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글쓰기에 앞서

     

글을 쓰는 것을 많이 고민했다.

     

첫 이유는 글이 엉망일까 봐. 대학교 졸업 이후 일기조차 쓴 적 없고 공무원으로 일한 기간 동안은 짧은 보고서 작성만을 훈련받은 나에게 긴 글을 쓴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드러날 빈곤한 단어와 조악한 문장이 눈에 선하였고 누군가 내 사고의 얕음을 알아차릴까 부끄러웠다.

     

내 글로 누군가가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되었던 것도 글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이유였다. 기획재정부에서 내가 경험한 일들을 가감 없이 쓰게 된다면 그곳에서 근무하는 선배와 동료에게 누가 될 것 같았다. 아니라면 혹여라도 정치적으로 현 정권을 비판하는 소재로 악용되거나.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기록하고는 싶었지만, 내가 쓴 글로 피해를 보는 누군가가 혹시 나온다면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천성이 소심하고 게으른 나로는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기재부를 나온 것으로 내 공무원 생활은 끝난 일인 것이고 무엇인가 더 기록한다는 것도 부질없어 보였다. 기재부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한다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이나마 논쟁거리가 된다. 가명을 쓰더라도 내가 누군가인지는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내부고발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갈 것도 싫었다.

     

다른 사람들 입에 내가 오르내릴 것이 썩 좋지 않았다. 살아온 순간순간이 충실하지 못해서였나. 살면서 후회되는 일들을 너무 많이 한 내가 다른 무엇인가를 비판하는 듯한 글을 써도 되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도 결국 글을 쓰려고 한다.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 아워>를 읽었다.

     

중증외상센터와 관련하여 작성된 연구용역 보고서를 가져갔을 때 아무런 관심 없이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사무실 한구석에 놓으라고 건성으로 말하고 돌려보냈다던 사무관. 오만에서 에어 엠뷰런스를 빌리려 할 때 묘사된, 보고서를 쓰는 데만 하루가 넘게 걸릴 거라는 공무원 조직의 일 처리 방식. 8년 동안 제공되지 않았다던 무전기. <골든 아워> 책에 나와 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고 내가 견디지 못한 공무원 조직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싫어서 나왔다.

     

공무원을 그만둔 것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무원을 그만두었다는 것은 참 싫었다.

 

공무원을 준비할 때나 일하는 순간순간 사회와 국가를 조금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보내왔다. 국민의 세금을 받고 일하니만큼 세금 받은 것 이상으로는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세금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딱히 사회를 더 좋게 바꿨던 것은 없었다. 이렇게 공무원을 끝내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퇴직금을 받았다. 이 퇴직금도 국민 세금으로 주는 것일 터인데 세금 받은 값어치는 하여야 하지 않을까. 그 핑계로 글을 써보려 마음먹었다. 조악한 문장이지만 공무원 조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린다면 퇴직금에 들어간 세금 값어치는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를 바꾸려면 공무원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작동 방식에 의문을 품고 더 좋게 바꾸려 한다면 현재 공무원의 일 처리 방식을 이해하고 변경해나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행정부를 차지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그대로니까. 그 안의 일처리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가 바뀌는 것도 딱히 없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기로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 사회는 딱히 바뀌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 사회가 바뀌지 않은 것. 그건 공무원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무원 조직 밖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어서가 아닐까. 어차피 공무원을 그만둔 김에 내가 경험한 일들, 내가 공무원을 나오게 한 일들을 기록해 둔다면 사람들이 조금 더 공무원 사회를 이해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을 가감 없이 날 것 그대로 쓴 글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글이 있다면, 그래서 공무원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한다면 내가 공무원을 준비하고 일했던 것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려 마음먹었다.

어쩌면 공무원을 그만둔 내 미련일지도 모른다.

     

날것 그대로 쓴 내 글로 인하여 혹여나 기획재정부나 정부에 비판이 가해질까 걱정된다.

     

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 최고의 조직 중 하나이고 그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열정적인 공무원들이 많다. 한때나마 그곳에 속해서 일했던 것은 두고두고 나의 자랑일 것이다. 내 글로 기획재정부를 무턱대고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이 못 쓴 단편적인 글들로 기획재정부와 그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에 나오지 않지만, 기획재정부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은 훨씬 많고 존경할만한 분들도 여럿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이 글로 기재부가 그리고 우리 공직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나갔으면 하는 것이지 조직이나 누군가를 단순히 비판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글을 쓰게 되면 기획재정부에서 나를 믿어주고 아껴줬던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본문에서 후술하겠지만 사실 이미 언론 기사를 내기도 했기에 더더욱.

