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스트리트뷰 찍어봄 (2021-)

레바논 스트리트 뷰 추가된 기념으로 쓰는 글: 구글 맵스 리뷰와 위키피디아, 그리고 이 글을 주로 참조했음.


라우셰 바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동지중해를 향해 튀어나온 곶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위성도시까지 합쳐서 약 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레반트의 주요 대도시. 베이루트는 고대 페니키아 때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도시로, 로마 시대에는 법학의 중심지로 유명했고 중세에는 한때 십자군이 지배하기도 했던 지중해 무역의 기항지였다고. 근현대 도시 베이루트는 19세기 서구와 교역 중심지가 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20세기 중반에는 베이루트는 ‘동방의 파리’로 불리며 지금의 두바이처럼 중동의 금융 허브로 번영을 누렸다고.


베이루트 다운타운의 변화: 2001년과 2023년


1975년 레바논 내전의 발발은 60~70년대의 번영에 종지부를 찍었음: 도시 경제를 지탱하던 서비스업은 중단되고, 인프라는 파괴되었으며, 서로 어울려 살던 무슬림과 기독교도들이 각자의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되었음.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하리리 총리의 비전에 따라 솔리데르(Solidere) 사가 세워졌고, 대규모 재개발 사업의 결과 베이루트는 적어도 외양은 화려한 모습을 되찾았음(다만 이러한 재개발이 도시의 문화유산을 파괴한다는 비판도 강했음). 그러나 2019년 내습한 경제위기와 2020년 항구 폭발 사고는 다시 도시의 부흥에 제동을 걸었다고.


종교별 유권자 수(2017년)

오스만 시절 베이루트의 인구는 주로 순니 무슬림과 그리스 정교회 신도였는데, 현대에는 이촌향도로 인구 구성이 꽤 변화하였음. 레바논은 1932년 이래 인구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지만 총선 때 종교별로 등록된 유권자 수를 보면 인구 구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음. 2017년 베이루트 유권자의 63%는 무슬림(순니 46%, 시아 16%), 35%는 기독교도로 나타났는데 지역별로 보면 내전의 영향으로 도시의 서부는 무슬림, 동부는 기독교도로 양분된 모습.



베이루트시는 행정적으로 12개 구(ḥayy)와 60개 동(minṭaqah)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의 12구 체제는 1921년 정해졌다고 함. 베이루트는 비공식적으로 다운타운(Wasaṭ al-Madīnah, 마르파구 일대)과 동·서 베이루트로 구분되는데, 여기서 동서 구분은 내전 시기 도시의 무슬림과 기독교도 지역을 구분했던 ‘그린 라인’이 기준이 됨. 한편 국제적인 분위기가 강한 북서쪽의 베이루트곶(라스 베이루트) 일대를 제4의 구역으로 보기도 한다고.

※ 이 글에선 지도의 번호대로 서베이루트 → 다운타운 → 동베이루트 순으로 구들을 나열함.




베이루트의 관문인 베이루트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9km 떨어져 있으며, 1954년 비르하산의 비행장이 옮겨오면서 개항했음. 이 공항은 개항 초기에는 중동 제일의 허브 공항으로 레바논 국적기 및 외국 항공사들의 비행기들이 취항했으나 장기간의 내전으로 입지가 크게 약화되었다고. 2022년 기준 베이루트 공항은 634만 명이 이용해 중동에서 21번째로 이용객이 많은 공항이었는데, 레바논 인접국이 내전 중인 시리아와 적성국 이스라엘뿐이라 현재도 해외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거의 유일한 루트라는 듯.


이맘 호메이니 거리: 사진의 인물은 이란의 군인 가셈 솔레이마니

공항에서 베이루트 시내로 진입하려면 베이루트 남쪽의 위성도시(일명 ‘다히예 ḍāḥiyah’)들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들 위성도시들은 시아파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곳. 다히예는 전쟁 이전부터 레바논 남부 농촌에서 이주한 시아파들이 정착한 곳으로, 특히 내전 발발 이후 난민들이 모여들면서 인구가 급증했다고. 이 지역은 시아파가 많다 보니 헤즈볼라의 세력이 강한 편이며, 이스라엘과의 충돌 시 공습의 타겟이 되기도 했다고 함. 올해 초에는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남쪽 교외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을 암살한 일이 있었음.


