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백합 #작가 #아카데미 #착각 #나데나데 #멘헤라


판타지인데, 글을 씁니다
EP 01.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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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꽃이 피는 정원에서 베로니카와 니콜은 비밀을 속삭였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타액을 교환하면서 둘은 영원을 맹세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앞에 방해꾼이 나타났으니.」
「"돌, 돌로레스? 어째서?"」
「지옥에서 돌아온 연적 앞에서, 두 사람은 굳건하게 결의를 다졌다.」    

「백합꽃이 피는 정원에서」
- 276화
맑음 그 뒤 소나기
(연재중단)

"여기서, 연재중단이라고요."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읽고 나서 나지막히 속삭였다.

정말 감동적이고 눈물이 다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마음이 따뜻해지고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지.
내 인생 최고의 일주일이었어.
중간에 가슴 조마조마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행복해지니 얼마나 다행이야.

심지어 이게 처녀작이래.
처음 쓰는 작품에서 이 정도 필력을 보이다니.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가 있지.

"……."

그래서 이 다음 내용이 뭔데.
이렇게 잘 써놓고 한 달째 연재중단이란다.
대체 뭐가 부족해서 쓰다가 던졌는지 모르겠다.

'백합꽃이 피는 정원에서'의 선작 1.5만, 총조회수 약 2백만.
첫 작품인데 이 정도 성적이 나오면 초대박이잖아.
그런데 공지도 없이 연재중단으로 잠수를 탄다고?

괜히 짜증나네.
아무도 안 읽는 웹소설을 꾸역꾸역 연재하는 나만 멍청이가 된 것 같잖아.

댓글란을 보니 역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 작가님 제발 돌아오세요.
- 무책임하게 잠수 타기 있어요?
- 돌아오면 100만원 후원할게요 제발 돌아와주세요.
- 시아모 복귀 기원 30일차.

…역시 성공한 작가를 기다리는 독자가 많구나.

나도 작가 나부랭이지만 이런 대작을 쓴 작가 '시아모'와는 비교를 할 수 없다.

150만 자를 쓰고 일곱 작품을 연재했으면 뭐해.
최고 기록은 선작 150, 총조회수 2천 밖에 안 되는데.
심지어 현재 연재 작품은 최신화 조회수 0.
최근 한 달간, 아무도 나의 불쏘시개를 읽지 않았다.

글 쓴 경력이 10년이라지만 내다버린 10년이지, 뭐.
노력은 반드시 배신하는 걸.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글은 재미가 없어.

부럽다, 시아모.
만약 내가 저런 성적을 기록했다면, 기쁘다고 울면서 매일매일 연참으로 보답했을텐데.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무책임하게 런 치다니 실망이야.

그래도 첫 작품부터 성공한 천재 작가는 부럽네.
이런 필력, 질투 나 죽겠어.
나는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얻지 못하겠지.
이러니까 내가 여전히 하꼬 중의 하꼬 작가인가봐.

[알림 메세지 한 건이 도착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분명 악플 아니면 쌍욕이겠지.

- 와 읽다가 턱턱 막히는 줄 ㅋㅋ
- 작가 새끼 개연성은 밥 말아 쳐먹음???
- 이따위로 쓸 거면 걍 접어라 걍
- 고구마는 잔뜩 쳐먹이고 사이다가 없냐 뭔
- 또또 지만 아는 얘기 나와가지고

…내 작품의 몇 안 되는 소중한 댓글들.
이 작품을 연재하는 동안 이런 비평만 달렸기 때문에 해탈했다.
그래, 이게 내 저주받은 운명인데 뭐 어쩌겠어.

두근두근 뛰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확인했다.
보낸 대상은… '시아모'.

- 작가님, 시간 좀 되시나요?

연중 작가가 살아있었구나.
물리적으로 죽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하필 내게 먼저 연락을 보냈을까.

액정화면을 꾹꾹 눌러서 메세지를 보냈다.

- 무슨 일이시죠. 그리고 저보단 독자에게 먼저 사죄 공지하는 게 순서 아닐까요.

그리고 바로 답장이 왔다.

-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 작가님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이게 뭔 소리래.
나보다 훨씬 더 잘 나가는 주제에?

- 제 글은 진짜 쓰레기 같아서 부끄러워요.
- 매일매일 글 쓰는 것도 더 이상 못 하겠고 버거워서 미치겠어요.
- 그에 비해 작가님은 아무도 안 읽는 글을 매일 쓰잖아요.
- 그 멘탈이 정말 부러워요 ^^

이 망할 년이.
네 글이 쓰레기면 내 글은 핵폐기물이겠네.
굳이 '아무도 안 읽는 글'이라고 긁어대는 것하고 '^^'까지 붙인 인성 봐라.

- 아시다시피 이 작품은 작가님 작품의 팬픽으로 시작했어요.
- 이것저것 살을 붙이다보니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아질 줄 몰랐네요, 헤헤.
- 제가 연재를 해야 하나 고민할 때, 작가님이 감평과 함께 용기를 북돋아주셨잖아요.
- 그래서 한 번 더 물어보고 싶어요.
- 저처럼 재능 없는 작가는 절필을 해야 될까요.
- 제 글은 불쏘시개고 당장이라도 지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티배깅 맞네.
'네 글이 너무 구려서 내가 대충 싸지른 게 조회수 천 배 격차를 냈다'고 굳이 꼬집지 않나.
첫 작품에 총조회수 2백만 찍어놓고 자기는 재능 없다고 비틱질 하지 않나.
그래 놓고 절필?
개쩌는 수작을 내놓고 별로라고?

한 달 잠수 타고 돌아와서 이러는 저의가 뭔데.
매일 글을 써도 아무도 안 읽는 내 작품에다 대고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자기 딴에는 내게 힘을 북돋아주려고 보내는 메세지겠지.
작가 '시아모'는 언제나 저딴 식으로 말했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질투심, 그리고 시기심과 자괴감.
격렬한 불꽃이 온몸을 집어삼켰기에 어떻게든 내뱉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야 말았다.