     

핑계가 무엇이건 믿어준 사람들을 배신한 상태로 나만 행복하게 평소처럼 지낼 수는 없을 거다.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도 그래서였다. 나를 믿어준 사람에게 멍이 들게 하려면 그것보다는 내가 더 아파야 하지 않을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지금도 공무원을 그만둔 그때의 마음이다. 적어도 내 이득을 위해 하는 행동은 그때도 지금도 아니다.

     

부족한 글솜씨다.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았으면 좋겠다.

     

조악한 글솜씨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퇴고하면 글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제대로 된 퇴고조차 없이 글을 펴낸다.

     

10년 전 신림동에서 고시를 공부했었는데 10년 후 다시 이곳에서 책을 쓰고 공무원 학원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으로의 경험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글을 먼저 써보려 한다.

     

학원 강사로 성공하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공무원으로 일하는 누군가가 나의 모습을 보고 부당한 업무처리가 있을 때 또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강의 준비를 한다고 해두고 이렇게 다른 일을 키웠다. 학원에 죄송할 뿐이다. 글만 마무리하고 다시 연락 드리겠다.

     

2018.10.31. 신림동에서

     

     

     

내가 기획재정부를 그만둔 첫 번째 이유

     

대외주의, 차관보고

     

2018년 2월.

     

2차관님께 드리는 전년도 결산보고에 배석하기 위해 서울지방조달청으로 향했다. 국회나 각종 회의 등으로 기재부 간부들은 항상 서울에 근무하고 대부분 서울 어딘가에 비공식적인 집무실 하나를 두고 계신다. 2차관님의 집무실은 서울지방조달청이다. 거기에는 차관님 집무실뿐 아니라 보고하러 서울로 올라가는 직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무공간도 꽤 넉넉히 자리해 있다.

     

여느 때처럼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내려 조달청으로 향했다. 한적한 세종시에 있다 서울로 올라오면 신세계다.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일에 따라 한주에도 몇 번이나 서울로 올라오지만, 오르고 내려갈 때마다 두 도시의 차이는 새롭다.

     

10시에 차관보고를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보고는 점심 이후로 밀렸다. 기획재정부 2차관 정도가 되면 회의 등 일정이 정말 많다. 그렇기에 보고 받을 시간은 항상 짧고, 보고 받을 내용은 많다. 보고가 밀리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보고가 연기된 시간 동안에는 통상 보고자료를 다시 검토하거나 세종에서 파일을 받아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하곤 한다. 그럴 요량으로 나는 공용 컴퓨터 하나를 차지했다.

     

전원이 들어온 공용컴퓨터 바탕화면에는 파일 하나가 있었다. (대외주의 차관보고)라는 표시와 함께 KT&G 동향보고라는 이름. 내가 근무하고 있던 국고국의 다른 과에서 만든 자료였다. 열어보진 않았지만, KT&G와 관련해 들은 내용이 있었기에 내용은 짐작이 되었다. 이렇게 방치되어서는 안 될 문서이기도 했다.

     

- 이게 그 문서구나. 이런 건 보고하고 나서 지웠어야지.

     

어떤 내용이 적혀있었을 줄은 알고 있었다. 홀린 듯 파일을 열었다. 파일 내용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KT&G 사장교체

     

처음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과장님께 들었던 것인지 담당 사무관에게 들었던 것인지도. 술자리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지나가는 말을 우연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경위였었던지 간에 그 내용은 이번 정권 청와대(BH, Blue House)에서 KT&G 사장을 바꾸려 한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 이게 말이 되는 거냐?

     

그때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던 사람이 함께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말이다. 당연히 부당한 이야기였다.

     

KT&G는 민영화된 기업이다. 사기업이다.

     

공기업 사장은 정권이 바뀌면 바뀔 수 있다. 임용권자도 대통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된 기업은 다르다. 비록 과거에는 공기업이었지만, 민영화된 이후에는 민간 기업이다. 민영화된 기업의 사장을 바꾼다는 것은, 삼성이나 LG의 CEO를 교체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청와대에서 LG전자의 CEO를 바꾸라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KT&G의 사장을 바꾸라는 지시는 LG전자 CEO를 바꾸라는 지시를 내린 것처럼 들렸다. 이번 정권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었기에 내 실망은 더 컸었다.

