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오는 날이 좋았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로 

폐를 가득 채우면 

청량한 기운에 

가슴이 뻥 뚫려 

비오는 날이 좋았다.

언젠가 비오는 날이면 

맑은 날보다 기분이 우울해 진다고들 했지만 

나는 비오는 날이 더 좋았다. 


그저 하늘이 내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서일까, 

내 생각과 걱정과 더러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서 그런걸까.

비만 오면 마당으로 뛰어들어 

비를 흠뻑 맞고 몸을 적셔 

비투성이가 되고 싶었다. 


빗속에서는 내 눈물 숨길 수 있어서일까. 

사실 하늘이 대신 눈물 흘려줌에도 부족해서,

내 마음과 

슬픔과 

울분과 

자괴와 

미움이 

흘러넘쳐서, 


눈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역겨운 마음이 부끄러워서 

빗속으로 숨은 걸지도 모르겠다.

투욱, 투욱, 비가 내리는 소리 속에 잠겨있으면 

드디어 죽고싶지 않았다.  


맑은 날보다, 

새가 지저귀고 

산들바람 불어오는 

아름다운 날보다, 

더 살고싶었다.

사실 우울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행복한 순간에 죽고싶었기에, 


잘모르겠다.

너무 행복해서일 수도.

단지, 구름 사이로 비춰오는 햇살에 나는 더 아파했고, 

들려오는 샛소리 한줄기마다 내 단말마를 느꼈을 뿐이었다. 

다만 산들바람이나마 물냄새로 비소식 들려줄 때면,  

나는 죽고싶지 않았다.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았으면, 

세상을 씻어내리고 

얼룩진 나마저 휩쓸어버렸으면,

고개를 들어 빗방울을 맞았다.


죽고싶지 않았다.


햇살이 눈을 찔렀다. 

드디어 나는,

죽고싶었다. 


나는 죽고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