- 네, 네. 시아모 작가님도 건필 자~알 하세요.
- 저 같은 건 눈에 밟히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신경 쓰세요? 어쩌라고요.
- 저도 절필 할테니까 다시는 저 찾지 마세요.
-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읽어주셔서 그 동안 고마웠네요, 네.

어차피 재미도 없고 아무도 안 읽는 소설.
지우든 말든 신경 쓸 사람은 없잖아.
정 보고 싶으면 시아모 찾아가라고 해.
팬픽이라면서.
내 작품 읽고 영감 받았다면서.

휴대폰을 끄고 집어던졌다.
이젠 글이고 뭐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면 뭐하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건 아닌데.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는데.

나 자신이 밉다.
이렇게까지 밖에 안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밉다.

 * * * * *

울다가 잠에 들었다.
퉁퉁 부은 채로 눈을 떴다.

꿈에서 나는 대문호가 되었다.
모두 나의 작품을 읽고 좋아했다.
상도 휩쓸고 미디어믹스도 잘 되는 그런 꿈을 꿨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를 꿈꿔왔지.
내가 쓴 이야기를 모두 좋아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줬으면 해.

그런 소박한 꿈을 이루려고 지난 10년 간 노력을 했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
현실은 냉혹했다.

이 세상에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수두룩 했다.
누구는 첫 작품에 대박을 터트리고, 누구는 망한 성적이 내 최고 성적을 상회한다.
모두 나보다 재밌고 필력도 좋았다.
그런 작품이 수만 편에 이르렀다.

그들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려면 대체 얼마나 더 힘을 내야 하는 거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한 것 같은데.

꾸준히 글을 읽고 공부하면 된다면서.
하루에 한 편은 무조건 써야 한다면서.
쓰다보면 성장하고 또 성장한다면서.

거짓말쟁이들.
'누구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서.
안 되잖아.

"……."

꿈을 접어야겠지.
재능의 한계에 부딪힌 거야.
그러면 이제 뭐하고 살아야 하나.

모르겠어.
그냥 살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실패한 인생인 걸.

글 쓴다고 청춘을 허비했다.
연애도 취업도 포기하고 글쓰기 외길 인생을 10년 동안 걸었다.
되지도 않는 것에 헤딩을 하니 남은 건 만신창이가 된 몸뚱아리 하나 뿐.

내가 이룬 게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어.
그저 골방에서 썩혀나가는 살아있는 시체에 불과해.

인생마저도 실패해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

별 수 있어?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는 걸.
나 하나 쯤은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거야.

드르륵ㅡ.

창문을 열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아찔한 높이는 즉사하기 딱 좋아보였다.
하지만 저 잿빛 바닥이 실존의 고통을 끊어줄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씁쓸한 종말을 앞두고 유서라도 남길까.
그래도 나를 능욕하고 다시 잠수를 탄 '시아모'에게 메세지를 남겨야지.

[무기한 연재 중단 공지]
-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네요. 제가 사라지더라도 독자님은 행복하세요.

반응은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사라지는데 알아봤자 뭔 소용이야.
그냥 조용히 떠나야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한 많은 인생.
이제 안녕.
모두 행복해야 해.

창틀 너머로 몸을 던졌다.
보잘 것 없는 몸뚱아리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자유낙하를 하기 시작했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신체는 바닥에 충돌했다.

외로운 겨울 밤, 실패한 작가의 시체 하나가 또 늘었다.

 * * * * *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작품이군요. 추천해준 건 고마우나 좀… 턱턱 걸리네요."

성녀 릴리에 아카데미의 문예부원 니콜 드 에스텔란다는 이마살을 찌푸리면서 책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황녀라는 신분답게 말투는 기품이 있었지만, 불쾌감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발버둥치면 칠수록 점점 더 암울해지고, 기껏 희망을 붙잡았나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썩은 동아줄이었다라. 배드엔딩은 제 취향이 아닌데, 좀 더 밝은 작품은 없을까요?"

니콜 황녀는 우아하면서도 신랄한 서평을 내리면서 표정관리를 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 작품을 추천한 평민 문예부원, 베로니카 갈릴레이에게 쏠렸다.

베로니카는 피식 웃으면서 황녀가 내던진 책을 소중하게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치렁치렁한 앞머리를 옆으로 살짝 넘기면서 반론을 제기했다.

"그게 매력적이지 않나요? 작가를 꿈꾸던 어느 청년이 소설을 쓰면 쓸수록 자기가 점점 보잘 것 없단 걸 깨닫고 우울해지는 내용이 말이죠. 매 작품을 새로 쓸 때마다 희망에 부풀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갈수록 비참해지죠. 심지어 '시아모' 작가마저도 자기를 능욕하고 연재중단을 선언하자, 절망에 빠져 투신자살까지 몰리게 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고 생각해요."

"베로니카 님은 어둡고 축축한 걸 선호하나 보네요."

니콜 황녀의 비릿한 웃음 속에는 차가운 눈빛이 담겨 있었다.

베로니카는 책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면서 그런 황녀의 도발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황녀님. 누가 뭐라든 이 작품은 제 마음을 울렸기 때문에 추천하는 거에요."

"호오, 누구보다도 책읽기에 열성이신 분이 이런 같잖은 작품을 추천했다라. 자기연민에 빠져서 징징대는 이런 류의 작품은 널리고 널렸잖아요."

"그래도 잘 쓰지 않았나요?"

"뭐 중견 작가의 글이라서 그런지 글 자체는 나쁘지 않더라요. 그런데 이런 게 뭐가 재밌다고. 몸만 큰 애새끼가 쓴 것도 아니고."

"황녀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베로니카의 항의에도 니콜 황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한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 교양이라는 가면을 내던졌다.