샤틸라 난민촌 북쪽, 사브라 지역

도시 남쪽에는 샤틸라나 부르즈 엘 바라즈네와 같은 팔레스타인 난민촌들이 여럿 위치해 있는데, 사실 팔레스타인인 추방도 70년이 넘게 지난 만큼 현재는 임시 거주지라기보단 오래된 빈민가 같은 인상.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PLO도 이전에는 베이루트 남부의 난민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고 함. 이 난민촌은 내전 시기 사브라-사틸라 학살과 난민촌 전쟁 등 분규의 장이 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레바논에 대규모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들이 새로 정착하기도 했다고.


하페즈 아사드 거리의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

샤틸라 캠프 바로 옆에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이란 레바논 최대(수용인원 49,500명)의 경기장이 자리잡고 있음. 경기장은 1957년 건립되었으나 1982년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가, 전쟁 이후 2000년 아시안컵을 준비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지원을 받아 재건되었음. 우리나라와의 접점은 2011년 월드컵 예선에서 FIFA 랭킹 146위였던 레바논에게 졌던 레바논 쇼크의 배경... 정도인 듯?



[上] 사에브 살람 거리, [下] 마즈라의 골목

1. 마즈라 المزرعة

면적 3.8km², 인구 122,861명(이하 2013년)*. 베이루트 남쪽의 구로 도시 인구의 30% 가량이 거주하는 인구 밀집 지역. 구의 이름은 농장이란 뜻으로 옛날에 이 지역에 레몬과 오렌지 등을 기르는 과수원이 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현재는 교통의 요지(북쪽 항구와 더불어 각 지방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라고)이자 집들이 빽빽히 들어선 주거 지역이 되었음.

※ 면적은 UNOCHA에서 제공하는 행정구역 경계를 이용해 QGIS로 계산, 인구는 UNHCR 출처.


호르시 베이루트

이 구역에는 호르시 베이루트라고 하는 도시에서 가장 넓은(0.3km²) 도시공원이 있는데 중세 때부터 이어져내려온 오래된 숲. 내전 이후 한동안 공원은 폐쇄되어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으나 2015년에 다시 대중에 개방되었다고. 이 숲에는 19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대사관저와 커다란 경마장도 위치해 있음.



공원 동쪽으로 선사 시대에서 페니키아, 그리스-로마에서 중세 맘루크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대의 유물을 모아놓은 레바논 국립 박물관이 들어서 있음. 박물관은 1942년 문을 열었으나 내전 발발 이후 전투 지역의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는데, 박물관의 큐레이터였던 고고학자 모리스 셰합이 유물들을 콘크리트 속에 숨겨놓아 소장품을 지켜냈다고. 전후 박물관은 수리를 거쳐 1999년 다시 문을 열었음.


다마스쿠스 거리

박물관 앞으로 구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다마스쿠스 거리는 지금은 평범한 길이지만 1975년부터 1990년까지는 무슬림과 기독교 지역을 가르는 경계선이었음. 거리를 둘러싼 건물들에는 양측의 저격수가 배치되었고,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는 길에 수풀이 무성히 자라면서 해당 경계선에 ‘그린 라인’이란 별명이 붙었다고. 현재는 거리 구간 대부분이 재개발되어 적어도 보이는 모습으로 옛날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움.



박물관 주변의 바다로는 다마스쿠스 거리 서쪽이지만 내전 당시 동베이루트에 속했던 지역으로, 구의 나머지 부분과 비교하면 상당히 깔끔한 느낌의 동네. 이 일대는 20세기 초 숲을 끼고 계획적으로 조성되었으며, 60년대엔 시리아의 부유한 기독교인들이 사회주의 정권을 피해 이주해온 지역이라고 함. 현재 바다로는 중상류층 지역이자 도시의 주요 비즈니스 지역으로 회사 사무실들과 늦게까지 영업하는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밀집해 있다고.



