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옛 마을(1)

강남구 옛 마을(2) 

잠실과 신천에 대한 고찰

구성남 옛 마을


거의 분기에 한번 쓰는 시리즈(...)라 일단 ㅈㅅ.....

이번에는 송파구의 옛 마을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음.

구천면->천호출장소  였던 송파구 풍납동은 제외한,

중대면->송파출장소였던, 11개동(삼전, 석촌, 송파, 가락, 오금, 방이, 이, 거여, 마천, 문정, 장지)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자.

(잠실, 신천의 옛 마을 위치는 위 링크에 이미 소개함)

오차가 200m 정도로 꽤 큰 지역들이 있으니 참고로만 보기 바랍니다. 송파동이 너무 어긋났는데 저거 고쳤다가 나머지 동네도 다 뜯어 고쳐야 돼서 못 고침ㅠㅠ.....

참고로 구 대왕면 지역(일원/수서/세곡동) 역시 송파출장소였으나, 73년 출장소 폐지 이후 강남 쪽으로 흡수됨. 자세한 건 위 링크 참조!


1. 송파동

1.1. 송파동

두 동네 모두 나루터로써 발달한 마을이었음. 송파나루와 삼전나루.

송파나루의 경우, 옛날옛적부터 이 지역을 송파라고 부른건 아니고, 나루터가 원래 현재의 하남시 선동에 있었다고 함. 근데 이게 홍수가 나서 암사동으로 옮기고, 또 홍수가 나서 현재의 송파동으로 옮겨왔다고 전해짐. 하지만 을축년 대홍수로 대몰락(...)


송파나루, 가락동(아래 보이는 학교가 일신여상) 일대의 1972년 영상사진임.

중앙에 보이는 길의 끝이 송파나루여야 하나...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음. 

아무튼 대홍수로 인하여 송파나루 살던 사람들이 가락리로 이사를 왔고, 덕분에 행정구역 가락리에 자연부락 송파가 다시 생겨나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짐ㅋㅋㅋㅋㅋ 이름 빼앗겨 버렸어

가락리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고.


아무튼

송파대로가 뚫리고(1974년 사진)

본격적인 개발을 통하여(77년)

현재의 모습이 되었음. 송파나루역이 찐송파나루랑 거리가 있긴 하지만... 영 틀렸다고는 보기 어려운 작명임ㅋㅋㅋ


1.2. 삼전동

삼전도의 굴욕으로 매우 유명한 삼전동. 삼전도가 섬 도(島)가 아니라 건널 도(渡)인거 모르는 도지챈러는 없겠지?

삼전동 역시 송파동과 마찬가지로 을축년 대홍수로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짐. 

역시 지적도 상으로 마을로 보이는 곳에, 논밭만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ㅇㅇ

그러한 지역이

제방을 통한 매립을 거쳐 (75년도)

잠실과 완전히 붙어버림.

공교롭게도 전 삼전나루 위치와 현 삼전역의 위치가 일치함. 

뭐 이미 6-70년대에 흔적도 없었는데 지금 그 흔적이 남아있을리가....


1.3. 석촌동

송파동, 삼전동과는 달리 지적도 그대로 마을이 있음. (1972년 영상)
하지만 석촌의 이름의 유래가 된 고분군은 위성영상 상으로는 보이지 않음. (석촌의 순우리말 지명은 돌마리. 돌 무더기가 많은 마을이라는 의미ㅇㅇ)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마을 모습과 현재의 석촌고분공원 모습이 비슷함.
사실, 석촌 마을은 고분 바로 위에 자리 잡았음ㅇㅇ
81년 영상사진. 마을 한 가운데로 현 석촌고분로가 지나가고, 현 헬리오시티의 전신인 가락시영아파트도 보임.
즉, 이를 토대로 보면
원으로 표시한 지역이 현재의 고분이 있는 공원 지역임을 알 수 있음. 
(1984년) 마을은 점점 허물고, 격자 구획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1986년 최종적으로 원래의 마을이 사라졌음을 볼 수 있음. 동시에 석촌지하차도도 공사중인데...
근데 ㅗㅜㅑ 석촌고분 제일 큰 거 도로 때문에 복원 반만 했었네ㅋㅋㅋㅋㅋ


옛 석촌 마을의 현재 위치. 위에서 보았다시피, 원 마을은 주변에 비해 늦게 개발된 편이므로 인근 도로망이 묘하게 어긋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음. 하지만 그 이외에 자연부락으로써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움.