"평민. 내가 틀린 말 했어? 이딴 일기장에나 어울릴 법한 글이 뭐가 재밌다는 건데? 읽다가 중간에 던졌는데 마지막은 뻔하겠지, 뭐. 나를 알아주지 못한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울부짖으면서 자살. 아니면 테러하거나."

니콜 황녀의 시선은 주홍빛을 머금은 홍차로 향했다.
그녀는 이런 논쟁에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 듯이 그윽한 얼그레이 홍차에 담긴 베로가못 향을 음미하면서 케이크를 먹었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말은 니콜 황녀의 관심을 돌리기 충분했다.

"이 작품의 결말은 좀 독특해요. 자살마저도 실패한 주인공이, 시아모 작가가 쓰다 버린 작품을 스스로 완결 짓기로 결심하거든요."

"흠…? 거참 요상하군. 대체 왜?"

"시아모 작가는 성공했지만 창작의 불꽃이 사그라들어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던 거에요. 반면에 주인공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열정은 항상 살아있었죠. 그래서 주인공은 자기 손으로 연중작을 완결 짓기 위해 시아모 작가에게 연락을 해요."

"그래서 시아모는 주인공에게 자기 작품을 넘겼다? 글 쓰기 귀찮아졌다고? 주인공의 그 허접한 필력으로 연중작을 이어서 쓴다면, 그거야말로 독자에 대한 능욕 아닌가?"

"중요한 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죠. 작가가 누군지 알면 깜짝 놀랄 걸요?"

"누군데요?"

"돌로레스 카나리아."

"뭐, 뭐라고? 그 개망나니에 왕싸가지로 악명 높은, '돌로레스 데 카나리아 에스텔란다'가?"

니콜 황녀는 심하게 당황하면서 베로니카에게서 책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책 제목을 그때서야 확인했다.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

니콜 황녀는 혼란을 느꼈다.

그녀가 아는 돌로레스 카나리아는 망나니 그 자체였다.
예절은 밥 말아 쳐먹은, 툭하면 울고 징징대는 애새끼.
사교계 데뷔 자리에서 애먼 영애의 뺨을 때리고 상을 뒤엎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공작가의 여식이 아니라면 진작에 내쫓겨났을 그 돌로레스 카나리아가, 이런 작품을 냈다고 하니까 그녀는 내심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참 이상하군요. 초보 작가의 필력은 아닌 것 같은데. 친구도 없는 외톨이라고 방구석에 숨어서 이런 글이나 싸지르고 있었던 걸까요.'

그녀는 다시 책을 펼쳐서 훑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희망 따윈 없는 우울하고 피폐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글을 써본 적이라곤 없다기엔 이 글은 짜임새 있고 완성도도 높았다.

어째서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어째서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어째서 주인공은 심지어 자살마저도 계속 실패했을까.
어째서 저주받은 필력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연중작을 이어서 쓰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을까.

이 작품은 소설일까?
아니면 작가의 경험이 담긴 수기일까?
수필이라면 초보 작가가 어디서 이런 경험을 쌓은 걸까?
애초에 교양 따윈 찾아볼 수 없는 망나니 영애가 쓴 작품이 맞을까?

그리고, 왜 하필 제목을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라고 지었을까.

니콜 황녀는 흥미롭다는듯이 싱긋 웃으면서 눈썹을 치켜올렸다.

"베로니카 님은 카나리아 공작영애와 친하죠?"

"그럼요. 단지 친해서 추천한 건 아니지만요."

"그렇겠죠. 지금 당장 찾아야겠네요. 어디 계실까나. 그러고 보니 요근래 안 보이던데."

하지만 베로니카는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난처한 모습을 보이고 손을 내저으면서 대답을 유예했다.

그런 모습에 니콜 황녀는 분통을 터트리면서 성질을 냈다.

"뭐에요. 문예부 활동의 일환으로 작가를 만나서 인터뷰를 가지겠다는데. 당장 어디 있는지 말 안 해요?"

"저, 그, 그게, 황녀님."

"대체 뭔데요, 베로니카. 친한 거 아니었어요?"

"카나리아 공작영애,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수, 수감? 대체 어째서? 본 황녀의 사촌여동생이자 막강한 자본과 해군력을 자랑하는 카나리아 공작가의 영애가 어째서 감옥에 들어가 있죠?"

"음화반포 및 풍기문란 혐의로… 수감되었습니다."

니콜 황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가 이내 침착을 유지하면서 다음 화제로 전환했다.

"다음 화제로 넘어가죠. 본 황녀가 추천한 책, 읽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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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인데, 글을 씁니다

EP 01.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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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소설 도입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개꿈 꾸다가 자명종 소리 듣고 잠에서 깨어난다거나.
갓난아기 때부터 이어지는, 아무도 궁금하지 않는 성장일기을 쓴다거나.
어린 여자아이가 뚜방뚜방 걸어와서 '안녕 나는 신이야 ㅋㅋ' 같은 말을 건넨다거나.
'해병력 892년 톤요일'에 천족과 마족이 팬티레슬링을 했다고 하거나.

지루한 문장은 피하라는 얘기겠지.
'낯선 천장이다' 같은 것도 너무 많이 쓰였기 때문에,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다지만, 이 말만은 해야겠다.

낯선 천장이다.

아니, 여기가 대체 어디야.
분명 투신자살 하고 있지 않았나?

나, 귀족 영애로 빙의한 거야?

 * * * * *

스마트폰의 노예인 현대인답게 무의식적으로 머리맡을 더듬거렸다.
Siri를 불러서 내 폰이 어디 있을까 찾아내려다가 이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현대문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세계의 귀족 영애가 되었는데 찾아봐야 뭐하나.

그래도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침대 옆 탁자 위, 겉면에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책이 눈에 밟혔다.

「귀족 아가씨를 위한 예법서」
낯선 꼬부랑 문자였지만 분명 읽을 수 있었다.