[上] 무사이트베 모스크, [下] 무사이트베의 골목

2. 무사이트베 المصيطبة

면적 4.1km², 인구 92,777명으로 역시 시내 남쪽에 있는 구역. 사에브 살람 거리를 기준으로 북쪽에 있는 동네와 남쪽에 있는 동네 사이에 분위기 차이가 조금 있음. 구의 북쪽은 마즈라 바로 서쪽에 있는 오래되고 인구밀도가 높은 주거지역으로, 전해지기로는 십자군 전쟁 당시 도시를 포위했던 맘루크 군인들이 눌러앉은 게 동네의 기원이라고 카더라. 비교적 역사가 짧은 지역인 남쪽은 베이루트에서 유일하게 모래로 된 해변이 펼쳐져 있는 지역임.


사나예 공원

사나예 정원은 오스만 말기 조성된 베이루트의 대표적인 공원 중 하나로 분수대와 잘 단장된 나무들이 있는 곳. 도심과 가까운 이 공원은 2010년대 초에 재정비를 해서 상당히 깔끔해졌다고. 일반적으로 이곳은 공원이 위치한 동네 이름인 사나예라고 불리지만 공원의 공식 명칭은 역사적으로 계속 바뀌어 왔는데, 현재의 공식 명칭은 내전 말기 공원 근처에서 암살당한 대통령의 이름을 딴 르네 모아와드 정원임.


람레트 엘 바이다

베이루트는 곶이다 보니 대부분 바닷가가 절벽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구역 서쪽으로는 아랍어로 백사장이란 뜻의 람레트 엘 바이다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음. 이 해변은 길기도 하거니와 많은 경관이 사유화된 베이루트에서 몇 안 남은 공용 해변이라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인데, 2010년대 해변이 리조트 소유가 된다는 떡밥이 돌았을 때 반대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고. 해변 주변에는 호텔과 고급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데 내전 이후 시리아군 주둔 시기(1987-2005)엔 시리아 정보기관이 이곳에 본부를 차리고 사람들을 수감하는 장소로 쓴 흑역사가 있다고.


[上] 성 엘리야 성당, [下] 마르 엘리아스의 아파트

구역 남쪽 마르 엘리아스(‘성 엘리야’)에는 규모는 작지만 베이루트 시계 내의 유일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있음. 마르 엘리아스 난민촌은 1952년 성 엘리야 수도회에서 이스라엘 북부에서 피난해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수용하고자 세웠으며, 현재는 소수의 기독교도 난민과 최근 유입된 시리아 난민들이 거주한다고. 난민촌 주변은 대조적으로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국제기구와 대사관들이 모여있는 모습.



[上] 샤를 드골 거리, [下] 라스베이루트의 골목

3. 라스베이루트 رأس بيروت

면적 2.5km², 인구 49,660명. 구역 이름은 ‘베이루트 곶’이란 뜻으로 이름 그대로 지중해를 향해 북서쪽으로 튀어나온 곶에 있는 지역. 라스베이루트 지역은 베이루트의 부유한 지역으로 노천 카페와 세련된 레스토랑 및 상점으로 유명한 거리들이 있다고 함. 라스 베이루트 지역은 근대에 많은 외국 기관들과 대학이 들어온 지역으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이 섞여 살고 자유주의적이고 국제적인 분위기로 유명함.


인근 카페에서 내려다본 라우셰 바위

라우셰 바위(비둘기 바위)는 이 구역에 있는 베이루트의 랜드마크. 바위가 보이는 절벽 위엔 카페가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는 고층 아파트와 레스토랑, 호텔들이 모여 있음. 바위 아래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보트 투어를 하면 둘러볼 수 있다고 카더라.


[上] 함라 거리, [下] 블리스 거리

구역 북쪽의 함라는 도시의 주요 대학들이 모여 있는 번화한 — 사실 요즘은 경제난으로 번화하지 못하다고(...) 지역. 이 동네에는 60~70년대 도시의 지적 활동의 중심지로 베이루트의 샹젤리제로 알려졌던 함라 거리,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 정문과 맞닿은 대학가 블리스 거리를 비롯해 유명한 번화가들이 모여 있음. 내전 이전에는 함라 지역이 도시의 명실상부한 문화적 중심지였는데 현재는 동베이루트 지역에도 새로운 번화가가 여럿 생겨났다고.


