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27일 모든 북한군들에 전투태세 강화인 폭풍5호발동

1979년 10월 29일 동유럽 방문중인 오극렬 참모총장 귀국해 군사회의

1979년 12월18일 군-당 확대회의를 개최해 전군에 ’통일에 대비한 무장‘을 강화지시 


“10·26사태는 결정적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민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

“12·12사태는 미제의 조종 하에 신 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입니다. 계엄사령관 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남조선 정세가 그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군 수뇌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연락부와 인민무력부에서는 언제든지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4시간 무휴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1979년 12월 20일 중앙당 확대간부회의)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일어났습니다.

사북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청년학생, 도시 빈민 할 것 없이 전 민중들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 각층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1980년 5월 3호청사 부장회의)


일본 산케이신문이 2004년6월22-27일에 걸쳐 공개한 “김일성 비밀교시”


1980년 2월 해주, 세포, 곡산, 양덕 등에서 전시물자 동원훈련을 실시했고, 철도역에 비상열차를 24시간 대기발령

1980년 3월에는 간첩들에게 남한의 시위조직을 확대하여 전민봉기를 유도하라는 “점화기폭조”를 잠입시키라는 지령(계엄사11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