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이 탄핵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계기는 JTBC의 태블릿PC 보도나,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 헌법재판소의 구루프 판결 이전에 이화여대생들의 시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생들은 <본의 아니게>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그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그녀들의 <본의>를 한 번 따져 보자. 마스크를 하고 야구모자를 쓴 채, 총학은 저리 가라 운동권도 꺼져라 외부인은 출입금지라고 써붙이고 이대생들이 시위를 했던 본의는 바로 ‘꼴같잖은 정유라가 나와 같은 이대생이 되었음’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말이 좋아 ‘공정성’을 외쳤지만 그녀들의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정유라 너 우리처럼 중간고사 기말고사 대비하여 독서실에서 하얗게 불태워 봤어? 정유라 너 대치동 학원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손에 들고 영어학원 수학학원 찾아 계단을 뛰어 다녀봤어? 어디 부모 잘 만나 말이나 탄 주제에 감히 이화여대에 들어와 나와 같은 공기를 마셔? 아무나 ‘이대 나온 여자’가 되는 줄 알어? 어중이떠중이 다 들어와 학교 질 떨어지게 하고 있어! 이대 나와 취직 잘하고 시집 잘 가고 싶은 거 이해는 하는데, 그럴려면 우리처럼 공정한 경쟁을 거쳐야지 임마....대충 짐작컨대 당시 학생들의 심정이 이런 정도의 <본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을 바꾸자면 이화여대가 가진 특권의식을 아무나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기에 분노가 치민 것일 게다. 


오늘 날 소위 SKY대학에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정서는 여기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대생과 고려대생들이 조국 교수 딸의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이 수상쩍다고 촛불을 들고 앉았다는데 그들의 정서도 아마 정유라에 분노한 이화여대생들의 정서와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앉은 명문대생들이여. 자신을 돌아보라. 너희들이 스스로는 그리도 떳떳하고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너희들도 이미 부모 잘 만났고 출발선에서 몇 미터쯤 앞서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불과 수년 전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라. 편의점에서 알바하던 친구는 국엉수시간에 엎드려 밀린 잠을 청했을 것이고 자칭 모범생인 너희들은 그들의 낮잠에 안도하며 칠판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과고 외고 자사고 등 특목고에 모여 자신들만의 리그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리곤 스스로 가장 공정하고 깨끗한 게임의 룰을 거쳐 명문대생이 되었다고 자부할 것이다. 착각하지 마라. 너희들은 이미 타고난 금수저이다. 지방의 현실이 어떻는지 아는가. 부모가 의사 변호사 교수 혹은 최소한 부부교사 정도는 되어야 자녀들이 In Seoul 대학에 간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나머지는 지방대학이나 전문대를 나와 너희들이 남긴 틈새직업이나 노동에 종사하며 최저임금과 사투해야 하는 것을 알기나 하는가 말이다. 


그저 특권을 아무에게나 노나주는 것이 싫어서 촛불을 든 것이 사실이라면 당장 촛불을 끄고 현장에 달려나가 보라.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의 잔당들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자신들이 최고의 애국자라고 외치고 다니는 현실에서 명문대생들이라는 놈들이 찌질하게 교내의 안전지대에서 보호받으며 조중동 기자들을 불러들여 불공정이니 어쩌니 따져 들고 있는가 말이다. 


20대 대학생시절에는 조국이나 심지어 이명박 심재철 차명진 김문수도 지금 너희들보다는 사고방식이 건강했었다. 이것들아. 흔히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공정성을 표방한 비공정성의 극치라고 말한다. 실제로 과거시험의 응시자격은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어 있었고 그 과정도 비교적 공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가 비공정의 극치인 이유는 바로 현실적 여건의 차이 때문이었다. 과거에 응시하여 출제된 문제를 파악하여 답안을 작성하는 정도의 지식과 한문 실력을 아무나 갖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문이란 너무 어려워 마음대로 읽고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십 년 정도 많은 돈을 들여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교육과정에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현재의 기득권자인 양반밖에 없었고 그러니 자연히 과거제도는 양반들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뻔뻔한 장식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종의 한글창제에 양반들이 극력 반대한 것이 바로 그런 까닭인 것이다.   


조부의 재산과 부친의 빽 모친의 정보력과 본인의 열정이 합쳐져야 이루어진다는 명문대에 합격한 여러 분, 참 자랑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눈을 들어 조금 멀리 보라. 이 땅은 반 만년 동안 온갖 계층의 인간들이 모여 이룩해 온 지난한 역사의 땅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특권을 버리고 만주벌판에서 개죽음한 분들과 박봉에도 풀빵을 사서 여공들에게 나누어주고 마침내 온몸에 석유를 붓고 노동3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어느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그가 대학생 친구들이 있었으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을 듣고 보장된 출세를 팽개치고 노동현장에 달려가 위장취업자로 몰려 온갖 고문을 당했던 분들과 열일을 제치고 광장에 모여 독재타도 민주회복을 외친 많은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된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촛불을 든 명문대학 학생들이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역사의 큰 눈으로 이 나라를 보고 이 나라가 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데 너의 젊음을 바치라. 찌질하게 싸구려 특권의식에 매달려 있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