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점장은 내 앞에는 에스프레소를, 동생의 권속 앞에는 휘핑크림이 듬뿍 올라간 모카라떼를 내려놓고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저 영업용 미소라기엔 주체하지 못하는 기쁨이 입꼬리를 타고 헤실헤실 배어나와서, 예민한 사람이라면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최근에 거의 단골이 되다시피 뺀질나게 들락거리게이 카페의 여주인은, 새삼 말하기도 그렇다만 손님들이 이런저런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듯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선을 넘는 정도만 아니라면 다소의 소란 정도는 눈감아 줄 정도의 깜냥도 있는 나름의 거물이었고, 이런저런 사연이 많은 우리 가문의 구성원들은, 말썽에 휘말리기 쉬운 비슷한 처지의 괴짜들처럼 좋든 싫든 이 장소에 제법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담한 여주인은 이번에도 파란의 냄새를 맡았는지, 대놓고 우리 일행의 테이블 주변을 흘끔거리고는, 눈이 마주칠때마다 배시시 웃곤 했다.


평소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문했을때와는, 또 다른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손님들과는 노골적일 정도로 다른 태도였다.


정말 귀신같은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정말 기가 막히게도, 점장의 예감대로 오늘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상대와는 어느 정도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을 정도로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나는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천년을 넘게 갈고 닦아온 침착함으로 애써 억누르며, 평소와 다름없는 우아한 태도로 쓴 커피가 담긴 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저, 둘째 주인님 말임다."


"왜 그러느냐?"


"아까부터 너무 떨고 계신거 아님까?"


"……무, 무, 무, 무, 무, 무,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구나. 난 언제나처럼 평온한 상태이다만?"


"……."



동생의 권속은 뭔가 더 말하려던 것처럼 뻐끔거리다 입을 다물더니, 그대로 테이블 밑에서 물티슈를 뽑아서 내 쪽의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슬쩍 내 앞쪽을 내려다보니, 지진이라도 일어나고 있던건지 내 커피잔이 안의 내용물을 튀기며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다 기묘하게도 내 잔에 든 음료와 같은 향을 품은 부드러운 온기를 지닌 얼룩이, 테이블 보와 동생의 권속의 티슈를 진한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정말 평정을 유지하고 있건만, 혹시 내 주변에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게 아닐까?


나는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붕붕 흔들어서 바보같은 생각을 떨쳐낸 뒤에, 주의도 환기할 겸, 주제도 돌릴 겸, 동생의 권속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한창 학업으로 바쁠 때에 괜시리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괜찮슴다. 어차피 학교 공부정도는 자습으로 금방 따라잡슴다."


"듬직하구나. 허나 네 주인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건 신경쓰이지 않느냐?"



너무나도 솔직한 그 아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인상을 구겼다.


아직 사회 경험이 모자를 아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역시 신경쓰고 있었구나 싶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나도 가능하면 이번 일의 사정을 알고있는데다, 부담없이 불러낼 수 있는 포글포글을 데려오고 싶었다.


그렇지만 포글포글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낮의 경비를 서야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또 가문의 관리상으로도, 그녀를 대체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저녁의 일을 만들어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가문의 일이니까 권속으로서 어쩔 스 읎그는 흡느드므은…….(가문의 일이니까 권속으로서 어쩔 수 없기는 합니다만…….)"



제 풀에 감정이 격양된 동생의 권속은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친 가녀린 주먹이 테이블 위의 잔들을 서로 짤랑거리며 부딛혀 날카로운 소음을 내도록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 아이, 감정 조절이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주변에 민폐가 되지 않도록, 나중에 따로 불러서라도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점장을 포함한 카페의 사람들은 이 정도의 소란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모양이었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그보다는 애당초부터 흘끔흘끔 몰래 이쪽 테이블의 소란을 묘하게 관찰하는 듯한 눈치였다.


