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왕 거련()이 스스로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여 그 왕 여경()을 죽였다. 처음에 고구려왕이 백제에 간첩()으로 갈 만한 자를 은밀히 구하였는데, 승려 도림()이 모집에 응하여 말하기를,
“신()이 비록 무능하나 나라에 보답할 생각을 두고 있으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지시하여 시키소서.”
하므로, 왕이 기뻐하여 은밀히 보내니, 도림이 거짓 죄를 짓고 백제로 도망하여 들어간 것처럼 하였다. 이때에 백제왕이 장기와 바둑을 좋아하였는데, 도림이 왕문()에 나아가 고하기를,
“신은 어려서 바둑을 배워 자못 묘경()에 들어갔습니다.”

하니, 왕이 불러들여 그와 더불어 바둑을 두었는데, 과연 국수()였다. 드디어 높여서 상객()으로 삼고 매우 가까이하며 서로 만남이 늦은 것을 한하였다. 도림이 하루는 왕을 모시고 앉았다가 조용히 말하기를,
“신은 다른 나라 사람인데도 왕께서 소외()하지 않으시고 사사로운 은총이 매우 두터운데도 털끝만한 도움을 드린 일이 없습니다. 한 말씀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니, 왕이 말하기를,
“아무튼 말해 보라.”

하였다. 도림이 말하기를,
“대왕의 나라는 사면()이 산악과 하해()로 되어 있어 이는 하늘이 베푼 험지()이므로, 사방의 이웃 나라에서 감히 엿볼 수 없어 봉사()하기에 겨를이 없습니다. 왕은 마땅히 숭고()한 자세와 풍부한 왕업()을 사람들이 보고 듣는 데 경구()하도록 해야 할 것인데도, 성곽()이 수선되지 않았고 궁실()이 수축되지 않았으며, 선왕()의 해골()은 임시로 노지()에 장사하였고, 백성들의 집은 자주 하류()에 의해 허물어지니, 신은 생각하건대, 대왕을 위하여 취()할 것이 못된다고 여깁니다.”
하니, 왕이
“그렇다.”

하고, 나라 사람을 모두 징발하여 흙을 쪄서 성을 쌓고 또 궁실()·누각()·대사()를 지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욱리하()에서 큰 돌을 가져다 석곽()을 만들어 부왕의 해골을 개장()하였고, 물을 따라 둑을 쌓았는데 사성() 동쪽에서부터 숭산() 북쪽까지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창고가 바닥나고 백성이 곤궁하여 나라의 형편이 매우 위태로워지자, 도림이 도망하여 돌아가 고구려왕에게 고하매, 왕이 기뻐하여 장차 치려고 하였는데, 백제왕은 고구려왕이 치러 온다는 것을 듣고 아들 문주()에게 이르기를,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신용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백성이 쇠잔하고 군사가 나약해졌으니, 누가 나를 위하여 힘써 싸우기를 즐겨하겠는가? 나는 의당 사직()을 위하여 죽겠다만, 네가 여기서 함께 죽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어찌 난을 피하여 종사()를 보존케 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문주가 이에 목협만치(滿)와 조미걸취(, 목협()과 조미()는 모두 복성()이다.)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다.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한성()을 포위하였는데, 왕은 성문을 닫고 나와서 싸우지 않으므로, 고구려에서 군사를 네 길로 나누어 협공()하였는데, 대로()인 제우()와 재증걸루()·고이만년(, 재증()과 고이()는 모두 복성이다.) 등이 북성()을 공격하여 7일 만에 빼앗고, 옮겨 남성()을 공격하여 바람을 이용해 불을 놓아 성문을 불태우니, 성중()에서 위급하여 나와 항복하려는 자도 있었다. 백제왕은 군색하여 도모할 바를 알지 못하여 수 십 기병()으로써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나므로, 걸루 등이 뒤따라가 왕을 보고는 말에서 내려 절을 한 다음 얼굴을 향해 세 번 침을 뱉고 이에 그의 죄를 들추어내어 아차성() 아래로 결박해 보내 살해하고, 남녀 8천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