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더불어 사는 법을 찾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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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현장


 일본에는 ‘지진(地震), 번개(雷), 화재(火事), 아버지(おやじ)’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열거한 것이다. 그만큼 일본 사람들에게 지진을 비롯한 재난은 무서운 존재이다. 그 중에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재난은 바로 지진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리히터 규모 7.9의 강력한 지진이 일본의 간토 평야를 강타했다.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무너진 목조 가옥들은 ‘불타는 관’으로 변해 버렸다. 사망자 수만 14만 명으로 관측 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지진으로 기록된 이 ‘간토(관동)대지진’은 조선인에 대한 테러와 학살로 이어져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1995년 고베에서는 리히터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하여 6,430여명이 죽고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일본의 대규모 지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해저에서 리히터 규모 9.1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어서 높이 10m가 넘는 대형 쓰나미가 해안을 덮쳤다. 차량과 건물, 선박이 역류하는 바닷물에 휩쓸리며 해안 전체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고, 공항과 구호물자를 수송하는 철도 시스템도 모두 마비되었다.


 이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1만 8천여 명이 숨지고 16~25조 엔의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이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발전소를 중심으로 반경 20km 안쪽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이재민만 34만 명에 이르렀고, 지역 수산업 기반이 사라져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더 큰 문제는 규슈를 제외한 일본 전역으로 확산된 방사성 물질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슘 등 방사성 물질로 인한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규모 6.0 이상의 지진 중 약 20%가 일본 한 나라에서 발생할 정도로 일본에서는 유독 지진이 자주 일어나며, 매년 7500회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4개의 지각판, 즉 유라시아 판, 북아메리카 판, 필리핀 판, 태평양 판이 부딪치는 곳, 환태평양 조산대 위에 있는 일본의 지각은 매우 불안정하다. 한편 여름이면 큰 피해를 주는 태풍 또한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으로 일본 열도를 관통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지진뿐만 아니라 땅 속의 마그마가 분출되는 화산 활동, 등 재난이 잦다.


 이렇게 지리적, 환경적인 원인으로 재난이 끊이지 않는 일본은 ‘재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찾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재난을 극복하는지 대응 사례를 중심으로 조사하고자 한다. 또한 심각한 사회불안 요소로 떠오른 ‘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역량은 어느 정도이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먼저 일본은 재난 피해 예방에 대한 법과 제도, 정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빌딩 내진 기준을 세계에서 가장 엄격히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법률은 고베 대지진 이후 ‘진도 7’에도 버틸 수 있는 내진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지진,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뿐만 아니라 자위대, 주일미군, 민간기업 등이 협력하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원전 폭발과 같은 대형참사 시에 자위대의 구호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특수상황 대처 전력(중앙즉응팀)을 보강하였으며 내각부에서는 중앙정부의 재난 및 관련 각종 사고에 대비한 조직과 기능을 총괄, 운영하고 자치단체들은 대규모의 방재시스템을 확충하는 등의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이어지는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며 얻은 교훈을 국가적 안전망 확충과 위기관리시스템에 적용하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재난을 겪으면서 재난 관리 인프라와 사회적 대응 역량을 길러왔다. 일본은 주택뿐만 아니라 교량과 철도 등 주요 시설물이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여 강진에도 피해가 없도록 대비한다. 게다가 최근 잇따른 강진에 지면과 건물을 분리해 지진의 진동을 없애는 면진 설계도 도입하고 있다. 실제 고베 대지진 당시 직하지진에 대비해 투바이포 공법(기둥을 사용하지 않고 각재만을 사용하여 집을 짓는 방법), 프리패브 공법(조립식 공법)을 적용한 많은 주택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미야기 현 구리하라 시에서는 2011년 지진 당시 진도 7이라는 최고 수준의 진동에도 불구하고 단 한 채의 건물도 무너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재난 관리 인프라 확충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활양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매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방재 훈련을 시행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도쿄에서는 지층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강력한 지진(수도직하지진)이 일어났을 경우 수도권에 거주하는 2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무사히 대피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집집이 비상식량과 소화기 등을 비치해 두는 것은 기본이다. 2009년 시즈오카 현에서 발생한 규모 6.5의 강력한 지진에도 사망자는 단 1명에 불과했는데 이는 일본 주민들이 집 안에서 가구나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잘 고정시킨 덕분이었다. 시즈오카 현은 ‘가구 고정률’이 63%로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또한 2011년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수업 중이던 학교에서도 교사의 지시에 따라 미리 정해진 고지대 대피소로 대피해 사망, 실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한편 재난과 관련한 피해상황, 대응 및 복구상황, 피해자 지원 사항 등 다양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하여 국민의 불안을 예방하기 위해 첨단 장비를 통해 지진파를 감지하자마자 곧바로 경보가 울리도록 하는 ‘긴급지진속보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경보는 즉시 방송을 통해 알려지고, 가스 회사는 바로 가스 공급을 끊고, 국민은 책상 아래로 대피하는 등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11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센다이 부근을 최고 속도로 달리던 신칸센 10여 대가 안전하게 정지함으로써 탈선 사고나 부상자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또 주민들이 경보를 인지하고 진동이 전해지기 전에 대피함으로써 고베 대지진 당시와는 달리 건물이나 가구가 무너지며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도 크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난 대응에서 축적한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고 미흡했던 관리 체계를 정비해나가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동일본대재해부흥구상회의’는 2011년 대지진의 대응에서 가장 불충분했던 부분으로 쓰나미와 그에 따른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꼽았다. 이전에 대형 쓰나미나 원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비태세가 완벽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쓰나미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비슷한 재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대응력이 크게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쓰나미에 대부분이 파괴된 마을들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해안 마을을 국가 재정을 들여 고지대로 이전했고, 대피 타워나 방파제 등 쓰나미를 막는 방호시설도 크게 확충했다. 그 결과 2016년 같은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3m가 넘는 쓰나미가 발생했음에도 2011년 쓰나미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한 덕분에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안전 의식을 교육하고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기 위해 자연재해 현장을 교육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나가사키 현은 1991년 43명이 숨진 운젠 화산 폭발의 현장을 생생히 보존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재해 기념관을 지었다. 기념관에는 ‘재해가 일어난다고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주민들은 화산이 주는 풍요로운 자원을 살리면서 화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 나가고 있다’ 고 적고 있다. 이렇게 재난이 잦은 나라에 사는 일본 사람들은 자연의 혹독함 속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지혜를 모으고 있다.



(재난과 더불어 사는 법을 찾는 일본(2) : 일본과 비교하여-한국의 재난관리대책에 대한 제언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