겉표지를 여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돌로레스 데 카나리아 에스텔란다에게」
「어엿한 공작가의 영애가 되려면 몸가짐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법이란다」
「다음에 돌아왔을 때 숙녀가 되었을 우리 딸의 모습이 기다려지는구나」
「사랑하는 너의 아버지가」

아, 왜 하필이면 「백합꽃이 피는 정원에서」의 악역영애로 빙의를 한 건데.
작가에게 한소리 했다고 이러는 건가.

책 내부는 제목 그대로 예법서였다.
인사, 호칭, 말투는 물론이고 식사 때 어떤 포크를 사용하여 어느 요리와 같이 먹는지까지.

종이가 빳빳하고 손때가 전혀 안 묻은 걸 보니 돌로레스는 이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귀족 사회에는 전혀 관심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등을 돌린 게 아니었을까.

쉽게 말하자면 아싸 찐따 멘헤라.
아버지가 준 선물을 방치해둔 걸 보면 뻔하지.
사교계에 관심이 있다거나 부모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품었다면, 이 책을 조금이라도 읽었을 것이다.

"……."

책을 읽으려고 머리를 숙이니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다.

낯선 세계도 문제인데 새 몸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네.
일단은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책상 위에 놓여진 깃펜을 들고 왔다.
그리고 예법서를 펼쳐 메모를 해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내가 빙의한 「백합꽃이 피는 정원에서」.

이 작품은 '성녀 릴리에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하는 백합물이다.
주인공 '베로니카 갈릴레이'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당찬 모습을 잃지 않는 여자아이.
그런 그녀는 입학 첫날부터 오만한 황녀 '니콜 드 에스텔란다'에게 찍히게 된다.
두 사람은 오해를 하면서 티격태격 다투지만, 점차 서로를 이해하면서 사랑을 꽃피운다.
하지만 '돌로레스 데 카나리아 에스텔란다'라는 악역영애가 등장하여 둘의 사이를 훼방한다.
그녀의 불안정하고 터질 것 같은 광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지만, 베로니카와 니콜 황녀는 시련을 극복하고 둘만의 비밀을 쌓아나간다.

…라는 줄거리였었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돌로레스, 그러니까 나의 미래는 자퇴다.
멘헤라 짓 때문에 호감스택이 잔뜩 쌓이다가 베로니카가 각 잡고 터트려서 단죄.
결국 이지메의 대상이 된 돌로레스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지.

그렇게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가 276화 마지막에 등판해서 느슨해진 백합 분위기에 경각심을 심어줬다.
그 뒤 이야기는 모른다.
작가가 연중 치고 도망갔으니까.

"……."

그런데 파멸 단죄 엔딩을 피하는 게 소용이 있나.
글을 쓸 수 있고 글로 성공할 수 있다면 상관 없다.
현재 시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자퇴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아카데미? 거기서 배우는 게 얼마나 쓸모 있다고.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계신가요? 아가씨?"

여자 목소리인데, 메이드인가?

"누구시죠?"

"으갹!"

비명이 들렸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 아가씨. 별, 별 일 아닙니다. '프리지아'에요."

뭐 엎지르기라도 했나.
아니면 내 목소리가 뭔가 이상한가.

"일, 일어나셨군요? 여기, 식사 놓고 갈테니 다 드시고 그릇 밖에 내놓으면 종을 울려주세요."

어라, 문 앞에 밥을 놓고 간다고?
내가 전염병 환자도 아니고 대체 왜?
설마… 돌로레스는 하녀들에게도 기피 당하고 살았던 거야?

정보가 더 필요하니까 계속 질문을 던져야겠다.

"프리지아, 괜찮아요? 아까 비명 소리 들렸던데."

"예? 아, 아니에요. 그, 그냥."

"넘어지기라도 한 거에요? 아니면 삐끗했다거나?"

"그런 거 아니라……."

어째서 대답을 회피할까.
더 물어봐야 평행선일 것 같은데.
일부러 그러는 걸까.

침대에서 폴짝 내려서 문을 향해 갔다.
그리고 문을 활짝 열어서 프리지아와 마주봤다.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크구나.
말끔하게 메이드복을 차려입었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저, 프리지아?"

"아, 아가씨! 대체 어, 어째서……."

"그, 그게… 그러니까……. 이렇게 얼굴을 보니 좋네요."

으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얼굴을 보니 좋다'는 게 뭐야.
나도 참 사람 대하는 게 서툴다니까.

프리지아는 갑자기 얼굴이 벌개졌다.
어디 아픈가?

"실, 실례 했습니다!"

그리고 프리지아는 사라졌다.

아, 저 메이드는 돌로레스가 싫은가 보구나.
악역영애에 빙의했으니까 이런 것도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슬프네.

문 앞 바닥에는 샌드위치와 우유가 놓여져 있었다.

별 수 없지.
식사를 들고 안으로 들어와서 먹었다.

우걱우걱.
맛있네.

 * * * * *

메이드 프리지아는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메이드 숙소로 돌아왔다.
그녀는 카나리아 공작가에서 5년 동안 일한 나름대로 베테랑이었지만, 그녀에게 지금 상황은 너무 낯설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숨을 고르면서 당혹감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할 때, 동료 메이드 이오니는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타서 건네줬다.

"프리지아, 괜찮아? 무슨 일 있어?"

프리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면서 벌벌 떨었다.

"돌, 돌로레스 아가씨 있잖아."

"응. 근데 왜?"

"말을 걸었어."

"뭐, 뭐라고?"

"직접 방문을 여셨어. 그리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 '이렇게 얼굴을 보니 좋다', 고."

"세, 세, 세상에. 아가씨께서? 직접?"

이오니는 카나리아 공작가를 섬긴지 10개월 밖에 안 됐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처음 겪었다.
그녀는 일단 프리지아가 밀크티를 쏟지 않게 유의하면서 여러가지를 물었다.

"거의 1년 이상 방에서 나오시지 않았다면서? 아가씨 상태는?"

"좀 부스스 하고 창백한 것 말곤 괜찮아보였어."

