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홍콩이라는 도시를 소개할 것입니다. 홍콩의 뜻은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으로, 이름에서부터 항구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홍콩이 있는 그곳은 원래 아무것도 없던 곳이었지만, 1차 아편전쟁 이후에 홍콩섬이 영국에 정식으로 할양되고 빅토리아 시라고 불린 것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차 아편전쟁 이후 구룡반도 지역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계라고 불리는 지역까지 영국령이 된 이후 홍콩은 동양에서 가장 서양적인 도시가 되었고 서양의 무역 기지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많은 자본가와 일반 시민들이 자본주의 체제인 홍콩으로 내려와 이때부터 홍콩은 스카이라인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영국이 신계를 99년 조차로 빌려 가서 1997년에 홍콩의 신계를 돌려주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처음에는 중국 정부는 청나라를 승계하지 않아 홍콩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였지만, 중국이 거부하여 신계만 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홍콩의 도심은 홍콩섬과 구룡 반도로 주거지역인 신계가 중국에 귀속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했고,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따라 홍콩은 일국양제, 즉 민주주의를 지키는 대신 홍콩을 모두 중국에 돌려주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조약에는 홍콩의 기존 체제를 유지한다고 나왔는데,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인 크리스 패튼은 구의회 및 국회 격의 입법구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어 독재국가 중국을 긴장하게 하여 마찰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홍콩은 1997년 중국령 홍콩 특별행정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00여 년을 따로 살아오고 정치 체제마저 달랐던 중국과 홍콩은 지속해서 마찰을 빚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위 중 대표적인 것이 우산 시위인데, 이는 시위 중 최루탄을 막기 위해 우산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원인은 역시 독재국가인 중국이 홍콩을 자신의 입맛대로 조종하려다가 저항하는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한 것입니다. 2014년의 우산 시위로 홍콩 민주주의의 훼손을 만천하에 폭로하여 전 세계가 중국에 항의하였지만, 시위는 결국 시민들이 힘이 빠져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이번 년에 중국이 홍콩 사람들을 중국으로 소환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시위에 참여 가능한 사람의 절반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으며, 주도층은 SNS 등에 익숙해 소식 전달이 빠른 10대에서 20대가 되고 있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이번 시위가 망하면 더 물러설 곳이 없다며 죽을 각오를 하고 중국 정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도 세계의 관심이 홍콩에 있는 상황에서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홍콩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유튜브에 광고를 올리며 민주파 의원들도 합세하는 등 전 세계적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장 영국적이며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 홍콩에 빨리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긴 했는데 내가 읽어도 그닥이다

(그리고 또 잡혀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