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는 아직 복원작업 중입니다.) 


452년 조나라는 재당을 점령했다. 재당 문화와 조의 문화는 처음부터 달랐기 때문에 진통이 잦았다. 1019년 재당 재건 세력들은 북방의 장양(현재의 한빛시 남월구, 평해군, 장경구) 사람들을 찾았다. 장양사람들은 5년 전, 조나라에 대기근이 든 틈을 타서 자신들의 나라를 갖고 살아왔다. 그래서 1020년 그들은 힘을 합쳐 동방 땅에서 들고 일어섰다. 재당 사람과 장양 사람들은 나라의 이름을 동옥 (東玉) 이라고 하였다. 

1789년 동옥국은 왕의 자체적 민주화로 민복반도 최초의 공화정 국가가 되었다. 

1822년 일향제국이 동옥공화국을 정벌하려뎐 기밀이 유출되는 사고가 벌어져 일향제국은 동옥공화국에게 강선지역의 땅 몇개를 할양했다. 

1883년 동옥의 최초의 대학교인 장경대학교가 세워졌다. 

1903년 목천군수가 암살당하다. 이로 인해 전국에 통금•수색령이 2년간 지속되었다. 

1969년 대통령은 위험한 사상을 가진 학생이 많은 장경대학교에 입학금지령 • 휴교령을 3년간 선포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 죽고 다쳤다. 

1977년은 동옥의 최전성기의 서막을 알렸다. 민복반도에서 가장 잘 사는 부유국가가 된 것이다. 한울군 바다에서 기름이 발견되었고 끝없는 발전, 공단 설립등을 통해 잘 살게 되었고 이것이 거름이 되어 지금의 한빛광역시가 재정자립도 1위가 된 결정적 원인이다. 

1980년 정부는 장경대 사태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바상금을 주었다. 

1988년 은화도에서 은화국(현재의 화정)이 독립해 대사급 수교를 하고 대사관을 장경에 설치하였다. 허나 주동옥 은화대사관은 12년밖에 가지 못했다. 

1999년 삼자정상회담을 통해 삼국이 합병해 민복국을 세우기로 하였다. 

2000년, 세 나라가 합쳐져 지금에 이르다. 주동옥 은화대사관은 주민복 대사관으로 바뀌었고, 동옥의 행정구역은 민복 대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었지만, 장경시 관할 구 강선 지역은 다시 강선으로 환원되어 시민들이 반발하기도 하였다. 


@니코막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