"그래? 뭐 화내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우리가 말 걸면 대답을 거부하거나, 심하면 꺼지라고 욕설을 하셨잖아."

"그런 건 없었어. 그냥… 온화하다고 해야 하나."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까? 큰 마음 먹은 게 분명해.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 그게… 당황해서 도망쳐 나왔어."

이오니는 프리지아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
그녀가 한심하다는듯이 프리지아를 노려보자 프리지아는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으이그, 아가씨께선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었는데 그걸 매몰차게 거절하냐. 너 때문에 다시 숨어버리면 어쩌려고."

"미, 미안. 너무 당황스러워서."

"다시 문 닫고 농성하면 그땐 네가 책임 져. 알겠어?"

"응……."

이오니는 피식 웃으면서 프리지아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어리둥절한 프리지아의 코를 살짝 누르면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우리가 모시는 아가씨가 방구석에 계속 틀여박혀 있는 게 얼마나 마음 아팠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척이나 밝고 사랑스러웠다고 들었어. 그때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1년 전, 아가씨께서 데뷔탕트 볼을 하시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때 무도회 이후로 아가씨가 망가졌었거든."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가씨께서 너무 이른 시기에 사교계 데뷔를 한 게 문제가 됐나봐. 그때 아가씨는 14살 밖에 안 되셨거든."

"보통 18살에 데뷔탕트를 치루지 않아?"

"그건 일반 귀족 얘기고 황실에선 11살 정도로 어린 나이에도 치루는 게 일반적이래. 아가씨께선 에트왈 제국 에스텔란다 황실의 방계혈족이니까 별 문제 없으리라고 본 거지."

"하지만 그 무도회에서 뭔가 사고가 일어났고, 아가씨께선 상심에 빠져서 스스로를 가두셨다?"

"응. 그 이상은 몰라. 아가씨께서 이 기회에 마음의 문을 여신다면 좋겠는데."

이오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청소도구를 챙겼다.
그리고 몸을 풀면서 일할 준비를 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그럼 일하러 가볼까? 아가씨께서 밖으로 나오시기 전에, 저택을 한 번 대청소 해야 되지 않겠어? 이참에 목욕재계도 하자. 보다 더 청결한 모습으로 맞이 해야지."

"그, 그래야겠지? 동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어. 아가씨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두 메이드의 얼굴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기쁜 소식은 저택 곳곳에 퍼져나가자, 모든 사용인이 슬픈 잠에 들었던 공주를 대접할 준비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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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인데, 글을 씁니다

EP 01.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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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의 방 안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
침대, 책상, 벽면 한쪽에 놓인 책장.
그리고 방과 연결된 화장실까지.

먼지도 없고 더러운 구석은 하나도 없이 깨끗한데다가 반짝반짝했다.

원작에서 돌로레스는 청소 마법을 기가 막히게 사용한다고 했었던가.
의외로 청결과 위생을 중시하는 성격인가보네.

속옷이며 평상복이며 수건이며 모두 뽀송뽀송 한 것 봐.
빨래도 알아서 다 하는 건가?

시선은 책장을 향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어딘가 익숙한 인상이었다.

「흑장미 루드베키아」
「거짓된 성녀와 눈 먼 성기사」
「계모가 키운 황태자」
「친애하는 나의 기사님께」

얘는 로맨스 소설하고 로맨스 판타지를 선호하나보다.

만약 내가 글을 쓴다면 저런 것들을 참조해야겠지.
이 세계에선 어떤 글이 유행하고 어떤 소재를 좋아하는지 알아야 하니까.
잘 팔리는 글을 쓰려면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맞지 않겠어?

찬찬히 둘러보다가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사랑 받는 약」

이 책만 유독 너덜너덜한 걸 보니 자주 읽었던 모양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심심한데, 어디 한 번 읽어볼까.

 * * * * *

나쁘지는 않다.
나쁘지는.
그런데 뭔가 지루했다.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았다.

이 소설은 저주를 품고 사는 공주가 사랑의 묘약을 마시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묘약 덕분에 모두의 사랑을 받지만, 한 켠으로는 불안에 떨면서 나날을 보낸다.
결국 사랑 받는 약이 발각되어 다시 미움 받게 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진다.
하지만 저주를 극복하고 공주를 사랑한 황태자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고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잡다한 내용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소설 시작부터 50페이지까지 대체 왜 공주의 꿈을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다.
왕국의 군사편제와 인구 현황 같은 뭔 잡다하고 세세한 설정까지 묘사한 것도 마이너스였다.
시점도 확확 바뀌어서 주인공에게 몰입하기도 어려웠고, 별 관심도 없는 엑스트라의 삶에 대한 묘사는 그만 좀 넣었으면 좋겠다.

곁가지들 전부 쳐내고 핵심에만 집중하면 어디가 덧나나.

무슨 일을 저질러도 칭찬하고 잔뜩 쓰다듬어주는 왕국 사람들.
갈수록 불안감이 증폭해가고 마음고생을 하는 공주.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사랑 받는 약을 들키고 갈등 폭발.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황태자에 의해 해소.

그리고 카타르시스.

이런 핵심에 집중해야지 쓸데 없는 내용만 넣으면 어쩌냐고.

설마, 다른 책들도 다 이러나.

책 여러 권을 빼내서 빠르게 스캔했다.
다년간 독서로 다져진 속독 실력 덕분에 훑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재미는 있는데 뭔가 잡다하네.
억지로 분량 늘리려고 물 탄 느낌이 들어.
대체 왜일까.

아마도… 만연체를 써야 교양 있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활자 수에 비례해서 돈을 받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세계 독자들은 이런 걸 선호하나.

흠, 어쩌지.
나도 이렇게 글을 써야 되나.

웹소설에 맞는 간결한 문체를 선호했다.
사족이 들어가면 바로 독자들이 도망가기 때문에 빠르게 진도를 빼는데에만 집중했다.
가능하면 주인공에게만 집중해서 끝없이 성장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출판소설을 쓴다면 저것들 모두 재고해야 한단 말이지.
이에 맞는 문법을 구사해야 할텐데.

