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혹은 The Great War라고 불리기도 하죠....

 

1차 세계대전은 1914년~1918년 유럽과 중동을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포탄이 떨어지는가 하면 어디선가 날라온 눈먼 총알이 바로 옆에 박히기도 했죠.

또 참호는 얼마나 끔찍합니까. 고양이만한 시궁창 쥐떼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바로 옆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밥먹고 잡담을 나누던 친구가 죽어서 절반쯤 흙에 묻혀있습니다. 비가 오기만 하면 참호에 물이 불어 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익사하고 말죠...

 

 

 

 

우리는 왜?

왜?

왜 이런 개고생을 하였을까요?

무엇을 위하여 그 수많던 생명들과 자원들을 낭비했어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의 침공때문이었죠.

 

1914년 6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떨어진 한 운석.

 

발견자 오스튄 캄미르(Ostium Cammeir)(당시 나이 23세)는 발견 당시를 "그저 지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끔찍한 일들을 모두 겪은 캄미르는 말도 안되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존하였습니다. 이러한 점도 그 자신도 인식하고 있었고 그는 1948년 숨을 거두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일으키고 나서도 아직도 멀쩡히 살아있었다는게 아이러니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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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영박물관과 프랑크푸르트 전쟁사박물관에 가면 아직도 화성인이 타고온 전쟁병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데요,

화성인의 전쟁병기는 전쟁 이후 거의 대부분 파괴되어 전 세계에 단 3대만이 온전하게 남아있습니다. 대영박물관과 프랑크푸르트 전쟁사박물관에서 각각 1대씩 보유중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1대는 어디에 있을까요? 정말 놀라웁게도 나머지 1대가 바로 우리나라 청원군에 위치한 청원전쟁기념박물전시관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게다가 작동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는 정말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어린이들을 위한 시승체험이 있다니 꼭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1914년 6월 이후로 유럽은 곧바로 전쟁의 포화속으로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미 괴멸되었고 독일제국은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프랑스군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군사력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제국은 계속해서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단순히 유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유럽의 발칸반도를 통해 소아시아로 진격해나간 화성인들은 오스만제국과의 전투를 시작하였고 어떠한 방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오스만제국은 그렇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영국군과 지방 토후들의 반격으로 그 기세가 주춤해졌으나 전황은 계속해서 화성인들에게 유리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다른 운석이 중국의 산둥반도에 떨어졌습니다. 산둥반도에 주둔해 있었던 독일제국군은 그대로 전멸하였고 이제 막 나라 이름을 쓴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중화민국은 재빠르게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일본제국군이 대응을 하면서 산둥반도에 착륙했던 소수의 화성인들은 모두 죽거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전후 일본의 급격한 기술 상승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참호를 돌파하고 있는 화성인의 모습)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군 산악기병대대 소속 무전병이었던 장 비네(Johane Vine)(당시 나이 18세)는 혼돈의 도가니였던 전투 상황을 그의 인생 막바지에 겨우 설명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놈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쳐들어왔지. 산을 넘고, 들판을 건너, 우리가 뼈빠지게 파놓은 참호를 한걸음에 건너는 거를 보면 얼마나 기운이 빠지던지."

"자네들은 이런 시련을 모를거야. 나는 아직도 내 눈앞에서 죽어가던 수플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무너지던 돌담옆에서 그는 엄마를 부르며 죽어갔지. 그는 배에 큰 관통상을 입었었어. 화성인들은 기다란 촉수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의 배에 꽂아 쑤셔넣었지... 수플레는 항상 그런 죽음을 두려워했었어."

 

 

전쟁은 결국 화성인들의 승리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욱 큰 아군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이었죠.

 

미국은 1914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닌 나라였습니다. 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닌 불량배 국가였을뿐이었죠.

그러나 이제, 불량배가 고귀하신 도련님들을 구할 차례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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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부르크 교외를 폭격하고 있는 미 공군)

 

미군의 초토화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상 위의 모든 화성인들을 죽이기로 한 것이죠. 당시 초토화작전을 수행한 폭격기만 11만2천대, 폭격기를 보호한 전투기까지 합하면 무려 20만여대가 넘는 비행기가 이 초토화작전에 참가했습니다. 프랑스 니스에서부터 러시아 상크페테르부르크까지 폭격을 받지 않은 마을이 없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규모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몇몇 지식인들은 유럽의 문화재가 파괴될 것을 염려했지만 이미 점령당한 곳인데 어쩌겠냐는 현실적인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미국은 그 즉시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하였고 하루에만 떨어진 폭탄은 5천개(런던 보고서) 혹은 1만개(밀라노 보고서)까지 추정되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등장으로 전세는 역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화성인들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당하기만 했습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시한부처럼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무슨 병이 퍼진 것일까요? 아니면 노림수였을까요?...

그 비밀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결국 화성인은 초토화작전에 모두 사망하였고 비밀은 포탄에 의해 찢겨져버렸습니다. 

어쨌거나 이제 지구는 다시 평화로워졌습니다. 유럽은 하나둘씩 복구작업을 시작하였고 상처를 치료하였습니다. 배려와 관용, 이해심과 존중이 다시금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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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화성인들의 전쟁무기를 이용한 제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