     

정책적으로 민영화된 기업, KT&G의 운영에 문제를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합법적이고 국민 누구에게나 공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BH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행정부는 그 지시를 수행해야 한다. 그게 역할이니까. KT&G의 지분을 기업은행이 가지고 있기에 기업은행을 동원하기로 했다. 기업은행이 KT&G 사장 연임에 반대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들었다.

     

그렇게까지만 듣고 한번 욕하고 잊고 지냈던 사건이었다.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내용이 문건으로 정리되어 (대외주의, 차관보고)라는 표시와 함께 컴퓨터 화면 안에 있었다.

     

     

     

최순실게이트

     

2016년 10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났다. 하나, 둘씩 터져 나오는 최순실게이트의 내용은 끝이 없었고 정부의 온갖 의사결정은 비리투성이였다.

 

같은 해 4월. 나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 회의 지원을 목적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멀리서 듣고 보았었지만 그 때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보다 회의를 잘 이끌어 가셨고 국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회의가 끝나고 얼마 뒤 대학교 때 같이 야학동아리를 했던 친구 L과 술을 먹었다. L은 CPA를 붙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당시 ‘바깥에서 볼 때는 이번 정권이 많이 부패하고 사익만 추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정부에서 일해보니 대통령도 그렇고 상사들이 국가 많이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라는 취지로 정부 불신이 너무 심하다고, 정부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L은 크게 동의하지는 않는 눈치로 보였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마주한 진실이 최순실게이트였다.

 

정부를 믿으라 말했었는데, 정부를 믿으면 안 되는 것이었나.

     

친구에게 부끄러웠다. 기재부의 다른 정책 결정들도 최순실을 통한 것일까에 대해 의문스러웠다. 의사결정들이 합리적으로 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나 기재부는 최순실게이트의 주역 중 한 명이라 하는 안종범을 경제수석으로 모셨던 곳이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내가 관여했던 바는 없었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박근혜 정권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명으로 부끄러웠다. 민간에서 근무한 분을 뵐 때는 더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동안 주변에 정부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나로는 개인적 배신감은 더 컸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TV에 보도되었다. 주변 공무원 선배들이나 친구들을 통해서도 부당한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부에서 문화부로 자리를 옮기셨던 실장님은 청문회의 주요 청문 대상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실장님을 따라 문화부로 자리를 옮긴 선배 K 사무관 형도 청문회에 나왔다. 당시 다들 피하는 기재부에서 문화부로 이동했던 일을 모두 축하했었다. 선배가 부처를 옮기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일이 불과 몇 개월 전이었는데 몇 달 만에 이제는 청문회에 출석하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 선배의 자리에 사무관으로 있었다면 나라면 다르게 행동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아마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았다.

     

2015년 6월.

     

기획재정부에 발령된 후 약 2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출자관리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출자관리과에서는 서울신문 사장교체를 진행하고 있었고 과장님께서는 나에게 서울신문 사장선임과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하라 지시하셨다.

     

어려운 것은 없었다. 어차피 다음 사장은 김영만 씨로 이미 BH에서 결정되어 있었으며 내 역할은 그저 사장 후보들의 경영계획서를 분석하여 논거를 들어가며 배점표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조금 더 페이퍼를 잘쓰는 것. 페이퍼다운 페이퍼를 처음 썼었기에 총괄과 최선임 사무관님께 겁 없이 내용을 고쳐달라 했었고 페이퍼를 잘 쓴다 했던 친한 동기도 퇴근 후 불러 문장을 다듬어 달라 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페이퍼를 과장님이 국장님과 차관님, 그리고 BH 보고에 사용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었다. 과장님이 고생했다, 잘했다고 말해주는 한 마디가 뿌듯했었다.

     

‘주주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구성한 BH’에서 주주권을 보유하고 있는 신문사 사장을 선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민주주의 원칙에 들어맞는 것이라 믿기도 했었고.

     

만약 그게 K스포츠재단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BH에서 지시받은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K스포츠재단이나 당시 내가 했던 사장 후보 평정이 무엇이 다른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특정 재단의 설립허가를 빠르게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가 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아무 생각 없이 지시받은 것에 따라 처리했을 것이다. 언론독립을 방해하는 정권의 낙하산 사장 인사는 잘못된 것이라 말하면서도 그저 BH가 시켰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데로 열심히 평정표를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니까.

     

만약에라도 그 의사결정에 최순실 등이 관여한 것이었다면 나의 행동도 문제가 되는대로 것이 아니었을까?

