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파르나스 타워가 어딨는 겁니까?"
"잠깐만 지도 좀 보겠네."
천 슈어 단장님이 지도를 보았다. 슈트에 홀로그램처럼 뜨는 원리였다. 이걸 보니 아이언맨 슈트 같기도 했다.
천 슈어 단장님이 패러렐라인으로 파르나스 타워의 위치를 보냈다.
"삼성역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타워일세. 옆에 트레이드 타워가 있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시즈오카 히카리가 말했다. 최단거리인 서울의료원 안쪽 길로 가는 중인데도 도중에 힘에 벅찬 듯 했다.
"일단 전망대에 있는 안드로이드부터 처치하세."

뒤에 안드로이드가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큰일이었다. 경찰도 신경써야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더 큰 문제였다.

어느덧 서울의료원을 빠져나왔다. 파르나스 타워 방향으로 가기 위해 왼쪽으로 길을 틀었다.
"파르나스 타워로 바로 들어가기는 무리일 것 같네. 지도상으로 보면 삼성역 지하로 들어가거나 트레이드 타워 옥상에서 비행베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직후 단장님이 츠바사를 호출했다.
"미야자키 츠바사, 삼성역, 파르나스 타워, 트레이드 타워의 모든 사람들을 해킹으로 건물에서 빼내줄 수 있나?"
"네. 시작할게요."
"고맙네."

"안드로이드가 가깝습니다!"
크리스 이스트우드가 레이더를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 진짜였다. 어느새 너무 가까워져있었다.
펑.
안드로이드의 포격이었다. XIA-H9-397과 같은 기종의 762호였다. 역시 로봇이라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빨랐다.
포격은 남해주차장 주차차단기에 맞았다. 주차차단기가 바스라져 나뒹굴었다.
397호와 762호의 무기는 바주카포. 청산가스 총을 가지고는 있지만 쓰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도 인정사정없었다. 아까 최은준 교수도 청산에 중독되어 서울의료원으로 이송되었기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지 않을 거리는 보장이 없었다. 청산을 쓰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뭐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우리들이 열심히 접착총과 화학총을 쏘아댔지만 역부족이었다. 역시 로봇이라 엄청나게 잘 피했다. 진짜로 인간이란 로봇을 이기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생명체란 말인가?
남해주차장에서 폭발이 일자 민간인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 이 와중에도 안드로이드가 어떻게든 민간인 부상을 막으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일단 어떻게든 파르나스 타워 쪽으로 가야하네!"
조금씩 야금야금 앞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몇 분이 지나고 비로소 틈이 생겼다. 우리들은 그 틈을 노리고 바로 진출했다.
그 때였다. 이번 타깃을 크리스 이스트우드로 잡았는 지 크리스를 한 쪽 구석으로 몰어넣었다. 지하 스크린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계단 입구였다.
"전 괜찮으니까 여기는 맡기고 일단 가세요!"
크리스가 말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듣고 일단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펑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스크린골프장 계단입구 천장이 부서져있었다. 천장의 잔해가 부서져 입구가 막혀버렸다.
알 수 있었다. 스크린골프장 지하에 한 명 가둔 것이었다.
죄송했지만 일단 파르나스 타워로 가야했다.

"거리상 삼성역 지하로 가는 건 무리인 듯 하네. 그러니 트레이드 타워로 가는 게 어떻겠나?"
"그러도록 하죠!"
확실히 트레이드 타워로 바로 가는 것이 빠르긴 했다. 파르나스 타워의 사정거리에 노출될 위험이 컸지만 방법이 없었다.
트레이드 타워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다리가 아팠다. 비행베낭을 쓰면 좋겠지만 롯데타워의 분진 때문에 쓸 수 없었다.

어느새 큰 거리까지 도달했다. 영동대로였다. 왼쪽에 파르나스 타워가 보였다. 저기서 뭐가 날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오금이 저렸다.
뒤에서 크리스를 가둔 안드로이드들이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따라잡힐 것 같았다.
크리스는 괜찮을까? 시즈오카 히카리가 먼저 크리스에게 안부를 물었다.
"크리스 씨 괜찮으세요?"
"괜찮아. 다친 곳 없어. 곧 합류할게."
다행이었다. 그냥 고립만 시키는 것이었다. 지금 안드로이드의 목적은 수를 줄이겠다는 것 같았다.