늦게 눈치챈 사실이지만, 이 곳의 단골 손님들은 점장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손님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모습을 제법 즐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상황도 상황이니만큼, 나는 나무라려던 말을 삼키고는 그 아이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둘믄 읐드그 긴희 므르드 흤드그느은……!(둘만 있다고 괜히 뭐라도 했다가는……!)"


"너, 너무 열내지는 말거라. 네 말대로 가문의 일이니, 각자 맡은 바 일을 수행하는 것 뿐 아니더냐."


"……맞슴다. 죄송함다."


"아니다. 마땅한 종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무리해서 내 개인적인 사정에 널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내 잘못이구나."


"……아. 그, 그런거 아님다! 정말 아님다! 


애초에 신분 이전에 둘째 주인님께는 제가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지 않슴까.


둘째 주인님께 불렸다고 귀찮다거나, 싫은 마음 같은건 조금도 품은 적 없음다.


……단지, 제 주인님이 슨배님한테 묘하게 관심이 있지 않슴니까. 


그게 신경쓰일 뿐임다……."



방금 전까지 길길히 날뛰다가, 금새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동생의 권속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제법 있어서 여러모로 손이 가는 아이긴 하지만, 역시 그런 점이 귀여운 아이였다.



"그 점은 걱정 말거라. 너도 봐서 알지 않느냐? 그 얘라면 알아서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할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슴다. 머리론 알고 있즈므은……."



동생의 권속은 다시 주먹을 꽉 쥐고는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내려치기 직전에 내 쪽을 흘긋 보더니, 손에서 힘을 빼고는 가슴에 얹더니 몇번 크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본인 스스로도 자기 행실에 대해서 신경은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

.

.


동생의 권속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불안했던 기분이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이미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버린 초조함만큼은 완전히 지워버릴 수 없었다.


오늘 내 권속은 내버려두고, 원망을 살 것을 예상하고도 굳이 동생의 권속을 데려온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내 권속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결국 수 많은 고민 끝에 그 아이에게 갈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 숨겨버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 대신 그 아이인 척 답장을 써서 자신을 그 아이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상대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적어도 내가 권속을 집에 내버려두고 약속장소에 나간다면 그 상대와는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참 한심스럽고 얕은 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나는 정말 오랫만에 부모로부터 뭔가를 숨기는 듯한 아이가 된 기분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아이는 분명 내 엄마는 아니지만…….


……내가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람?


아무튼 나는 그 아이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막연하게, 


그저 어떤 아이인지 만나보고 싶어서, 또 나의 권속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면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상대를 무턱대고 불러내고 말았다.


무리해서 해가 완전히 지지도 않은 시간부터 나와 기다린게 무색하게도, 나는 약속 시간이 될 동안 끝끝내 어떤 제대로 된 대책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것'이 찾아왔다.



딸랑거리는 벨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열렸다.


한참 전부터 손님은 계속해서 왕래했기 때문에 몇번이고 듣고있었던 소리지만, 어째선지 나는 직감적으로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 한편으로 그렇다고 끝끝내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가게의 입구를 돌아보았다.


내 타들어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까부터 기분이 좋아보이던 점장은 새로 온 손님을 보자마자 한층 짙은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야 그럴만도 한게, 새로 들어온 손님은 한 눈에 봐도 위화감이 상당한 모습이었다.


밤 늦은 시간에, 사람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부모도 동행하지 않은 작은 소녀가 혼자서 가게를 찾아왔다.


그것만 해도 위화감이 있었지만,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 얇고, 하늘하늘하고, 속이 비치는, 알몸이나 다를 바 없는 잠옷 차림을 하고 있기까지 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상대는 자신의 정체를 조금도 숨길 생각이 없었는지, 나의 동족들과 같은 붉은 눈동자를 노출하고 있었다.


컬러 렌즈가 아니라면 상대는 필시 나와 같은 밤의 귀족, 신체에 별다른 변형이 없는걸로 봐서는 갓 태어난 권속임이 분명했다.


그러니 척 봐도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손님으로부터 파란의 냄새를 맡지 못할래야 못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소녀는 가게를 잠시 둘러보다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점주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카운터 앞에 서서 가슴께에서 본 기억이 있는 편지봉투를 꺼내서 높이 들었다.



