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백일장 채널

<계속>

변호사는 꿈을 꾼다. 몇 년 전 변호사의 이야기와 꼭 닮은 장면이 꿈에 선명하다.

맑은 눈을 가졌던 변호사는 사람들을 도우려 외진 곳에 사무소를 차렸다. 소외받은 사람들이 대거 모이는 곳이었기에, 돈도 거의 받지 않으며 사람들을 대했다. 금전적인 여유는 없었지만, 변호사는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를 좋아했고, 변호사도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하지만 욕심스런 사람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었다.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응대했지만, 거친 현실과 맞대던 그들은 작은 것 하나라도 거슬리면 변호사를 험하게 대했다. 그들이 수도 없이 찢어발긴 변호사는 결국 지금 자리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 후로 변호사의 얼굴에서 웃음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터벅터벅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린다. 꿈속에서 큰 소리에 놀란 변호사는 순간 으아 소리를 뱉는다. 옛날 생각 때문에 마음이 잠시 약해진 이유이다.

경찰입니다만, 아까 여기 누구 왔습니까?”

경찰을 보고 놀란 변호사. 무슨 죄를 지었나 번개같이 생각해보고 곧바로 안심한다. 다만 그들을 찾는 것에 켕기는 구석이 있는지, 다소곳한 태도로 올려다본다.

어쩐 일이십니까...”

험상궂은 상판과 시커먼 목소리가 방을 가득 메운다. 거뭇한 팔뚝에는 화려한 문신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깊은 흉터가 보인다. 변호사는 괜스레 움츠러들어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경찰은 그를 겁주며 짧게 이야기한다. 요지는, 그 남자와 어머니가 화물차에 치였다는 것이다. 모자는 도시 입구에 있는 고속도로에서 멀쩡히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화물차가 빠르게 휘달려갈 때 그걸 보았음에도 아랑곳 않고 급작스레 도로로 함께 뛰어나가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피로 도색된 화물차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멀리 도망갔다고 한다. 도로변을 대충 치워내고 목격담을 들어보니, 노모를 업은 남자가 상담소에서 애처롭게 절규하며 나왔다기에 찾아온 것이다.

“...누가 여기 왔다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졸고 있었을 뿐입니다. 뺑소니와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괜히 귀찮아 보이는 일에 휘말릴까 싶어, 변호사는 무심결에 거짓말을 내뱉는다.

졸았다니! 그럼 뭐, 별 상관없으시겠네. 그럼 그런 줄로만 알고 있겠습니다.”

말 몇 마디만 하고선 퉁명스레 돌아서는 경찰. 변호사의 거짓말을 한 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인다. 뒷모습으로 보이는 헝클어진 머리칼과 더럽혀진 옷매무새가 꽤나 너저분하다. 문을 쾅 닫으며 나가는데, 그 바람에 폴폴 휘날린 먼지가 창문의 금 사이로 새어든 햇빛 덕에 잘 비친다.

청소는 아직 괜찮겠지.”

변호사는 한숨 한 번 하고, 커피잔을 싹 들이킨다. 커피 대신 거칠한 입술의 피 맛만 날 뿐이다. 에이, 아쉬워하며 그대로 다시 졸음에 드는 변호사. 변호사는 다시 꿈을 꾼다. 중학교 시절 변호사의 이야기와 꼭 닮은 장면이 다시 한 번 지나간다.

집으로 혼자서 돌아가던 어느 날, 변호사는 위험한 사람들을 만났다. 두꺼운 담장이 높아 길은 어두웠고, 바닥은 생채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돈을 내놓으라며 그들은 변호사를 발로, 주먹으로 계속 때렸다. 돈이 없어서인지, 그저 화풀이할 상대가 자기인 것인지, 변호사는 생각하며 버텼다. 계속 맞고 있었다. 어느 순간, 어느 아우성과 함께 폭력이 그쳤다. 간신히 고개를 들자, 앞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변호사를 바라보는 그 표정은 섬뜩했다. 손으로 감싸 쥔 팔에는 감춰지지 않는 상처의 피가 내리고 있었고, 피가 새겨진 돌멩이가 옆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문득, 변호사는 눈을 뜬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마신 커피잔, 널브러진 낡은 책들, 너무나 큰 커피머신, 그리고 먼지 쌓인 바닥. 방 안은 다른 것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마저도 계속 볼 같은 물건, 같은 모양새, 같은 방. 그러나 무엇인가 다르다. 섬광처럼 지나친 미시감에 변호사는 눈을 질끈 감는다.

꿈들이 아프다. 머릿속을 맴돌며 변호사에게 다가온다. 오늘은 이 꿈이, 어제는 저 꿈이, 떠오른다. 떠올라서, 이 방을, 변호사를 흩뜨린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문제인가. 머리를 숙이고 헤어 나오지 않는 변호사. 질끈 감은 두 눈은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

엷디엷은 햇살은 차가운 계절에 어울리고, 협소한 사무실 속에서 마시는 커피는 다디달다. 사무실 밖 도시는 오늘도 활기차고, 자동차는 딱딱한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린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아들의 마지막 절규는 아무도 듣지 않는다.

언제나 활기찬 이 세상에, 작디작은 이 도시에, 참으로 든든한 이 창살에 고요히 담긴 이_설음은, 오늘도 아름다운 세상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