영동대로에 차가 엄청 많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디갔는 지 텅 비어있었다. 아까 단장님이 츠바사에게 부탁한 대로 된 것이었다.
영동대로의 자동차들을 엄폐물삼아 혹시 모를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피했다. 운전자들이 승용차나 승합차 등 여러 자동차들을 버리고 도망간 덕분이었다.
안드로이드가 뒤를 쫓아왔다. 그런데 혹시 자동차에 민간인이 있을까봐 함부로 쏘지 못하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덕분에 한 결 수월했다.

어찌어찌 트레이드 타워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트레이드 타워는 무역센터라서 삼엄할 줄 알았는데 사람이 전부 빠져서 한산했다. 방송으로는 대피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일단 마음먹고 움직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갔다. 그 때 우리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대피가 덜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비상구로 한 명 두 명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로는 아무도 나오고 있지 않았다. 지진 행동요령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들은 엘리베이터로 가기로 했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이쪽으로 오느라 힘들었는데 계단으로 수십 층까지 가면 더이상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떨어지거나 하면 어떻게 해요?"
"그땐 비행베낭 쓰게나."
실내여서 롯데타워 분진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일리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데 그 통로를 따라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탑클라우드52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과 52층을 한 번에 연결하는 엘리베이터였다. 다행히 안드로이드가 엘리베이터를 쏘는 등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탑클라우드52는 52층의 음식점이었다. 한강뷰를 보면서 식사할 수 있는 고급음식점 뭐 이런건데 지금 상황에서 무슨 대수랴.
52층에서 파르나스 타워로 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주변에 파르나스 타워와 마주보는 창문이 있나 두리번거렸다. 바로 찾을 수 있었다.
패러렐라인을 켜서 통신했다.
"여기가 52층이니까 여기서 뛰어내립시다. 보니까 파르나스 타워가 여기보다 낮으니 비행베낭이 고장나도 옥상에 안전하게 착지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 시즈오카, 할 수 있겠나?"
"무섭지만 해보겠습니다."

그 때 통신이 울렸다.
"세르게이 아시모프입니다. 팡 씬이와 함께 합류합니다. 어디로 가야합니까?"
"트레이드 타워로 와서 파르나스 타워에 착지하게나."
"네?"
"트레이드 타워에서 파르나스 타워로 뛰어내리라고."
"그걸 하시려고요?"
"그렇네."
그 때 크리스 이스트우드도 합류했다. 천 슈어가 세르게이 아시모프와의 통신을 끊고 크리스의 말을 들었다.
"크리스 이스트우드, 방금 건물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어떻게든 파르나스 타워 39층 전망대로 올라오게나."
"알겠습니다."
크리스 이스트우드가 통신을 끊었다.

"그럼 가세."
천 슈어가 주변에 있는 비상용 망치를 들고 와서 창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모서리에 계속 내리치니 서서히 금이 갔다. 계속 내리치니 마침내 창문이 깨졌다.
안과 밖의 기압차 때문에 바람이 엄청 불었다.
"빨리 가게나."
천 슈어가 바로 비행베낭을 풀가동하고 파르나스 타워로 내려갔다. 나도 비행베낭이 바람이 망가지기 전에 바로 내려갔다. 시즈오카 히카리는 머뭇머뭇하더니 에라 모르겠다 한 마디 하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바로 비행베낭을 껐다. 잠깐뿐이라 비행메낭이 버틸 만 했다. 모두 내려온 것을 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적진 침투였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나올 지 몰라 숨죽였다.

옥상에서 전망대까지의 거리는 짧았다. 파르나스 타워는 40층 건물이었고 전망대는 39층이라 1층만 내려가면 나오는 것이었다.
레이더에는 이미 안드로이드의 위치가 표시되어있었다. 모델명은 HON-A11-76. 예상대로 안드로이드는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레이더와 정면을 교대로 살피며 39층으로 갔다. 총을 장전했다. 어디서 누가 나올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레이더를 보았다. 미야자키에게 받은 건물구조를 레이더에 합쳐보았다. 76호의 위치는 옥상으로 나올 수 있는 비상계단의 39층 입구였다. 