"혹시 제게 이 편지를 보내신 분, 이 곳에 계신가요?"



소녀가 그 말을 꺼낸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기다리던 소녀는 한참이 지나도 손님들에게서 반응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편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날짜를 잘못 봤나?"



낌새를 눈치챘는지 동생의 권속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거 혹시 저희를 찾는거 아님까?"


"아마도……?"


"그럼 불러야 하는거 아님까?"


"그렇겠지……?"



준비가 안된 내가 계속 굳어있자, 보다못한 동생의 권속은 '실례하겠슴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가슴이 덜컥한 내가 뒤늦게 그 아이의 옆구리에 매달려서 제지했지만, 그 얘는 막무가내였다.



"그, 그만두거라! 내가…… 내버려두면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그, 그게 조금만 더 마음의 준비를……."


"기껏 불러내지 않았음까. 도망가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한거 아님까?"


"그건……그렇지만……"



그만한 소동을 벌였으니, 내가 뒤늦게 제지하건 말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소녀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평정을 되찾았지만, 조금 더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내가 아는 모든 호흡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히후! 히흡! 히후! 히~ 히~ 히~ 후~ 히! 후~ 후우~"


"……어쩐지 죄송함다……."


"저, 혹시 그쪽 분께서 저를 부르신 것 맞나요?"



소녀가 웃으면서 우리 일행에게 말을 건넸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소녀의 붉은 눈동자는 분명 적대감을 띄고 우리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야 그럴만도 할 것이다.


굳이 복잡한 정치적인 입장은 제외하더라도, 약속장소에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불쾌할테니 말이다.


처음부터 자기 언니가 없는걸 확인하자마자 언니를 기다리는 대신 바로 우리를 찾은 것을 보면, 이미 이곳에 오기 전부터 누군가(내)가 편지를 가로채서 대신 답변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눈치챘던 모양이었다.


분명 나는 몇번이고 봐와서 익숙해졌기에 그 아이의 필적을 제대로 따라했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어색한 미소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나, 그럼 당신이……. 그럼 잠시 실례할게요."



소녀는 일단 표면적으로나마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고는, 내 양해를 구하고(물론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곧바로 테이블 건너편 자리에 합석했다.



"……."


"……."



눈 앞의 하얀 소녀, 그러니까 내 사랑스러운 권속의 여동생이자, 자신의 혈육을 되찾고자 하는 가여운 아이가, 나와 내 동생의 권속을 앞에 두고 앉아 두 눈을 마주했다.


그 상태로 한참을 침묵.


내가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있자, 동생의 권속이 내 안색을 살피려 들었다.


그 아이의 무심한 행동이 더욱 내 불안감을 부채질 했다.


이제 스스로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 떨고있니……?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난 떨고 있었다.


떨다 못해 새로 리필한 커피의 대부분을 테이블에 흘리고 있었다.


카페의 식탁보가 갈색이었던게, 또 점장이 특이한 사람이었던게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두려워 하고 있었다.


언젠간 내가 멋대로 되살려 하수인으로 만들어버린 나의 사랑스러운 권속의 주변인이, 나를 찾아 올거라고,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되찾으러 오는 것을.


나의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이고, 다시없을 애인을 내 곁에서 떠나게 만들것이라고.


이전에도 권속들이나 그들의 가족과 그런 종류의 트러블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분명 상대의 동의를 받고 계약서까지 작성했었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신경쓴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경우 만큼은 달랐다.


나는 그 아이의 의사나 기분과는 상관없이 순간의 변덕으로, 제멋대로 그 아이가 살고 싶어할거라 생각해서, 


겸사겸사 독신 생활의 외로움도 달래려 했던 주제에,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주워서 권속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 아이는 나를 매우 따르긴 했지만(다시 말하지만 권속화에 최면이나 강제 효과 따위는 없다), 나는 내심 내가 스스로는 알아채기 힘든 어떤 실수를 저지른게 아닐까 불안해 했었다.