고민이 필요하겠다.

"아가씨, 점심시간입니다. 아침 식사 아직 안 드셨나요."

그때, 프리지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벌써 점심 시간이 됐나.
아차, 그러고 보니 빈 접시 반납을 안 했구나.

아침에 저 메이드는 내게 거부 반응을 보였었단 말이지.
그러니 이런 것 하나까지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대화를 거부할까.
아니면…….

"프리지아, 안으로 들어와서 빈 그릇 가져가세요."

거만한 귀족영애를 연기하기로 했다.
일단은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으로.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사용인을 부려먹는 걸로 갈까.

그리고 프리지아가 안으로 들어오면 붙잡고 뭣 좀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가씨? 안, 안, 안으로 들어오라고요?"

대체 뭐지.
이 저택의 메이드들은 단체로 항명이라도 하나봐.
아무리 그래도 공작영애 아니었어?

의구심을 억누르고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제 손으로 그릇을 치우는 귀찮고 번잡스러운 일은 하기 싫으니까, 가져가라고요. 들어와서, 말이에요."

오, 방금 나, 진짜 귀족영애 같지 않았어?

하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 프리지아?"

한 번 더 부르자 그때서야 문이 빼꼼 열렸다.

끼이익ㅡ.

그리고, 프리지아는 냅킨으로 입을 막고 질질 짜고 있었다.

"……."

아니, 대체 왜?
그냥 그릇을 가져가라고 했을 뿐이잖아.
울 이유가 전혀 없지 않아?

혼나서 불쾌하단 거야?
아니면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기도 싫어?
그릇 안 가져다준 게 그렇게나 기분 나빴어?

으아, 짜증나네.
진심 뭐냐고.

결국, 신경질을 내버렸다.

"대체 뭐하는 거에요. 다시 나가세요."

"아, 아가씨……."

"밖에서 기다리라고요! 빈 그릇이 필요한 거에요? 자! 받아요!"

성큼성큼 책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쟁반을 들었다.
그리고 살금살글 걸어서 메이드에게 건네줬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빈 그릇을 받았다.

"그래서 점심은요?"

"드, 드릴게요……."

카트에다가 식사를 담아서 나르고 있었구나.

새 음식을 건네받고 발로 문을 차서 닫았다.

쾅ㅡ!

점심은 파에야네.
쌀밥으로 온갖 재료를 넣고 볶은 볶음밥이라.
뭐 한국인에겐 친숙하지.

음, 맛있어.
이건 자주 해달라고 해야겠다.
김치 한 종지만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 * * * *

프리지아는 문을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방금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닫자 한숨만 푹푹 쉬면서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하아, 등신. 메이드 실격이야. 아가씨께서 기껏 용기를 내주셨는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돌로레스가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이후로 방 안으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면 되겠지 여겼지만, 이내 저택의 모든 이들이 그녀의 히키코모리 생활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깨달았다.

처음에는 다들 돌로레스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밥 안 주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문을 부수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법으로 철옹성을 유지했고 차라리 굶어죽는 길을 선택했다.

결국 매일 식사를 놓고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알아서 먹고 빈 그릇을 밖에 내놓았다.
잠깐 문이 열린 틈을 타서 강제로 헤집으려고 하면 바로 공격.

그래도 식사와 함께 책이나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두면 그대로 가져갔다.
다만 정성 어린 손편지가 보이면 상스러운 욕설로 답장을 적어서 밖으로 내던졌었다.

그러던 그녀가, 아침에는 직접 방문을 열어서 나왔다.
방금 전에는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 누구에게도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그 방 안으로 말이다.

프리지아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펑펑 울었다.
그래서 주인의 명령에 머뭇거리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녀는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 깨닫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체 뭐하는 거에요. 다시 나가세요.'

다시 내쫓겨났다.
문이 닫혔다.
언제 다시 열릴 수 있을까.

"아가씨,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저 때문이에요. 제가 너무 바보같은 실수를 저질렀어요. 정말 죄송해요."

프리지아는 펑펑 울면서 연신 사죄를 했다.
방음 마법 때문에 들리지 않겠지만, 그녀는 이렇게라도 빌고 또 빌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하라는 건 뭐든지 다 해드릴게요. 그러니 다시 밖으로 나와주세요. 부탁이에요. 제발요."

그리고, 그 기회는 의외로 금방 찾아왔다.

덜컹, 끼이익ㅡ!

"어, 어라?"

안쪽으로 문이 열렸다.
문에 등을 기대던 프리지아는 맥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치마 속 연분홍색 팬티.
하팔이면 두 다리 사이에 머리가 놓여져버렸다.

그리고.

"끼야아아악! 이 변태 새끼가 뭐 하는 거야! 당장 안 꺼져?"

저택이 떠내려가는 고성이 들렸다.

프리지아는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녀는 속으로 결심했다.
자기 같은 메이드는 쓸모 없다고.
주인을 저버리고 내팽겨친 주제에 팬티나 훔쳐봤으니 살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 * * * *

뭐지.
저 년은 왜 울면서 내 팬티를 훔쳐 본 거야.
미쳐버린 걸까.

방 안에 있으려니 정말 심심했다.
그래서 저택 좀 탐험하려고 했는데 이런 불상사가.
어처구니가 없네.

"죄송해요. 저는 쓸모 없는 메이드에요. 죽여주세요. 제발 죽여주세요."

"프리지아."

"저 같은 건 이 세상에 필요 없어요. 주인의 말도 듣지 않는 저 같은 건 살 가치도 없어요. 죽여주세요. 제발요."

"프리지아!"

이 저택은 수맥이 흐르나보다.
그 영향으로 멘헤라가 되는 게 분명해.

가만히 놔두면 할복할 기세다.
난데 없는 참극이 벌어지기 전에 프리지아를 일으켜세웠다.

