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개성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중인데


고려사 기록만으로는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다른 사서도 뒤져봄


근데 왜 더 혼란해지냐 시발?




고려사 지리지(1451)세종실록지리지(1454)신증동국여지승람(1530)증보문헌비고(1903)
고구려부소갑부소갑,동비홀부소갑
신라 경덕왕송악군송악군,개성군송악군
고려 태조 2년송악 남쪽에 도읍,
개주로 고침
송악 남쪽에 도읍,
개주로 승격
송악산 남쪽에 도읍,
'두 고을(송악,개성)'에 걸쳐 개주로 삼음
송악을 개주로 고침
고려 광종 11년개경을 황도로 고침X황도로 고침개경으로 고침
고려 성종 14년개성부로 고침
고려 현종 9년부 폐지



*삼국시대 (개주의 전신에 관하여)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증보문헌비고

원래 고구려 부소갑이었다가 경덕왕때 송악군으로 고치고 고려 태조때 개주로 고쳤다고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소갑, 동비홀(이후 송악군, 개성군) 두 고을이 개주의 전신이라고 기록


=>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따르는 견해가 주류





*고려 태조 2년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고려 태조가 송악 남쪽에 도읍하고 개주로 고쳤다고 기록

(고려사에서는 '고치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승격'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어찌됐든 개주로의 명칭 변경이 있었음)


-증보문헌비고

송악을 개주로 고쳤다고만 언급


-신증동국여지승람

송악산 남쪽에 도읍하고 '두 고을(송악과 개성)'에 걸쳐 개주로 삼았다고 기록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따라 송악과 개성을 통폐합하여 개주를 설치했다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증보문헌비고에서는 표현의 차이만 조금 있을뿐, 대체로 송악을 개주로 고친 사실을 기술하고 있음





*고려 광종 11년 (제일 혼란스러운 부분)


-고려사 지리지

개경을 황도로 고침 (아까는 개'주'였다면서... 갑자기 개'경'을 황도로 왜 고치는데...)


-세종실록지리지

광종 대의 개성의 명칭 변경에 대한 기록이 없음


-신증동국여지승람

(개주를) 황도로 고침


-증보문헌비고

(개주를) 개경으로 고침 (?????)


=>4개의 사서에 전부 다르게 기술되어 있어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임 (개경->황도/개주->황도/개주->개경)

지금까지 흐름상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서로 이렇게나 다를 이유가 있나





*고려 성종/고려 현종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모두 공통적으로 성종때에 개성부로 고쳤다가 현종때에 부를 폐지하였다고 기록




-고려사 지리지: 부소갑 -> 송악군 -> 개주 -> (개경)? -> 황도 -> 개성부

-세종실록지리지: 부소갑 -> 송악군 -> 개주 -> 개성부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소갑/동비홀 -> 송악군/개성군 -> 개주(송악+개성 통합) -> 황도 -> 개성부

-증보문헌비고: 부소갑 -> 송악군 -> 개주 -> 개경 -> 개성부




ㅅㅂ 황도를 그냥 개주의 이칭으로 봐야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