그 아이가 내 안에서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친구 이상으로 커져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 아이가 내 소유물이고, 하수인이라고 한들 그 아이의 마음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그 아이의 소중한 사람일지도 모를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내가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상대, 소녀 쪽이었다.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세요?"


"그, 그, 그, 그, 그, 그게 말인데……."


"그럼 저 부터 해도 될까요?"


"……그리 하려무나."


"그럼 갑작스럽지만, 그쪽 분 이빨 좀 보여주셨으면 하는데요?"



나는 망설이면서도 순순히 손가락을 입술에 집어넣어서 내 이빨을,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여주었다.


이빨을 보여달라고 함은 '정체를 밝혀라.',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눈동자로 밤의 귀족임을 확인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거나, 내가 렌즈로 정체를 감추고 있을걸 알고 있었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와~ 정말――"


"쉬잇!"



동생의 권속은 혼란해있던 나보다도 먼저 반응해서 재빠르게 손을 뻗어서 소녀의 입을 막았다.


소녀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언짢은 기분이었는지, 그 아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 뒤에 동생의 권속이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천천히 손을 떼면서 말문을 열었다.



"멋대로 입을 막은건 미안. 그렇지만 이런 곳에서 민감한 얘기는 꺼내지 말아줬으면 해."


"실례했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녀의 눈은 이제 더 이상 웃고있지 않았다.


아까 전까지의 적의는 막연하게 미지의 상대를 경계를 하는듯한 느낌이었다면, 이젠 대놓고 원수를 눈 앞에 둔것처럼 적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점장을 살펴보니, 그녀는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두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시늉을 시작했다.


어차피 다 들렸을것이고, 이쪽 정체도 막연하게 눈치채고 있는게 분명했지만, 능청스럽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시늉을 하고있었다.


뭐, 전에 약속을 했으니 저쪽에서 먼저 부주의하게 입을 놀리지 않는다면, 이쪽도 행동에 나설 필요는 없지만…….


애초에 저런 타입은 강요보다도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계약에 충실할 터이니, 어중간한 수단으로 강요하는 것보단 훨씬 믿을만 하다.


……아마도.


내가 소녀에게 다시 주의를 돌리자마자 점장은, 이제는 아예 음료 만들기는 뒷전이고, 대놓고 카운터에서 양 손으로 턱을 괴고 이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지금 속이 타들어가는데, 아주 구경이 났나보지?


슬슬 구경꾼들에게 눈치를 줄까 고민하던 차에, 소녀가 갑작스럽게 나를 매섭게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소문대로 그쪽이 제 언니의 주인 행세를 하는 그……것인가보죠?"


"푸흡!?"



너무나도 직접적인 추궁에 나는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뿜어버렸다.


주변에 흩뿌려질 정도로 성대하게 뿜지는 않은 것만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계속해서 추궁을 이어나갔다.



"언니에게 보낸 제 편지, 가로채신거 맞죠? 왜 그러셨어요?"


"으윽!"


"제 언니를 왜 빼돌리신거죠? 독점이라도 하실 생각?"


"크, 크아아아아아악!"



연속해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질문 TOP 3에 연속으로 찔린 나는 그대로 침몰해버렸다.


그나마 내가 놓쳐버린 커피잔을 동생의 권속이 대신 받아줬기에 커피를 뒤집어 쓰는 것 만큼은 간신히 면했을 뿐이었다.


곁눈질로 동생의 권속을 보니 내 눈치를 슥 보고 놓친 잔을 내 자리에 돌려놓고는, '일단 적당히 답변하겠슴다.' 라더니 나 대신 소녀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사람은 여기 둘째 주인님이 거둬주셔서 그 분의 소유물이고,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야. 


네가 그러는 건 이해가 가지만, 네가 뭐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고 해서 우리가 굳이 네 사정에 일일히 맞춰줄 이유는 없어."


"흐응~ 당신들은 제 언니를 그런 식으로 물건 취급하고 있었군요?"


"으으윽……."