"헛소리 집어 치우고, 저택 좀 소개 시켜 주시겠어요?"

"저, 저택이요?"

"제가 기억을 잃어서요. 아하하."

그리고, 프리지아는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버렸다.

이 메이드는 대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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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인데, 글을 씁니다

EP 01.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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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 강제로 농성 중이다.
팬티나 훔쳐보는 변태 메이드 덕분이지.
쟤 때문에 온 저택의 사용인들이 몰려온 것 같은데.

"아가씨! 괜찮으세요?"
"아가씨, 무슨 일 있으신가요?"
"문 열어주세요!"
"아가씨, 아가씨!"

문전성시가 따로 없었다.
저택이 떠나가도록 비명을 질렀으니 당연한 건가.

그저 조용히 저택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니, 진짜, 하.

"……."

모르는 사람 붙잡아다가 해명하는 것도 일이다.
하물며 돌로레스에게 빙의한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그냥 피하는 것 밖에 답이 없다.

"프리지아. 일어나. 프리지아."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에 급하게 안으로 끌어오고 문을 잠갔는데, 이럴 거면 그냥 들여보내지 말 걸 그랬나보다.

"하아. 끙차, 제법 무겁네."

힘을 써서 침대 위에 눕혔다.

헝겁으로 얼굴을 닦고 뺨을 톡톡 두드렸다.

"이래도 안 일어나?"

숨 쉬고 있고 심장도 멀쩡히 뛰고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렇게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을 때, 프리지아가 눈을 떴다.

"아가씨!"

쾅ㅡ!

이 돌대가리를 봤나.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박치기를 했잖아.

"아, 아야."

바닥을 뒹굴면서 이마를 마구 문질렀다.
골이 울려퍼졌고 화끈거릴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었다.

하, 겁나 아프네.

"아가씨! 죄, 죄, 죄송해요! 감, 감히 박치기를……."

날 싫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눈 뜨자마자 그렇게 공격 할 수가 있어.

인내심을 유지하면서 똑바로 말했다.

"당신이 돌로레스를 왜 싫어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가 말 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을까요?"

"예? 아가씨, 그, 그게 아니라……."

안색이 새파래진 메이드 앞에서 팔짱 끼고 짝다리를 짚었다.

"저, 기억이 하나도 안 나거든요? 당신이 누구였는지, 제가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고요. 예?"

일단 기억상실을 주장하는 쪽으로.
그래야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면피가 가능하지 않겠어?

하지만 프리지아는 내 말이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어, 어째서요? 박치기 때문에?"

"박치기 때문이 아니라! 자꾸 말 끊을래요?"

"제가 잘못했어요. 메이드 실격이에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니 진짜 그게 아니라."

"내가잘못했어내가그런거야내가미워나같은건살아있을자격없어죽을거야싫어내가진짜싫어……."

진짜 미친 년인가.
죽은 눈빛으로 중얼중얼 대는 거 겁나 살벌하네.

이런 상황 자체가 극도의 스트레스.
내가 왜 이런데서 쓰잘데기 없는 갈등을 벌이고 있는 거지.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짜악ㅡ!

별 수 없이 온 힘을 다해서 싸대기를 때렸다.
그리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토해내버렸다.

"작작 좀 해 씨발년아! 안 그래도 빙의해서 혼란스러운데 너까지 그럴 거야?"

"빙, 빙의?"

"그래! 내가 돌로레스 몸에 빙의했다! 나 돌로레스 아니니까 그만 지랄하라고, 어?!"

…….
홧김에 저질렀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 고백해버렸네.

엑소시즘은 물론이고 화형당하려나.
원작에서 마귀 들린 인간은 어떻게 처분하는지 다 나와있는데.

그런데, 프리지아는 나를 꼬옥 포옹했다.

"아가씨……. 혹시… 이중인격? 그런 설정인 거에요?"

……?
그런 설정이라니?

"그렇군요. 마음의 상처로 인해 새로운 인격을 만드셨군요. 상처받고 절망에 빠졌던 본래 인격은 잠시 쉬고 계신 건가요? 정말 힘들었을텐데, 그래도 이렇게 마주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

어, 어라? 이중인격?
심각한 오해긴 한데,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난 네 주인의 몸을 탈취한 외계인이다, 크아앙!'보단 낫잖아.

돌로레스가 힘든 일을 겪고 해리 증세가 일어났다.
그 결과로 인격이 분리 되어서 본래 인격 대신 내가 나타났다.
이중인격이기 때문에 돌로레스와 다르면서도 같다.

흠, 말 되네.

"대충 그렇다고 치죠."

"아가씨… 흐아아아앙!"

프리지아는 나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래도 이 메이드는 돌로레스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보다.

뭔가 더 큰 오해가 생겼지만 아무래도 좋다.

 * * * * *

"아가씨, 제가 그런 건 아가씨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제발 그만 좀 해주시겠어요? 귀에 딱지가 앉겠네."

얘는 같은 사죄만 대체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다.

서로 오해를 했던 건 알겠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감정 해소.
쿨하게 마무리.

이렇게 깔끔하게 끝나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얘, 너무 질척질척 대.
애초에 난 돌로레스와 전혀 다른데 누구 보고 사과하는 거야.

에휴, 됐다 됐어. 머리 아프네.

"프리지아."

"네, 넷?"

"이 저택 안에 현재 누구누구 있나요?"

"저를 비롯해서 메이드 6명과 저희가 고용한 가정부들이 전부에요."

"그래요? 아버님이라든가 가신들은요?"

내가 알기로 돌로레스는 다이아몬드 수저다.
카나리아 공작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광활한 식민지를 대대로 경영했었지.
현실로 치자면 카리브 해 전체를 통치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재산도 재산이지만 가문이 보유한 선단은 정규군 해군의 전력과 맞먹는다고 알고 있다.

그런 공작가의 저택이라면 가신은 물론이고 손님도 엄청 많을텐데.