[上] 베르됭 거리, [下] 드루즈 센터

동쪽으로 무사이트베 구와 경계를 이루는 베르됭 거리는 대형 쇼핑몰과 패션 부티크 등이 모여 있는 고급 쇼핑 지역. 베르됭 거리에는 레바논 드루즈교의 본산인 드루즈 센터(건물 자체는 무사이트베 구임)도 위치해 있음.



파리 거리

4. 다르엘므레이세 دار المريسة*

면적 1.0km², 인구 6,983명. 베이루트곶 북쪽 해안을 따라 가늘고 길게 이어진 구역. 이곳은 지중해를 따라 이어진 파리 거리가 유명한데, 코르니슈(Corniche)로 일컬어지는 해안 산책로가 바다를 따라 길게 나 있고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 등이 늘어서 있는 동네임.

※ 다르엘므레이세(므레이세의 집) 대신 아인엘므레이세(므레이세의 샘)로도 불리는 듯.



이 구역에는 레바논은 물론 아랍권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대학 중 하나인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AUB) 캠퍼스가 위치함. 이곳은 1866년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시리아 개신교 대학으로 출범했으며, 레바논뿐만 아니라 아랍 세계 전역에서 지도자와 학자들을 배출한 학교(우리에게 유명한 비정치인 동문이라면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있을 듯). 베이루트는 아메리칸 대학 외에도 19세기 세워진 전통 있는 사립대가 많아서 아랍권에선 학문으로 유명한데... 구글링해 보면 최근에는 경제 위기로 교육 부문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듯.



[上] 호텔 밀집 지역, [下] 와디 아부 자밀

5. 미네트엘호슨 ميناء الحصن

면적 0.6km², 인구 1,541명. 코르니슈 해안과 다운타운 사이에 있는 작은 구역. 미네트엘호슨은 전쟁 전부터 도시의 호텔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지금도 대로를 따라 높은 건물의 4·5성 호텔이 즐비함. 다운타운과 가까운 와디아부자밀 지역은 옛날에는 도시의 유대인 지구였던 곳인데 현재는 솔리데르의 도심 재개발 사업을 거쳐 고급스런 주택들이 들어선 모습.



그런데 미네트엘호슨의 호텔 지구에는 총알 구멍이 가득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1974년 문을 연 홀리데이 인 베이루트 호텔 건물. 이 호텔은 완공된 지 불과 1년만에 전쟁으로 문을 닫았고, 도시를 전망할 수 있는 감제고지인 호텔은 처음에는 무장세력 간의 전장이 되었음. 종전 이후에는 건물의 두 소유주 간 분쟁이 생겨서(...) 30년 넘게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고 함.



항구 근처의 자이투네 만 일대는 2010년대 초 솔리데르에 의해 재개발된 지역으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밀집해 있음. 바다를 따라서는 목제 데크로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요트들이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모습. 근데 이 개발 사업은 원래의 도시에서 보이던 지중해 전망을 차단하고 부유층에게 독점적인 공간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上] 주카크엘블라트의 골목, [下] 초대 대통령 베샤라 엘 쿠리의 저택

6. 주카크엘블라트 زقاق البلاط

면적 0.5km², 인구 16,008명. 도심 남서쪽에 있는 작은 구역으로 구의 이름은 ‘자갈이 깔린 골목’이라는 뜻. 언덕 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은 19세기 상류층들이 저택을 짓고 자리잡은 곳으로, 근대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정착해 외교공관과 서양 학교들이 세워졌다고 함. 내전 이후 동네의 외교 공관과 학교 등은 대부분 떠났으나 현재도 근대유산격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고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많은 건물들이 철거되었다고 함.