동생의 권속은 나름대로 강하게 나온답시고 저런 식으로 말한 것 같지만, 어째 그 말에 내 쪽이 데미지를 입어버렸다.


나는 나름대로 그 아이를 신경써준답시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종종 저도 모르게 이전 시대의 권속들처럼 소유물처럼 대한적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 생각은 아무래도 좋아.


애당초 네 언니는 이미 죽은 사람이야. 둘째 주인님께서 거둬주시지 않았다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을 사람이라고."


"그게 중간에 편지를 가로채도 되는 이유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다못해 편지 정도는 제대로 전해줄 수 있잖아요."


"일반적으론 그렇겠지만……."


"으윽……!"



나는 다시 한 번 가슴께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래, 편지 정도는 전해줄 수 있긴 했지.


그치만……, 그렇지만…….



"……어쨌거나 그 사람은 우리 집안의 일원인데? 집안에 피해를 줄 수도 있는 메시지라면 가로챌수도 있지 않을까?"



동생의 권속은 그렇게 내뱉고는 소녀와 눈싸움을 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슬그머니 내게 몸을 기울이고는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그 편지 대충 뭐라고 적혀있었음까?'


'미, 미안. 언니랑 만나고 싶다는 부분말고는 못읽어봤어.'


'…….'



소녀는 잠시 우리를 노려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백번 양보해서 그럴수 있다고 해요.


당신들에게 제 언니는 소유물에 불과한 존재니까, 편지를 중간에 가로챌 수도 있고,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붙잡아 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당신들 같은 괴물들한테는 그게 규칙이고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지요?"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점이 있어요."



소녀는 내 웅얼거리는 변명을 단호하게 끊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왜 제 언니를 만나지 못하게 방해하세요? 유일한 혈육인데 얼굴조차 보지 못하게 막는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왜냐니, 그야 우리 사정…――"


"커어억!?"


"……정말 뭠까."



아마 내가 진짜 이유를 말해준다면 이 아이마저 나를 경멸할지도 모른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동생의 권속은 슬슬 짚이는 데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설마……정말로 질투가 나서, 슨배님을 독점하고 싶어서 그러셨던 검까?'


'끄으으으응…….'



다행히도 표정에 경멸의 감정이 묻어나오지는 않았지만, 내 대답이 어지간히도 한심스러웠던 모양이었는지 눈매가 가늘어졌다.


동생의 권속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더니, '하아아아~' 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지막하게 내뱉았다.



"실홤까."


"후훗. 대충 알 것 같네요. 보아하니 언니가 당신이 저랑 비슷한 나이대라고 정을 준 걸, 


제멋대로 혼자 착각해버려ㅕ서 자신을 따른다고 여기신거죠? 


그리고 대신할 수 없는 진짜 혈육이 나타나니까 버림받을까봐 두려워진거고?"


"크, 크, 크르르르……."


"크? 크 뭔가요?"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정곡을 찔린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창틀에 기대 쓰러져 무너졌다.


아무리 사건을 수습하려 해도 사건 당사자인 내가 이래서야 할 말이 없어진 모양인지, 뻘쭘해진 동생의 권속은 그만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승리를 직감했다는 듯이, 적대감 가득한 비웃는듯한 미소를 한껏 머금은 소녀가 쐐기를 박듯 단호하게 덧붙였다.



"제 주인한테서 들었어요. 그쪽 집안,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다죠?"


"……아니……그건……."


"됐어요. 변명 따위는 듣고싶지 않으니깐.


애초에 그쪽 집안이 무슨 일을 꾸미든 저와는 관련 없으니까요.


단지, 제 언니를 그쪽 사정에 끌어들여서 위험에 빠트리지 말아주셨으면 할 뿐이에요."


"힝……. 애초에 그 얘는――"


"당신이 언니를 살려냈든 어쨌든, 그래서 당신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하시든 말든 하는 말이에요.


당신이 유유부단하고 허술하게 행동한 탓에, 제 언니가 위험한 일을 겪었잖아요? 그렇죠?"


"우우우……. 그치만……."