1.4. 가락동
을축년 대홍수 이후 새로운 송파의 중심이 된 지역임. 중대면사무소도 여기로 이사왔고, 중대초등학교도 이 지역에 설립되었음. 
1970년대 지도. 가락동 안의 자연부락으로는 송파(...), 건너말, 방죽말, 비선거리(비석거리), 훙이 등이 있었음.
1972년 영상지도. 사실상 송파니 방죽말이니 건너말(너머말)이니는 거의 한 동네로 커진 거 같음. 
빨간 네모가 중대면사무소->송파출장소 자리임. 송파출장소는 참고로 1973년에 폐지되고, 천호출장소와 합쳐졌음.
1981년 영상지도. 마을은 아직 남아있으나, 송파출장소 건물은 헐렸음. 하지만 그 바로 왼쪽 건물이 계속 살아 남으니 주목!
1985년에 오니 여기도 마을 전체가 헐려버림. 일신여상 바로 앞 동네도 구획 정리 중인거 같음.
다만, 상술했던 면사무소 옆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면사무소의 정확한 위치 역시 짚어낼 수 있어서 다행임.
1988년. 구획정리는 완료되는 거 같고, 아까 말한 면사무소 옆집은 계속 살아있음... 도대체 무슨 건물이었던걸까.
면사무소 위치와, 가락 메인 동네 위치. 끝까지 살아있던 건물은 결국 공원이 되었음ㅇㅇ 덕분에 저 공원 나무들은 원래 있던 나무들이라 굉장히 오래된 나무들이겠지.
구획정리 이후 법정리 정리까지 되면서, 가락리이자 자연부락 송파이던 동네는 법정리 송파동이 되어버림... 아고 복잡해라ㅋㅋㅋ

가락동에는 평화촌, 훙이라는 마을 역시 있었음.
훙이(가락골 마을 뒤에 있다고 후리라고 명명된게 변형), 비선거리(비석이 있는 거리라 비석거리라고 명명된게 변형)은 자연부락이고,
평화촌은 청계천 판자집 살던 사람들이 쫓겨난 뒤에 모여 살기 시작한 동네라고 함. 확실히 기존의 자연부락과는 달리 판자촌 형태의 동네인게 눈에 보임.
(1982년)
송파대로가 뚫리기는 했으나 아직가지는 부락이 다 남아 있는 상태. 그러나...
(1987년)
훙이 마을은 헐리고 있는 중이고, 판자촌 마을은 이미 아파트(가락 우성1차)가 되셨다.
결론: 훙이 마을과 평화촌 마을 역시 싸그리 갈려나갔다. 근데 의외로 비선거리 마을쪽 집 몇 채는 남은 거 같기도 하네.


2. 왕천동
왕이 먹었던 샘이 있던 동네라고 왕천동이라는 행정동명을 붙였다. 

2.1. 이동
서울에서 법정동이 사라진 몇 안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일동과 이동을 합치면서 이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네이밍 센스 머단하다.
현재 위치와 대조해봐도 올림픽공원 지역만을 관할하는 지역이다.
이와 같은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자세한 위치는 다를 수 있다)
몽촌=꿈마을=곰말=웅진 이라는 점을 보면(이거 내 맘대로 엮은게 아니라 지명사전에 실제 쓰여진 내용) 백제 시대부터 전해진 지명이 꽤 오랜 시간 생존해 있엇다는 사실에 놀랍다.
아무튼 몽촌토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마을이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대에 발간된 책에서도 몽촌토성의 성터가 전부 사라졌다고 나오니(...) 파보기 전까지는 몰랐을 수도...

1982년 영상. 주변 도로들이 개설되면서, 대충의 위치가 짐작 가능해졌다. 사실 몽촌토성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위 영상만으로도 몽촌토성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는 있을듯...
하지만 올림픽공원 건설이 결정된 이후에는 마을 전체가 공사판이 되었다. 흔적이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참고로 현 올림픽선수촌은 이동이 아니라, 성내천 기준으로 이북은 둔촌동, 이남은 오금동이었다.


2.2. 방이동

이동과 방이동의 70년대 지도. 사실 일제 때 지도를 보면 도로망이 송파나루를 향했는데, 송파나루가 철저히 망한 이후로는 가락동 방향의 수직축으로 도로망이 형성되었다.

70년대 발행된 지도를 바탕으로 마을에 이름붙이기는 했는데... 방잇골이라고 써있는 곳이 행정구역 상 가락동에 속해서;;
윗말과 아랫말을 아울러서 방잇골이라고 부르는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암튼 방이동 역시 80년대에 싸그리 갈려버리게 되는데...
도로망까지 아파트로 갈려나갔다. 아랫말은 이미 아파트가 되었고(현재 송파삼성래미안으로 재건축 완료), 윗말 역시 갈려나갈 예정. 그 와중에 고분군이 새로 발굴되었나보다.
현재의 방이동. 역시 자연부락 따위 찾아볼 수도 없다. 

오금동부터는 사진 용량 관계로 다음 화에서 계속....
(이거 때문에 게시글 계속 썼다 지웠다 함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