름 안바꾸면 앞으로 터키 매음굴은 한국집이라고 부를거다"라고 항의서한을 보냈고, 625때 북괴들을 때려잡는데 도움을 준 터키에 대해 이미지가 좋았던 한국에서는 언론에서 터키탕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칼럼을 쓰기까지 했으며 이후 터키탕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한줄 요약: 목욕문화의 계승 여부만 봐도 제3로마의 정통성은 오스만조 카이세리 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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