"그게 왜 둘째 주인님 탓인데? 애초에 습격을 해오는 쪽이 나쁜거 아냐?"



말문을 완전히 잃어버린 나 대신 동생의 권속이 어떻게든 소녀의 폭언에 반박했지만, 소녀는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들이 습격당하든 말든 전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그렇지만 위험에 허술하게 대처해서 제 언니를 위험에 빠트리는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에요.


언니를 되살려놓으신건 좋아요. 


근데 기껏 되살려놓고 뭔가 있어보이는 일을 한답시고 그런 식으로 언니를 계속 위험에 노출시킬거면, 


차라리 하나뿐인 혈육의 품에 돌려놓는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 아닐까요?


정말로 제 언니를 사랑하신다면 말이에요."



나는 있는 힘을 전부 쥐어짜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전부 그렇다쳐도, 그것 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그건……안……돼. 그 애는, 그 얘 만큼은 안돼. 내가 손수 향약을 바르고, 주문을 외워서 살려낸, 내 아이야.


천년을 넘어 간신히 찾아낸 내 보물……. 절대로,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어……!"



방금 전까지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있던 소녀의 얼굴이, 이제 완전히 굳어졌다.


완전한 무표정이 된 소녀는 도끼눈을 뜨고는 내 두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기 시작했다.



"흐~응? 그런 식으로 나오기로 했나요? 


뭐, 좋아요. 애초에 그쪽 집착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니, 말로는 해결되지 않을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거기다 어차피 목적은 이미 달성했고요."


"목적? 목적이라고?"



동생의 권속이 되묻자, 소녀는 얼굴 가득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이젠 말해줘도 상관 없겠죠. 이제와서 당신들이 뭔가를 할 순 없을테니.


필체는 그럴싸 했지만 그래봐야 흉내내기일 뿐, 어투가 달라서 언니가 답장한 게 아니란건 대충 눈치는 챘어요.


그래서 편지를 한 장 더 썼죠."


"뭐……?"


"말했죠? 당신들, 허술하다고. 제가 거짓 호출인걸 알면서도 왜 당신들의 연락에 응했다고 생각하세요?


이번엔 중간에 가로채지 못하도록, 혹시나 가로채더라도 눈치챌 수 있도록 우편으로, 혹시 모르니 익일특급 등기로 보냈어요.


아마 지금쯤이면 제대로 도착했겠죠.


어때요? 지금 기분이?"



소녀의 말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껏 숨기려고 했던 소녀의 존재가 이런 식으로 어이없게 내 권속에게 드러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두, 둘째 주인님……."



내가 다시 한번 기운을 잃고 자리에 쓰러지려 하자, 동생의 권속은 급하게 다가와 내 몸을 부축했다.


그와 동시에 소녀는 자리에서 우아한 동작으로 천천히 일어나더니, 한껏 웃으면서 내 비참한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소녀의 얼굴에는 승리를 확신하는듯한 우쭐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 표정을 보건대, 내 표정이 어떨지는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할게요. 다음엔 좋은 대답 기다릴게요.


아, 지갑을 가져오는걸 잊었는데 대신 내주실 수 있죠?"


"……."


"편지."


"지독한 지지배 같으니."


"…………."



나는 이제 머리가 어지러워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말을 할 기운도 없어서, 대충 알아서 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히죽 웃으면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고, 나잇대 특유의 경쾌한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나는 투명한 창문 너머로, 하얀 귀신이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 없어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뒤로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동생의 권속의 몸에 매달려 돌아와 응접실 소파에 쓰러졌을 뿐이었다.


동생의 권속은 방금 전까지는 곁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방금 전에 '그럼 실례하겠슴다.'라고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생긴 여유로, 적어도 내가 가게를 나오면서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점장이 다가와서 뭐라고 하긴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알게 뭐람.


전부 망해버렸는데.


이제부터 그 아이의 얼굴을 무슨 낯으로 보겠는가.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아이와 마주치지 않기를 빌면서 소파의 쿠션에 얼굴을 묻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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