     

K스포츠재단 관련 일을 했던 사무관 선배의 자리에서 내가 일을 했었다면 청문회에 불려 나갔을 대상은 나였을 것이다.

     

     

     

공무원의 역할

     

공무원의 역할은 무엇일까.

 

공무원은 시험에 합격하는 것만으로 그 신분이 형성된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다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공무원의 의사결정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인 결정을 내릴 때 그 정당성을 보유하지 못한다. 공무원의 역할은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치적 정당성을 가진 대통령 및 정치 권력의 지시를 잘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각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적 선호를 초월하여 어느 누가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이 되더라도 선거공약에 따라 국정 운영을 잘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게 공무원의 역할이자 정치적 중립성이라 생각했다.

     

물론 법적으로 명확히 불법이고 도덕적으로 부당하다면 거부할 수도 있고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상부의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부당한 지시는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지만 짧게나마 공무원 생활을 했던 2016년 말에도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상사가 지시하면 난 아무 생각 없이 해오지 않았었나.

 

혼란한 와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론을 통해 거듭 드러나는 최순실게이트의 실체를 보면서 함께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것이었다. 투표로 뽑힌 대통령이었으나 국민의 뜻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분명했으니까.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는 나도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촛불시위를 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을 때 마음은 편했다. 공무원 조직이 행한 부당한 업무행태까지 정치 권력의 잘못으로 모두 치환시켜 버릴 수 있으니까. ‘공무원의 잘못은 없다. 모두가 박근혜, 최순실의 잘못이다. 정권이 바뀌면 국가는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공무원은 원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이 남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을 때 한창 회자 되었던 말처럼 공무원은 정말 그냥 영혼이 없는 존재인가? 국정농단이라는 대형사건이 진행되고 있어도 공무원은 정말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집단인가?

     

나는 어떤 공무원이 되려 오랜 기간 공부를 하면서 시험을 준비했던 것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던 2017년 초. 최순실게이트 당시에 출자관리과를 담당한 과장님과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술이 한 순배 돌고 최순실 이야기 K스포츠재단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과장님이 말했다.

     

- 인마. 당시에 위에서 KT&G에 몇십억 정도 K스포츠재단에 내게 하라 압력 넣으라 했었어. 그거 내가 막았어. 절대 못 그런다고. 국장이 그때 왜 안 되는 거냐고, KT&G로 하여금 돈 내게 만들라고 나한테 엄청 뭐라 그랬었다. 근데 난 절대 못 그런다 그랬거든? 그거 아마 돈 내게 했으면 큰일 났을 거야. 나중에 국장이 그때 판단 잘했다고 그러더라. 너도 나중에 때 되면 그냥 그렇게 하면 되지 넌 뭐가 그리 고민이 많냐?

     

아.

     

최순실게이트가 있었던 와중에도 내 주위의 공무원 중 누군가는 자기 자리에서 소신을 지키고 있었다. 공무원에게도 영혼은 있을 것이다.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시가 있으면 그에 따르지 않고 잘못되었다 하는 것. 그것 또한 분명 공무원의 역할이다. 책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지만 주변 누군가는 그렇게 일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법과 도덕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실제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하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었다.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부당한 업무지시는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만약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최순실게이트와 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나에게 부당한 지시가 떨어지면 그때는 나도 과장님처럼 거부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똑같은 일의 반복

     

다시 2018년 2월. 그 사이 정권은 바뀌었다. 바뀐 정권은 적폐 청산을 강조했다. 기대는 컸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맞는 정권교체기도 하였고 지난 정권이 워낙 좋지 않게 퇴진하였기에 바뀐 정권은 무언가 다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바뀐 정권도 똑같았다. KT&G 사장을 바꾸라 지시가 내려왔고 기재부는 또 그에 맞추어 시행계획을 만들었다. 민간 기업 사장을 정부가 나서 교체하는 이 일은 부당한 일이었다.

     

차관보고를 기다리던 도중 컴퓨터 화면으로 보았던 동향보고라는 제목의 그 문건은 내가 알고 있던 KT&G 사장교체 계획을 문서로 정리한 것이었다. 기업은행을 통하여 사장해임을 추진하고 외국인 주주가 동의하도록 설득하겠다는 계획.

     

실망스러웠다.

적폐를 청산한다는 정권에서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

     

후술하겠지만 이번 정권 들어 부적절한 업무처리라 생각한 일이 이번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작년에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 공무원이라는 업에 대한 회의감은 이미 팽배했었다.

