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과의 첫 만남은 음..

이걸 여친 앞에서 말하면 아마 삐질 거 같은데 정말 최악이였어.


키도 있고 살도 좀 쪄서 덩치 있는 나는 중1때 친하던 애들하고 다 찢어지고 홀로 반에서 찐따마냥 지냈어.

먼저 다가가는 것도 그닥 안 좋아하고 반 애들 분위기도 좀 노는 분위기여서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거든.


그냥 홀로 조용히 책이나 읽으면서 1년 보내면 금방 가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없더라고.

툭하면 나를 귀찮게 하고 괴롭히는 여자얘.

이쁘고 좀..시끄럽고 딱 봐도 노는 분위기인 여자얘는 툭하면 나를 건들였고 내가 화장실을 갔다오면 내 자리에 계속 앉으면서 지 친구들하고 떠들었어.

내가 나와 달라고 부탁하면 좀만 있다 나와주겠다면서 시간을 질질 끌고 몸이 안좋아서 체육 시간에 쉬고 싶어도 계속 쿡쿡 찌르면서 잠깐 쉬는 것도 못하게 하고 머리 자르던게 망해서 결국 민머리가 됐을 때는 툭하면 손 모으면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러면서 놀렸지.

뭐라 하기에는 나는 소심했었고 그렇게 1년을 정말 귀찮게 지냈어.


그래도 이런 나에게도 복이 오는지 중3이 되서는 친한 애들하고 다시 만나게 되면서 기나긴 악연은 끝날 줄 알았어.

하지만 이게 왠 걸?

또 같은 반이 됐네?

심지어 이번에는 짝궁인데 선생님은 이 상태로 1년 보내라네?


진짜 속 마음으로는 개 쌍욕이 나왔지.

그래도 뭐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내가 친구들하고 다시 지내면서 찐따가 아닌 걸 알게 됐는지 괴롭히는 건 없어졌더라.

오히려 좀 조심스러워진 느낌?

뭔가 평소보다 더 잘 챙겨주더라고.

초콜릿 가져오면 나한테 하나 건네주고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문제 풀다가 막힌 나를 보면 먼저 도와준다던가.

그냥 얘가 이상하게 변했어.


난 그 당시 "얘가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문제 생길까 봐 갑자기 잘 챙겨주는 건가?" 싶었지.

그렇게 한 3달? 정도 지났던 거 같아.

여전히 그 여자얘는 이상했고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내 친구가 나한테 묻더라고.

혹시 좋아하는 여자얘 없냐고 말이야.

나는 없다 했지. 나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생각했거든.

모두가 호리호리하게 생겨도 키가 있어도 살도 찌고 공부는 못하고 딱히 잘난 구석도 없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했거든.


좀 비관적이긴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어.

나는 연애하기엔 꽤 글러먹은 성격에 외모를 가졌다고 말이야.

하지만 친구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좀 의외였어.

나를 괴롭히던 그 여자얘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 같은데 몰랐냐고 말이야.


진짜 벙쪄서 아무 말도 못 했어.

내가 싫어하는 여자얘가 나를 좋아했다고?

뭔 개소리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하냐고 했지.

하지만 반에서 나 빼고 모든 애들이 그 여자얘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야.

체육 시간에 축구하다가 지쳐서 쉬고 있는 나를 챙겨주는 것도 그 여자얘 뿐이였고 다쳐서 움직이기 힘들 때 알게 모르게 챙겨줬던 것도 그 여자얘였다고.


그제서야 조금 머리가 정리되더라.

왜 나한테 그렇게 행동 했었는지, 왜 갑자기 그렇게 변했는지 말이야.

어디 애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나한테 생기니깐 참 당황스럽더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그 사람이 내가 싫어했던 감정이 있는 여자얘라는 게 참 아이러니 했지.

어떻게 해야할까 수십번을 고민했어.

친구는 지금도 관심 있는 거 같으니깐 한번 고백해봐라라고 조언 했지만 나는 이 일이 잘못되서 아직 남은 중3 시절을 망치기 싫었거든.

하지만 뭐..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앞으로도 있을까? 라는 생각 단 하나에 결국에는 모든 게 정리되더라고.

미움은 용서가 되었고 무관심은 그제서야 관심이 되었지.


난 그 이후로 카톡으로 첫 고백을 했어.

나하고는 전혀 안 어울릴 거 같다 생각했고 나를 번번히 귀찮게 했지만, 누구보다 나를 좋아한다는 여자얘에게 말이야.


결과는?

뭐 제목을 봤다면 알겠지만 대성공이였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붕 뜨는 거 같아.

여자얘들은 드디어 사귄다면서 어머머 하면서 놀려댔고 친구들은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였는데 드디어 고백 했냐면서 나한테 쓴마디 하나씩 던졌지.

참 머쓱했지만 떨리는 첫 연애는 참 달콤했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걱정도 따라왔어.


여친은 공부도 잘하고 이뻤지만 나는 그와 반대였으니깐 내가 이런 여친 옆에 있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곰 같고 순수해서 좋다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난 변하기로 했어.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남친이 되기로 말이야.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헬스장을 다니면서 몸을 가꾸고 좋은 대학을 목표로 잡던 여친과 함께 걸어가고 싶어서 진작에 손을 뗐던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

즐거움보다는 지루함과 피곤함이 가득한 매일이였지만 이상하게 쉽사리 지치진 않더라고.

곁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깐 말이야.

그렇게 꽤 긴 고생이 있었지만 우리는 나름 인지도 있는 대학을 같이 가게 됐고 현재까지도 문제 없이 계속 사귀고 있어.


이제는 8년동안 연애중인데 아직까지도 다툼은 없고 서로를 소중히 잘 챙겨주면서 지내고 있어.

중간에 여친 부모님한테 연애하던게 들켜서 조금 곤란해질 뻔 했는데 여친이 내가 어떻고 어떤지 변호를 열심히 해줘서 지금은 두 분 다 나를 많이 신뢰 해주시고 우리 부모님도 그냥 이렇게 된 거 우리 둘 다 잘되면 좋겠다고 이야기 해주시더라.


친구들은 항상 볼 때마다 내 연애가 이렇게까지 갈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고 길어봤자 1달일거라 생각했던게 8년이나 갈 줄은 자기들 중에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다고 나보고 어지간히도 독한 놈이라 그러더라.


내가 이런 썰풀이 글을 잘 쓰진 못해서 좀 뒤죽박죽이지만 댓글로 Do it! 을 외쳐서 함 써봤어.

사람들은 현실은 비정하다라고 말하지만 내 연애사를 보면 글쎄..


가끔은 애니보다 더 애니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생기는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