이 구역에는 오랫동안 베이루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부르즈 엘 무르’가 솟아 있음. 1974년 건설되기 시작한 마천루는 착공 1년만에 내전이 발발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고, 40층 높이의 미완공 빌딩은 무장세력의 망루로 사용되었음. 전쟁 이후로도 부르즈 엘 무르는 텅 빈 채 방치되어 있는데, 장기적으로 재개발될 계획은 있지만 언제가 될진 미지수라고.



구의 북쪽 언덕 꼭대기에는 레바논 총리 관저인 세라이(Serail)가 있음. 이 언덕은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위치라 19세기 초 오스만-이집트 전쟁 때 주둔지로 이용되었는데, 1853년 오스만 제국은 언덕에 요새를 쌓고 총독의 본부로 사용하였음. 이 건물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프랑스 고등판무관 관저와 레바논 정부청사로 계속 이용되다가 내전 기간 전소되었는데, 1998년 복원된 후에는 총리의 집무실로 쓰이고 있음.



[上] 베이루트 디지털 지구 일대, [下] 바스타 엘 타흐타 지역

7. 바슈라 الباشورة

면적 0.5km², 인구 21,334명으로 도심 바로 남쪽에 있는 작은 구역. 이 구는 인구밀도가 높고 오래된 도시 지역으로 도시의 무슬림 묘지가 위치해 있는 동네임. 구역 북쪽은 내전 이후 황폐화되었다가 현재는 베이루트 디지털 지구가 지정되면서 IT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사무용 빌딩들이 들어선 한편, 남쪽 지역은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주거지역. 



베이루트 다운타운 

8. 마르파 المرفأ

면적 1.6km². 베이루트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구역으로 거주 인구는 거의 없고 상업·업무지구로만 이루어져 있음. 구의 이름은 아랍어로 항구를 의미하는데(아예 영어로 Port로 옮기기도 하는 듯), 실생활에서 ‘마르파’라 불리는 지역은 구의 동쪽 해안지역에 국한되고 서쪽 지역은 다운타운으로 일컬어진다고 함. 어쨌든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도시가 형성된 역사지구로, 레바논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음.


네즈메 광장

다운타운의 중심이 되는 곳은 1920년대 조성된 네즈메 광장(Sāḥat al-Najmah, ‘별 광장’). 원형 광장은 1920년대 파리의 에투알 광장(現 샤를 드골 광장)을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광장 주변으로는 상점가들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감. 광장 가운데에는 시계탑이 자리잡고 있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고, 한켠에는 1934년 건축된 레바논 국회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둘 다 아르메니아계 레바논 건축가인 마르디로스 알투니안의 작품임.


[上] 베이루트 수크(2018년 11월), [下] 마라드 거리(2023년 4월)

네즈메 광장 북쪽은 원래 베이루트의 역사적 상업 중심지로 커다란 재래시장(수크)이 있었고, 남쪽으로는 프랑스 식민 시절 파리를 본따 조성된 상점가인 마라드 거리가 있음. 이들 상업 지구는 내전기 무장세력 간의 격전지가 되면서 황폐화되었으나 전쟁 이후 솔리데르의 재개발로 세련된 고급 쇼핑가로 변모하였다고(다만 전통시장을 상류층 지구로 재개발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됨). 그러나 2020년 불과 1km 떨어진 항구에서 일어난 대폭발은 다운타운의 상업 지구에 치명적 피해를 끼쳤고, 폭발 이후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현재는 다소 휑한 모습이 되었다고 함.


[上] 성 게오르기우스 정교회 성당, [下] 로마 포럼

광장 남쪽에는 1764년 건립된 성 게오르기우스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 자리잡고 있음. 사실 이 자리에 세워진 대성당은 5세기 세워진 아나스타시스 성당이 시초였지만, 551년과 1759년 지진으로 도시가 거듭 파괴된 후 18세기에 현재의 성당이 재건되었다고 함. 성당은 로마법 연구의 중심지였던 베리투스 법학교 위치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1990년대 전후 복구 과정에서 성당 옆의 로마 포럼을 발굴하면서 5세기 법학교 교수의 묘석이 발견되었다고 함.