     

우리 기재부는 최순실의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라는 것도 막았다던데 왜 이번에는 BH에서 시키는 데로 그대로 다하고 있는 것일까. 더 민주적이라는 정권으로 바뀌었다는데.

     

같은 일이 왜 반복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있을 것도 없을 것도 같았다. 문서를 닫았다. 지우지는 않았다. 차관님께 보고를 드린 후 다시 세종으로 내려갔다.

     

며칠 뒤 우연하게도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L 회계사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도대체 왜 기재부에서 KT&G 사장을 바꾸려 하냐는 것이었다. 이미 언론에서는 정부에서 KT&G 사장을 바꾸려 하는 것 같다고 추측성 기사를 몇 번 내보냈다. 나는 L에게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냥 모른다 말하기 민망하여 ‘민영화된 기존 공기업들의 사회적 역할이 여전히 상당함에도 불구, 관리 감독 기재는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사장선임 등에 어쩔 수 없이 관여하는 게 아니겠냐. 그게 공익 증진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에둘러 대답해 보았다. 친구는 그렇게 하려면 다시 공기업화를 해야지 민영화를 시켜놓고 사장 인사에 개입하려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되물었다. 맞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친구에게 BH에서 KT&G 사장을 바꾸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내정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가 흐른다고 답할 수는 없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다.

     

     

제보

     

3월 초 차관님 보고를 위해 서울에 다시 올라갔다. 나는 예전에 앉았던 공용컴퓨터에 앉았다.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KT&G 관련 문건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태로 컴퓨터 속에 남아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없었다.

     

내 업무가 아니었기에 조직 내에서 KT&G의 사장 인사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공익신고 대상인지도 모호했다. 더욱이 공무원 조직의 생리상 만약 내부에서 권익위에 공익신고를 한다면 누가 신고했는지 드러날 것이 분명했다. 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BH에서 지시한 사항인데 정부 내부에서의 이의제기가 가당하기나 하랴.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자료까지 이렇게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넘어가는 것은 과거 다짐을 저버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나둘 눈 닫고 귀를 막은 상태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면 나 역시 앞으로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데로 소신을 변경하면서 하루하루 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 같았다.

     

공무원 한명 한명이 부당한 업무처리를 보고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는 것에서 지난 정권의 최순실게이트가 일어나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 아닌가.

 

나는 문건을 평소 알고 지내던 M사 기자에게 전달했다.

     

그 사이 KT&G 사장 교체 건은 계획대로 추진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교체에 실패했다. 외국인 주주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하였다. 한편으로 기재부 내에서 알음알음 들어보니 연임된 KT&G의 백사장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설사 문제가 많은 CEO라 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민간 기업의 인사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건 당연하였다.

     

문건을 받은 L 기자가 나에게 정말 기사로 내도 되는지 물었다. 나는 그러라 했다.

     

     

사직

     

L 기자에게 문건을 넘기고 기사가 준비되는 도중 온갖 생각이 들었다. 기사로 나온 뒤 문건을 유출한 것이 나라는 것을 동료 누군가가 알게 될까 하는 걱정, 어차피 기사화가 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괜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 기사가 나오면 주변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 등등.

     

난 심성이 강하지 못한 편이다. 비난받는 것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그런 나에게 혹여나 기사가 나온 후에 내가 문건을 넘겼다는 것이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당시에는 조직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애착도 컸다.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기획재정부도 한 번 입직하면 주변 사람들과 퇴직할 때까지 함께 지내야 한다. 조직 내부의 결속도 강했다. 조직 내 사람은 단순한 직장동료나 상사 이상이었다. 내가 넘긴 문건이 방송에 나오게 된다면 주변 분들이 곤란을 겪을 것은 자명했다. 그 모든 것들은 나에게 큰 압박이었다.

     

3월부터 5월까지 일하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그렇다고 기사화되기로 한 일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그럴 수 없는 단계가 되기도 했었고.

     

5월 중순. 기사가 나왔다. 실제로 사장을 교체하는 데에는 실패한 사건이라서 그런지 큰 논쟁거리 없이 넘어갔다. 우리 부는 해명자료를 내어 해당 문건은 실무자가 스스로 참고하기 위해 만든 자료라 하였다. 상부에 일체 보고 없이 실무자가 보고 바로 파기한 것이라 설명하였다.