계단 위를 걸어갈 때였다. 큰 폭음이 울리더니 우리들이 서있는 부분이 무너졌다. 빠른 상황판단으로 최대한 전속력으로 위로 뛰었다.
"괜찮으십니까?"
뒤를 홱 돌아보면서 말했다. 다행히 천 슈어 단장님은 뒤로 사사삭 피한 상태였고 히카리는 영향권에서 벗어나있었다.
그 때 안드로이드가 출현했다. 천 슈어 단장님이 비행베낭을 틀어서 엄청 빠르게 뒤로 이동했다. 비상구에서 아슬아슬하게 비행하더니 내 뒤까지 안착했다.
76호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가격했다. 이제 확신했다. 안드로이드의 목표는 단장님이었다.


이곳은 비상계단. 안드로이드는 나를 쏘지 못하나 나에게는 안드로이드를 무럭화시킬 무기가 있다. 비상계단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이 조건이면 내가 유리하다는 뜻.
어떻게하면 이길 수 있을 지 바로 직감이 왔다.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접착탄의 안전핀을 뽑고 아래쪽으로 화학탄을 던졌다. 안드로이드가 서있는 곳보다 더 뒤쪽이었다. 피할 수 있는 방향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거나 밑으로 내려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을 것이었다.
예상대로 안드로이드가 위로 올라왔다. 밑으로 내려가면 화학탄에 맞기 때문이었다.
나는 총을 연사로 바꾸고 닥치고 돌격했다. 화학총이었다. 타다다당. 빗나가는 총알들이 많았지만 비상계단 정도의 협소한 공간이라 거의 빗나갈 일은 없었다.
76호가 화학총을 정통으로 맞았다. 예상대로여서 다행이었다.
76호의 얼굴이 온통 화학총에 맞아 난장판이 되었다. 덕분에 얼굴이 완전히 녹았고 내부 회로마저 작살났다.

생각보다 싱거운 승리였다. 이게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나 싶었다. 지금까지 우리들을 위협에 빠뜨린 파르나스 타워의 저격수 치고는 허무한 결말이었다.
"금방 끝났네요."
히카리가 얼떨떨하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신 거에요? 한 방에 날리시던데."
"아, 그거요? 그냥 생각나더라고요."
솔직히 나도 이렇게까지 한 것에 놀랐다. 갑자기 생각난 것 치고는 제대로였다. 혹시 나 이런 데 재능이 있는 건가?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동안 패러렐라인으로 통신이 왔다.
"크리스 이스트우드, 파르나스 타워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오는 동안 안드로이드는 괜찮았어요?"
히카리가 물었다.
"괜찮던데? 안드로이드 다 어디 간 것 같은데. 아, 안드로이드 보니까 이미 건물에 있네. 조심해야겠다."
아까 그 안드로이드 2대가 건물에 있다? 확인했다. 397호와 762호였다. 레이더의 추적가능 범위는 250m. 파르나스 타워가 183m이기 때문에 건물 전체와 가까운 주변 일대를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일단 내려가세."
"그럽시다."
단장님의 말에 내려가기로 했다. 건물구조도와 레이더를 비교하니 안드로이드는 지금 십몇 층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도 한 층 한 층 내려갔다. 38층, 37층, 33층, 30층... 내려갈 수록 긴장이 팍팍 밀려왔다.
안드로이드는 빠르게 올아 25층으로 갔다. 25층은 기계실이랑 피난안전구역이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피난 안전구역이니 사람들을 대피시키려는 것일까?

"미야자키 츠바사, 파르나스 타워 CCTV 확인할 수 있나?"
"네."
그러더니 잠시 후 무언가가 도착했다. 파르나스 타워의 모든 CCTV를 볼 수 있는 해킹파일이었다.
CCTV를 확인했다. 역시나였다. 397호와 762호는 역시 피난안전구역의 사람들을 내쫓으려는 것이었다.

패러렐라인에서 무언가 왔다.
"여기는 팡 씬이.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아시모프와 같이 돌입합니다."
"그런가? 위험하니까 오지 않는 게 좋겠네."
"저,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이미 올라가는 중인데요."
"하, 그런가... 알아서 하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단장님이 패러렐라인으로 크리스를 호출했다.
"크리스 이스트우드, 25층에 적이 있다. 조심해서 오도록."
"네."

계속 CCTV를 보았다. CCTV를 보니 확실했다. 안드로이드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빼내는 것이었다.
"일단 25층으로 가세."
"네."
살금살금 25층으로 내려갔다. 비상구로 내려갔는데 혹시라도 아까처럼 계단을 때려부술까봐 간이 쫄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