[上] 성 게오르기우스 마론파 성당, [下] 성 엘리야 성당

베이루트 도심부엔 그리스 정교회뿐만이 아니라 레바논에 있는 다양한 종파들이 각자 대성당을 가지고 있음. 첫 번째 사진의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은 레바논 최대 기독교 종파인 마론파 가톨릭 성당으로 1894년 로마의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모델로 건축된 건물. 도시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 가톨릭 신도들도 각자의 성당을 가지고 있는데, 두 번째 사진은 1928년 아르메니아와 로마 양식의 혼합으로 지어진 아르메니아 가톨릭의 성 엘리야 대성당의 모습임.


[上] 오마리 대모스크, [下] 무함마드 알 아민 모스크

베이루트의 무슬림들은 원래 13세기 고대 유피테르 신전의 자리에 세워진 오마리 대모스크에서 예배를 보았다고 하는데, 이 모스크는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에 맘루크 양식 입구와 첨탑이 추가되고, 근대에는 다운타운 디자인에 맞춘 외벽(리와크)이 덧붙어 역사를 느껴지게 하는 건물. 내전이 끝난 이후에는 베이루트에 새로운 모스크를 짓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 프로젝트 결과 2008년 오스만 양식의 새로운 무함마드 알 아민 모스크가 문을 열었음.


순교자 광장

아민 모스크 앞으로는 바다를 향해 기다랗게 열린 순교자 광장(Sāḥat al-Shuhadāʾ)이 위치함. 원래 이곳은 성벽 바깥에 방어차 비워둔 공간을 1878년 근대적 광장으로 재단장한 곳으로, 1차대전기 오스만 제국에게 처형된 아랍 민족주의자들을 기리고자 1931년 순교자 광장으로 명명되었음. 50~60년대 광장은 도시의 상업 중심지였으나 내전기에는 베이루트를 동서로 나누는 경계선이 되어 황폐화되었다고. 전쟁 후 복구된 광장은 2005년 삼나무 혁명과 2019년의 10월 17일 혁명 등 여러 시위의 무대가 되기도 했음.


베이루트 항구(2020년 9월)

2020년 6월
2023년 4월


구의 동쪽에는 베이루트 항구가 위치해 있음. 베이루트 항구는 레바논은 물론 동지중해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인데 2020년 8월 창고 화재로 질산암모늄 2,750t이 폭발하는 대참사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다운타운이나 마르 미카엘처럼 항구 근처에 위치한 동네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 문제의 폭발물은 2013년 모잠비크로 향하던 화물선이 예정에 없이 하역한 것인데 7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관리 소홀로 폭발했다고. 3년이 지났지만 사건의 책임에 대한 수사는 진전이 없고, 항구 역시 피해가 적었던 바깥쪽 부두를 제외하면 2024년 현재까지도 복구가 미진한 모양.



베이루트 항구 북쪽으로는 커다란 간척지가 있는데 원래는 노르망디 매립지(호텔의 이름을 따왔다고)란 이름의 쓰레기장이 있던 곳. 웬만해선 도심 코앞에 쓰레기를 매립하진 않겠지만 내전 기간 서베이루트 주민들의 동베이루트의 쓰레기장 접근이 차단되자 도시 앞바다에 쓰레기를 투기하면서 자연스레 매립지가 형성되었다고 함. 종전 이후 레바논 정부는 쓰레기장을 육지로 만들어 재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2024년 현재로선 아직 대부분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음.



[上] 마르마룬 교회 일대, [下] 사이피 빌리지 

9. 사이피 الصيفي

면적 0.4km², 인구 3,241명으로 도심 바로 동쪽에 있는 작은 구역. 지금까지 다룬 구들이 무슬림 지역이라면 이곳부터는 도시의 기독교도 지역에 속함. 내전 시기 큰 피해를 입은 중심 블록은 솔리데르에 의해 사이피 빌리지라는 이름의 동네로 재개발되어 고급스런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들어선 유럽풍 거리가 되었는데, 뭔가 근본없는 느낌이라는 평도 있는 듯.


