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남작 전쟁은 존 왕이 1215년에 선포한 마그나 카르타를 준수하기를 거부하면서 이에 반항적인 남작들이 몇년 뒤에 루이 8세로 즉위하게 될 프랑스의 루이 왕자를 잉글랜드 왕위에 앉히려 함으로써 시작되었음


영국에 도착한 루이 왕자


루이 왕자는 군대를 이끌고 1216년 영국에 상륙하여 로체스터, 윈체스터 등을 점령했고, 저항도 거의 없이 런던에 입성하여 반군 남작과 런던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영접을 받았고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영국의 왕으로 선포되었음


1차 남작 전쟁 당시의 전황


루이 왕자의 프랑스 침략군과 반군 세력이 영국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자 존 왕은 소수의 충성스러운 거물들에게 자신의 성을 분배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체스터 백작인 라눌프에게 뉴캐슬, 피크캐슬, 랭커스터, 브리지노스, 리치먼드 등을 준 것이 있고, 체스터 백작과 가까운 사람들도 존 왕에게 충성을 유지하거나 반군에 설득되어 존 왕과 대적하는 선택을 했음


1217년 링컨 전투의 모습


1217년 샌드위치 해전의 모습


이렇게 치열하게 진행된 전쟁은 1216년 10월에 존 왕이 사망하자 그의 어린 아들인 헨리 왕자보다 프랑스의 루이 왕자를 훨씬 더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게 된 남작들이 어린 헨리 3세 쪽으로 가게 되어서 루이 세력은 큰 좌절에 직면하게 되었고, 링컨 전투와 샌드위치 해전과 같은 결정적인 전투에서 루이 세력이 패배함으로써 결국 영국 정복을 포기하게 되었음. 그리고 영국 반군에 대한 사면과 프랑스에게 점령된 채널 제도의 영국 반환, 루이의 영국 불가침 약속, 1만 마르크를 받는 대가로 루이 자신이 잉글랜드의 합법적인 왕이 된 적이 없다는 데 동의할 것 등을 약속함으로써 1차 남작 전쟁은 종결되었음


어쩌면 루이 8세가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해서 동군연합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던 사건인 만큼 꽤나 중요한 전쟁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