     

보고자료의 질을 보면 당장 알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이었지만 내가 인터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사실 여부를 증명할 수는 없었다. 차마 인터뷰할 용기는 없었기에 해당 문건은 보고된 적 없던 괴문서였던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보도내용은 조금 아쉬웠다. 자료를 주면서 기대했던 취재의 초점은 기재부가 아닌 BH였다. 바뀐 정권에서도 부당한 지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내용이 알려져 조금이라도 정권에 경각심이 생기기 바랐다. 시민들의 촛불로, ‘이게 나라냐’를 외치면서 바뀐 정권인데 이전과 똑같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사건은 후속 보도 없이 마무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문건유출 경로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내려와서 해당 과를 조사하고 갔다고 들었다. 국무총리실 공직기강실에서는 기재부에 대해서만 비공개자료 관리실태를 별도로 감찰하고 갔다. 나로 인하여 기재부 전체가 피해를 본 것 같았다.

     

문건 내용의 사실 여부, 그리고 그게 바람직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애당초 청와대 지시사항이었으니 문건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고초를 겪은 분은 국장님이셨다. 서울청사에 국장님과 함께 차관님 보고를 기다리던 중 어딘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알음알음 들리는 말로 유추해 보건대, 자료가 어떻게 유출된 것인지 경위를 파악하라는 지시였던 것 같았다. 전화를 받은 국장님은 기업은행에 전화하여 기업은행에서 유출된 것 같으니 전수조사를 해보라고 다시 지시하였다. 기업은행에도 괜히 미안하였다. 모두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유출했다는 것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모르는 일이다. 혹 누군가는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 해 주셨는지도. L 기자를 통해서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관이 자료를 넘긴 거란 말이 우리 부에 돌고 있다고 했다. 문건유출이 걸린 것이라면 그만두면 된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했다.

     

며칠 뒤 국장님과 승강기를 단둘이 같이 탔다. 국장님이 마음고생 심한 얼굴로 말했다.

     

- 믿을 사람 없는 것 같아. ㅇㅇㅇ사무관 같은 사람만 믿어야지.

     

세상에나. 내가 그 믿지 못할 사람인데. 나 같은 사람만 믿어야 한다니. 국장님께서는 근무하는 동안 나를 상당히 아껴주셨다. 사직할 때까지도 말이다. 너무도 죄송했다. 깜냥도 되지 않는 주제에 소신을 지키겠다고 나를 아껴주는 분의 발목을 잡은 것 같았다. 소신이 중요하다 했더라도 나를 믿어주고 아껴주는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었다면 적어도 나 스스로는 그것보다 더 다칠 각오를 해야 했던 일 아닐까.

     

며칠 뒤 서울 출장 도중 심의관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문건유출 이야기가 또 나왔다. 누가 유출한 것이겠냐, 우리 부에서 유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도 한 번도 누가 유출한 것인지 밝혀진 적이 없다 등등. 듣고 있기가 죄송스럽고 힘이 들었다.

     

죄책감을 가지면서 일해나가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자료를 유출한 사람인데 웃으면서 맞장구를 친다는 것은 곤욕이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게 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유출한 사람이라고 손들고 나서는 것도 웃겼다. 공무원을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를 믿어주셨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소신을 주장하는 것, 그것도 뒤에서 몰래 행동한 것은 비겁한 일인 것 같았다.

     

공무원을 그만둔다면 그래도 죄송한 마음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행정고시 합격으로 공직을 시작했고 그동안 조직에서 쌓은 평도 나쁘지 않았었기에 계속 있었다면 적어도 남이 하는 만큼은 승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직함으로 포기하는 것이 작지 않아 보였기에 죄책감은 무뎌졌다.

     

그만두고 나서는 후회를 많이 했지만, 적어도 그만둘 당시 아쉬움은 없었다. 사실 그럴 생각으로 3월부터 주변에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흘려두기도 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사건 하나가 흐지부지 지나가는 것.

     

정권이 바뀌어도 부당한 업무처리가 이어지는 것.

     

정치 권력의 본질이나 공무원 조직의 행태는 지난 정권이나 이번 정권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정부의 업무처리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 천성도 어디 가지는 않을 터이니, 계속 공무원을 했었다면 나중에 높이 승진한 이후에 양심고백이라면서 더 큰 사고를 쳤을 것이다. 일찍 공무원을 그만둔 것은 잘한 행동인 것 같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말이다.

     

그만둔 이유가 오직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사건이 결정적 이유였던 것은 분명 맞지만 비슷한 사건들은 여럿 있었다.

     

조직 안의 한두 사람의 의지로는 관료제의 행태를 바꿀 수가 없다.

     

글을 읽는 당신이 바꿔 줬으면 좋겠다.

 

2부: https://arca.live/b/society/379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