[上] 모노 거리, [下] 게마이제의 구로 거리

이 구는 역사적 거리에 형성된 유명한 상업지구들이 있음. 구역 남쪽의 모노 거리는 다운타운과 아슈라피예 지역을 남북으로 잇는 거리인데, 레스토랑과 상점, 바 등이 모여 있음. 2000년대 이후로는 구역 북쪽에 있는 게마이제의 구로 거리 일대가 세련된 레스토랑과 카페, 바 등이 모여 있는 번화가로 부상했다고 함. 그런데 항구와 가까이 있는 게마이제 같은 경우 2020년 항구 폭발 당시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고.



[上] 샤를 헬루 거리, [下] 마르 미카엘

10. 메다와르 المدور

면적 2.0km², 인구 6,609명. 베이루트 동북쪽 바닷가에 있는 구역. 이 구는 구역의 중앙을 관통하는 샤를 헬루 거리(라기보단 대로)를 기준으로 부유한 상업 중심지인 남부와 산업 지구인 북부의 분위기가 꽤 다른 편. 대로 남쪽으로는 사이피 구의 게마이제에서 구로 거리를 따라 이어지는 번화가인 마르 미카엘이 위치해 도시의 유명한 레스토랑과 카페, 갤러리 등이 모여 있음. 메다와르의 경우 구 전역이 항구와 가까이 있어서 2020년 항구 폭발 때 많은 피해를 입은 구역이기도 하다고.


베이루트 기차역

메다와르에는 베이루트 기차역이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사진처럼 폐허가 된 상태. 베이루트 역은 1895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운행을 시작했는데, 내전 발발 이후 철도망이 훼손되면서 1976년 국제 열차 운행은 중단되었고, 근교로 운행하던 통근 및 화물 열차도 1990년대 영업을 종료해 현재 레바논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음.


카란티나의 스페이르-젬러 갤러리

항구와 접한 구역 북부의 카란티나 일대는 공장과 대형 창고들이 들어서 있는 도시의 공업 지대로, 항구 및 쓰레기 매립지와 맞닿아 있어 거주 환경이 매우 나쁜 지역. 예전에는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비롯된 거대한 빈민가가 있었으나 내전 기간 민병대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함. 최근에는 이 지역도 공장들이 갤러리로 개조되고 대형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는 행사장이 들어서는 등 변화가 일어났다고.



레바논 산맥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드는 베이루트 강은 베이루트 시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음. 현재의 베이루트는 딱히 섬이 아니지만 아주 먼 옛날에는 베이루트 도시 자체가 강 하구의 하중도에 위치해 있었다고 함. 지역 전설에 따르면 성 게오르기우스가 이 강 어귀에서 드래곤을 무찔렀다고 전해진다고 카더라.


[上] 성 바르탄 교회, [下] 부르즈 함무드의 골

베이루트 강 바로 건너편의 부르즈 함무드는 행정적으로는 베이루트 시와 독립된 위성도시로, 인구밀도가 매우 높고 커다란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 이 일대는 베이루트의 아르메니아인 지구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20세기 초 오스만의 박해를 피해 도망친 아르메니아인들이 베이루트강 하구의 습지에 정착하면서 생겨남. 최근에는 시리아를 비롯해 다른 나라 출신 난민들도 부르즈 함무드에 정착하면서 지역의 인구구성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고.



[上] 성 니콜라스 성당, [下] 정교회 병원

11. 르메일 الرميل

면적 1.0km², 인구 33,283명. 베이루트 동북쪽에 있는 좁고 기다란 구로 대중적으로는 아슈라피예의 일부로 인식된다고 카더라. 이곳은 베이루트의 기독교 지역 중 하나로 성 니콜라스 성당과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을 비롯한 정교회 성당, 그리고 19세기 문을 연 정교회 병원 등이 위치해 있음. 이 구는 수르소크 거리와 같이 베이루트의 기독교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주거지역을 포함하고 있다고.


