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할아버지 군복무하시면서  


대통령 표창도 2번이나 받으신 지역에선 존경받는 인물이셨음.(박정희, 전두환 표창)


어렸을때 외할아버지 집이 가깝고 부모님 맞벌이라서 외할아버지 집에 자주 놀러가서 지냈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없을때면 전쟁때 얘기해줬음(할머니는 애한테 못할 얘기라고 싫어하심)


할아버지는 군생활 4번하셨다고 함. 일본관동군, 북한군, 한국군 육군, 그리고 미군 해군 정보대.


할아버지는 어렸을때부터 외국어를 잘하셔서 당시 3형제중에 막내인데도 


집에서 똑똑하다고 고등학교도 보내주셨다고 함.(당시 고등학교면 고등교육이었던듯)


당시 고등학교 졸업하실때 이미 일본어랑 중국어, 러시아어에 능통하셨다고 함.


근데 그 당시 전쟁 말기 징병에 끌려가게 생겼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냥 보병으로 가서 죽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관동군 통역병으로 넣어주셨다고 함. 


이때 친일하셨다고 엄청 부끄러워 하심. 나중에  이모 한분이 어쩌다 독립유공자 집안에 시집가게 되었는데 상견례 자리에서 


부끄럽다고 하셨다고..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잠깐 내려갔다가, 


일제 패망하고선 고향으로 돌아가셨다가 고등학교 동창이 개성에서 부잣집이었는데


자기네 집 와서 장사 거들생각있냐고 하셔서 개성으로 넘어감.  


여기서 친구네 부모님이 라디오 가게같은걸 하셨다는데


여기서 전파상 기술을 배우셨다고 함.


그런데 좀 배워서 손에 익을려고 하는데 6.25가 터짐.


6.25때 도망도 못가고 북한군한테 징집되었는데, 북한군 장교가 너 뭐할줄알아? 하고 물어봤을때 전파상 일했다고 했더니


통신병으로 넣어서 그대로 통신병으로 배정되어 남침.


근데 할아버지는 공산주의 이런거 상관도 없던 분이셨던데다가  원래 본가는 대전쪽에서 만석꾼 집안 아들이었어서


출신성분따지고 인민재판 이런거 보면서 탈영각만 씨게 잡다가 어느날 밤에 몰래 탈영함. 근데 도망가다가 보초한테 들켜서


엉덩이에 총맞으심. 그런데 총맞으시고도 깽깽이 발로 계속 뛰어서 도망갔다가 정찰나온 국군한테 잡혔는데


총맞고 도망친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서(간첩이라도 총맞은채로 오진 않을테니까)


 국군으로 다시 징병되심. 근데 국군에 징병될때는 아무래도 북한군이었던 애한테 통신장비 들려주긴 뭐했는지 통역을 시켰는데,


할아버지는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만 할줄 알았지 영어는 할줄 몰랐음. 그래서 일본어로 된 영어 교재 구해서 그걸로 밤새 외워가면서


어찌저찌 영어로 뭔말 하는지 이해하는 수준까지 익히심. 그리고 그당시 자주보던 미군간부중에 하나가 똑똑하다고 이뻐해줬다고 함.


80년대까지 서로 편지로 연락했다고.


근데 할아버지가 재수도 오지게 없으신게, 그렇게 국군따라서 신나게 북진하다가 중공군 개입으로 포로로 잡히심. 이 과정에서 


총상 어깨에 한발, 두개골에 한발 맞으심(철모 관통되다가 힘잃은 탄두가 박혀서 탄두 끝부분만 박히셨다는듯, 총알이 아니라 파편일수도).


그래서 포로 수용소로 끌려갔는데, 다행히 중국군한테 포로로 잡혀서 목숨은 부지하셨다고. 북한군은 다죽였다고 함.


중공군들이 그래도 예의가 있어서 할아버지도 중공군들한테는 악감정 없다고 하심.


그래서 전쟁 끝날때까지 포로생활하다가 포로교환때 남한 선택해서 남한으로 내려오심. 


근데.... 남한에서 할머니랑 만나서 결혼도 하고, 자리좀 잡을려고 하는데 징집영장이 날라옴.


할아버지가 전쟁중에 징집되신거라 징병기록이 제대로 안남은거... 할아버지도 군대 4번가기는 하기 싫으셔서


어떻게든 뺄려고 했는데, 결국 못빼시고 대신 위에 말한 미군장교가 도와줘서 미군 통신대 소속으로 입대하심.


그리고 그렇게 해군에서 레이더 만지는 일 하셨는데, 전파상 경험도 있지만 영어로된 교본 읽을줄아는 사람이 해군내에 몇 없어서


주목도 많이받고 하다보니 군생활도중 박정희대통령 표창도 받으심. 그리고 제대후에는 동네에서 전파상이랑 번역하는일 하시면서


사셨음. 근데 60, 70년대에 외국어할줄 아는사람 자체가 별로 없던 시대여서 동네에 미군한테 납품하거나 하는 사람들


죄다 외할아버지한테 글 읽어달라고 찾아왔고, 기계 고치러도 찾아오고 하다보니 지역 유명인사 비슷하게 되시고 꽤 잘살게 되심.

(할머니는 이때 좀 커미션같은거 챙기고 했으면 부자됬을꺼라고 아직까지 쿠사리놓으심.)


그렇게 지역사회에서 유명하게 되시다보니 전두환 대통령한테는 지역사회에 공헌했다고 두번째 대통령 표창받으심. 어렸을때는


집 마당에 큰 감나무가 있어서 감나무집이라고 사람들이 많이 그랬고, 동네 문방구같은데 가면 감나무집 손자라고 다들 사탕하나라도 


더 주고 그랬다.


그런데 나이드시고 나서 점점 거동이 편찮아지셔서 다 정리하고 이모들이 사는 인천으로 올라오심. 


미국에서 오랫만에 할아버지랑 영상통화했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늙으셔서 좀 서글퍼서 감성에 젖어 글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