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턱에 위치한 자연유치원에 도착하자 자연유치원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꽤나 넓은 마당을 가진 자연유치원은 최근에 지어진 것 같았고, 마당에는 아이들이 심은 것처럼 보이는 화분들이 놓여있었다.
 나와 한강철은 차에서 내려 자연유치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이 넓은 산 어딘가에 용의자가 숨어있을 것이였다.
 나는 마당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한 여자에게 다가갔다. 앞치마를 두른 것을 보니 이 유치원에서 일하는 듯 보였다.
 "저기.."
 내가 말을 걸자 놀라며 뒤를 돌아본 그녀는 내 옷차림을 살피더니 말했다.
 "유치원 원아 등록은 접수처에서 하시면 되는데.."
 그녀의 엉뚱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내가 신분을 밝히지 않았음을 깨닫고 품 안의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아, 저는 국가정보원 요원 정하섭이라고 합니다. 전범 체포와 관련해 협조를 구하고자하는데, 혹시 이 분을 보신적 있으십니까?"
 내가 뒤따라온 한강철에게 받은 사진을 그녀에게 건네자 그녀는 사진을 바라보더니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어..? 이 쌤 같은데요?"
 "이..쌤이요?"
 "네, 저희 유치원 선생님이신데.."
 순간 머리가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그녀는 자연유치원 인근 산에서 숨어 지내던 것이 아니였다. 이 유치원의 직원이였다!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아이들 데리고 저쪽 산에 소풍 가셨어요. 이제 곧 오실 때가.. 아, 저기 오시네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줄지어 산을 내려오고 있었고, 그 줄 맨 앞에는 한 여성이 양손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고 있었다.
 영락 없는 평범한 유치원 교사의 모습이였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품 안의 수갑을 챙기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자 고개를 들어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아, 저는 국가정보원 정.."
 그러나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뒤에서 달려온 한강철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쓰러진 그녀 위에 올라탄 한강철은 미친듯이 주먹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야, 한강철! 너 지금 뭐하는.."
 그의 돌발행동에 당황하던 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 권총이 들려 있었다!
 나는 몸이 먼저 반응해 그에게 달려들어 손에서 권총을 빼내 던졌다.
 "한강철, 너 미쳤어?! 저항도 안하는 용의자를.."
 그러나 한강철은 말 없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나는 어지러운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놀랐는지 엉엉 울고 있었고, 뒤늦게 달려온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유치원의 원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은 뒤따라 온 경찰관을 붙들고 항의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수연은 어느새 일어나 그녀에게 몰려든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흙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녀는 애써 미소 지으며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이수연 씨, 당신을 전쟁범죄와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 하시는 모든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있으니 조용히 와주시죠."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팔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여경에게 그녀를 인계했다. 한바탕의 소동이 벌어진 후라 아직까지도 어수선했다.
 한강철은 어느새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해야할 일이 있었다.

 "아무튼, 이번 일에 대해서는 확실히 해야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
 성난 표정으로 맞은 편에 앉은 원장 선생님에게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죄송합니다.. 체포 과정에서 부적절한 일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흠..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뭐.. 그런데 정말.. 이수연 선생님께서 전쟁범죄자라고요?"
 "아, 아직은 용의자입니다. 조금 더 수사를 하고, 심문을 해야 확정할 수 있을 듯 해서요.. 그래서 그런데 이수연 선생님께선 평소에 어떤 분이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이수연 선생님은.. 글쎄요, 오히려 친절하시고 다정하신 분이시라 학부모님들이 굉장히 만족하셨거든요. 특히나 아이들이랑 친하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아이들도 잘 따르고요.."
 처음 본 그녀의 모습처럼, 그녀는 평범한, 아니 오히려 다정한 유치원 교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원래 내 직업이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이 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약간의 연민과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였다.
 어떻게 저 사람이 한 마을의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릴 수 있겠는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했다.
 원장 선생님과의 심문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언제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과묵한 그가 왜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둘렀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그에게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입을 다물고 있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국정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