하지만 프리지아는 뜻 밖의 소식을 전했다.

"여기는 에트왈 제국의 수도 '루미에르' 근교에 위치한 별장이에요. 아가씨께서 1년 내내 방에서 나오시기를 거부하셔서 어쩔 수 없이 저희 빼고는 전부 본국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히키코모리 생활만 1년이라.

이 메이드들도 나를 봐주느라 힘들었겠다.

그래도 루미에르 시 근교에 있단 것은 어찌 보면 축복이었다.
원작의 배경인 성녀 릴리에 아카데미도 이 도시에 위치 했었지.
거기에 문화와 예술의 도시답게 출판 사업이 융성한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다만 돌로레스가 황제의 조카다보니 중앙정치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단 건데.
이건 가명으로 활동을 하는 쪽으로 가든가 해야겠다.

이제 내가 할 일을 할 차례인가.

"그렇군요. 지금껏 저를 돌봐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메이드들의 노고는 잊지 않을게요."

"뭘, 뭘요. 해야 할 일을 했었는 걸요."

"그래서 말인데, 다른 메이드들에게 가서 재량껏 현재 제 상태에 대해 설명 해주시겠어요?"

"그럼요. 누가 되지 않도록 조리 있게 말할게요."

좀 덤벙대는 면이 있긴 해도 얘 말고 아는 사람도 없다.
얘를 통해 찬찬히 안면을 트든가 해야지.

그리고 설마 안 좋은 쪽으로 말하겠어.
그랬다간 즉시 해고야.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더 할까.

"아, 그리고 원고지를 가져오시겠어요? 그리고 문예 공모전에 대해 조사해주세요."

"원, 원고지? 문예 공모전? 혹시 글을 쓰시나요?"

"한 번 내보려고요. 어떤 출판사가 유명한지, 가까운 시일 내로 어떤 문예 공모전이 있는지, 모집요강은 어떻게 되고 공모전 수상작은 뭔지 조사해서 가져와주세요. 기간은 일주일 정도?"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가씨."

"무슨 일이시죠?"

"저, 아까부터 궁금해서 그런 건데, 여쭤봐도 될까요?"

얘는 대체 왜 우물쭈물거리는 걸까.

별 이상한 걸 물어볼 것 같은데.
그래도 아까처럼 오해가 쌓이면 곤란하겠지?

"그래서 뭔데요?"

"아가씨의 원래 인격, 진짜 어떻게 됐나요? 혹시 주무시고 계신가요? 아니면……."

프리지아를 째려봤다.

기껏 물어본다는 게 그거야?
못 미더운 메이드네.
주인을 불쾌하게 만들기나 하고.

"하아……."

"괜, 괜한 걸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프리지아가 방을 떠났다.
방 안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

나의 원래 인격이 어떻게 되었냐니.
진짜 괜한 질문이야.
대답하기도 곤란해서 답해줄 수가 없네.

그래도 프리지아는 진심으로 나를 돌로레스라고 여기고 있구나.
오해라고 해도 어차피 상관은 없나.
이중인격이나 빙의나.

"……."

아니야.
나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는 환자의 분리된 인격 따위가 아니다.
전생에 실패한 작가로 살아왔었지만, 그것 모두 거짓이 아니다.
비참하고 애간장이 끊어질지언정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밝혀낼 수 있을까.
내가 돌로레스와 다른 삶을 살아왔단 것을.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작가는 글을 통해 소통을 하는 법.
현실에선 하지 못할 말이라도 작품 속이라면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작가는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쓴다지.
과거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돌로레스와 비슷하지만 다른 종류의 절망과 고통을 겪었다고 말하고 싶다.

썩 좋았던 기억은 없었다.
이제는 추억 속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상관 없다.
지금의 나를 이루게 한 소중한 경험.
나 자신에 대한 예우를 보내는 거야.

그래서, 어떤 글을 쓰지.

영감이 떠올랐다.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
제목은 이걸로.

 * * * * *

다들 나를 미워하는 게 분명했다.

또 공모전 탈락이라니.
또 투고작 반려라니.

실패, 실패, 그리고 또 실패.

더 이상 글 쓰기가 싫었다.
아무도 안 읽는 글이 뭔 소용이 있을까.

"……."

오늘도 습관적으로 글을 읽었다.

단점만 보이는 글들.
어떤 작품은 답답하고 어떤 작품은 오타가 잦다.
어떤 작품은 대본식이고 또 어떤 건 시점이 중구난방이다.

그래, 내가 저것들보단 더 잘 썼지.
완성도도 있고 맞춤법도 잘 지켰어.
흔해빠진 것들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왜 내 글은 재미가 없는 걸까.

나를 알아주지 못한 세상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이질적인 존재라서 그런 걸까.

출품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온실 속 화초였구나.
이 거친 세계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구나.
내 글은 다른 뛰어난 소설들을 꾸미는 병풍에 불과했구나.

나는, 시간을 허비하면서 죽어가고 있었구나.

첫 문장부터 잘못 쓴 소설.
도입부가 헝클어진 소설.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엉망진창인 소설.
억지로 쓰다가 못 버티고 급하게 완결내는 소설.

나는 그런 소설이었다.

그래도 차기작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언젠가는 대문호가 되리라고 꿈을 꿨다.

헛된 희망은 아닐 거야.
내 작품은 다른 작품과 다르니까.
비록 지금은 졌어도 내일은 모르는 거니까.

오늘도 골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위를 했다.
현실을 잊고자 쾌락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오늘따라 씁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눈물에 젖은 패배자의 안쓰러운 자기위로.
잠지를 아무리 어루만져도 벌겋게 달아오를 뿐이었다.

이런 나에게도, 볕 들 날이 올까.

「실패한 작가의 패배자위 수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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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으 이거 챌린지 때 연재할 거고 더 나아가 노카데미 응모도 할 건데요...

재미가 있는지 과연 먹힐지 자신이 없어요...


따끔하게 한마디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