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식량은 생산하는 데에 물이 필요함. 밀은 주요 식량 중에 이례적으로 건조한 곳에서도 잘 크지만 애석하게도 전근대 한국인은 밀을 거의 먹지 않았음. 한국인은 논에서 자라는 쌀을 먹기 때문에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많이 필요했음. 그리고 쌀 이외에 그냥 액체 상태의 물을 먹어야 인간이 살 수 있는 것도 당연지사.

 

그런데 큰 강과 넓은 평야는 딱히 의미가 없었음. 왜냐하면 큰 강은 분포 밀도가 낮으니까 그만큼 물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많이 떨어져있고, 강이 크다는 거는 어느 정도 하류 쪽이라는 의미라 토사가 많아서 음용하기 부적합함. 오히려 강이 시작하는 산지에는 바로 음용할 수 있는 샘물이나 맑은 냇물이 많고, 냇물이 고밀도로 분포해서 비교적 물을 구하러 가기가 쉬웠음.

 

산은 또 꽤 많은 걸 제공해줌. 평야가 넓으면 밭을 일구면서 부식을 얻고 땔감도 멀리서 가져와야 하는데, 쌀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곳에다가 부식을 재배하고 땔감을 가지러 가는데 시간이 크게 낭비되므로 효율이 떨어지는데, 산에서는 어차피 경작이 어려우므로 웬만해선 그냥 내버려둘 것이고 그러한 곳에서는 산나물도 나고 땔감도 나기 때문에 평지를 쌀 생산에 집중시킬 수 있어서 효율적임.

 

그렇다고 산골에 모여살기엔 다른 이유로 너무나도 불편하기 때문에... 전근대의 큰 고을의 시가지는 산과 평야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되었음. 그리고 넓은 평야를 활용하는 능력은 일제강점기는 돼서야 제대로 갖춰짐. 또한 이런 이유 때문에 완전 평야보다는 배산임수 지형이 좋다고 한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