수르소크 궁전

수르소크 거리는 18~19세기 베이루트의 여러 귀족 가문들이 저택을 지었던 곳으로, 현재는 거리의 건물들이 대부분 고층 아파트로 바뀌었으나 몇몇 저택은 아직까지 남아 있음. 거리 이름의 유래가 된 수르소크 가는 베이루트의 부유한 정교도 귀족 가문으로 르메일에 수르소크 궁전(1860년)과 개인 별장(1912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 건물은 현재도 남아 있으며 특히 후자는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음. 불행히도 2020년 항구 폭발은 르메일의 오래된 빌라들에게도 큰 피해를 끼쳤고, 현재 수르소크 궁전과 박물관은 수리 중에 있다고 함.



[上] 사신 광장, [下] 아슈라피예의 골목

12. 아슈라피예 الأشرفية

면적 3.2km², 인구 70,726명으로 남동쪽 산비탈에 있는 기독교 지역. 행정구역상 구의 중심은 언덕 꼭대기의 사신 광장 일대인데, 대중적으로는 도시 동쪽 고지대를 통틀어 아슈라피예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이 동네는 19세기 도시의 부르주아들이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데 유래하는데, 19세기 말 레바논 산지의 종교 분쟁으로 기독교도들이 피난을 오면서 인구가 크게 늘었다고. 현재 아슈라피예 지역은 동베이루트 지역의 중심으로 기업 사무실과 상점, 고층 아파트가 밀집한 번화한 지역임.


사마 베이루트

베이루트에서 높은 건물은 한동안 다운타운의 폐허(...) 부르즈 엘 무르가 갖고 있었지만 2000년대 아슈라피예 일대의 부동산 붐으로 고층 건물 리스트가 새로이 갱신되었음. 2016년에는 소데코 지역에 ‘사마 베이루트’가 지어져 현재까지 도시 최고층 건물 자리를 지키고 있음. 사마 베이루트의 기록은 사신 광장 일대에 지어질 ‘더 엣지’가 깰 예정이었으나... 2019년 경제 공황이 찾아오고 부동산 건설 붐은 거짓말처럼 끝나버렸다고.


베이트 베이루트: 왼쪽의 노란 건물

사마 베이루트가 있는 소데코는 지금은 구역의 번화한 상업 지구지만, 내전 기간에는 ‘그린 라인’이 지나는 최전선이었음. 그린 라인 주변의 손상된 건물들은 전후 대부분 철거 및 재건축되었는데, 1920년대 지어진 아파트인 바라카트 하우스 역시 철거될 운명에 놓였으나 건축가 모나 할라크를 중심으로 내전의 상처를 기억할 곳이 한 곳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활동가들의 반대로 철거되는 대신 베이루트의 집(베이트 베이루트)이란 이름의 박물관으로 재개장했다고 함.



[上] 시티 센터 베이루트 쇼핑몰, [下] 바브다

베이루트에서 위성도시(다히예)는 보통 남쪽의 시아파 밀집지역을 가리키지만 동쪽 산비탈에도 위성도시들이 많이 있는데, 이쪽은 대체로 기독교인이 살고 소득수준이 높은 편.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하즈미예의 ‘시티 센터 베이루트’는 레바논에서 가장 큰 현대식 쇼핑몰이라고 함. 베이루트 남쪽으로 10km 떨어진 바브다는 오스만 말기 레바논의 수도였던 곳으로 현재 레바논 대통령궁이 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도시임.



베이루트 동쪽 외곽의 명소 중 하나는 도시에서 북동쪽으로 20km 떨어진 나흐르 엘 칼브 계곡에 있는 제이타 동굴. 레바논산맥 서쪽에 있는 동굴은 길이 9km의 거대한 석회 동굴로, 바닥에는 지하 강이 흐르며 동굴 위쪽에 관광객이 들어갈 수 있는 750m 길이의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음. 참고로 이 지하 강은 베이루트 상수도의 수원지 역할도 하고 있음.



베이루트 시내 전경

이상은 중동의 파리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풍경. 베이루트는 동과 서를 잇는 국제적 허브로서 금융과 관광 중심지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두바이의 선구자격 도시라 할 수 있는데, 1975년 이후 끝없는 억까(...)로 옛날의 위상을 유지하진 못한 모습. 그럼에도 오랜 역사와 문화적 자유로움과 풍부함 등은 걸프 만 도시들이 쉽사리 대체하지 못할 요소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