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적어 올린 선인장에 나오는 커플이랑 같은 인물들




 죽고 싶어 하는 여자



 죽고 싶어, 라고 불현듯 Y가 말했다.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커튼을 내려 닫은 이 어두운 방에서 그녀는 따뜻한 몸으로 내게 안긴 채 그렇게 말했다.


 "죽고 싶어."


 "...왜?"


 "그냥."


 Y는 웃으면서 다시 품으로 안겨들었다. 그녀가 이럴 때마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은 저녁으로 착각할 수 있을만큼 잔뜩 구름이 낀 하루였다.


 이전에도 -그러니까 내게 뿌리를 내리기 전에도- 그녀는 내게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조금 웃으면서, 술잔을 둔 테이블 너머에서 같이 죽지 않겠느냐고 그녀는 조용하게 물었다. 나는 그녀처럼 예쁜 여자도 죽고 싶어할 수 있다는 걸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Y의 말을 듣고서도 잠시 가만히 그녀의 몸을 안고 있었다. 반듯한 검은 단발에선 처음 그녀를 안았을 때처럼 체리샴푸 향이 났다.


 사람의 몸은 이렇게 가만히 안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언제나 점점 따뜻해 진다. 그 온기는 조용하고 너무나 선명해서 이유없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Y는 마치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조용하게 물었다.


 "...사람은 왜 자꾸 죽고 싶어지는 걸까."


 되묻자, 품 속에서 Y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건데 왜 죽고 싶어지는 걸까, 나는 그런 게 언제나 궁금했어."


 신이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서 Y는 한 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버릇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한 번은 물어보고 싶었어. 왜 나 같은 여자도 만들었는지."


 나는 한동안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서 그저 그녀의 하얀 목을 쓸어내렸다. Y를 만나고서 나는 말이 많이 줄어든 편이었다.


 손가락이 목에 닿자 그녀는 간지러운 듯 금세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내 손길을 받아들이며 고개를 내게 기댄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Y는 몸을 돌리고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어둠 속에서도 Y의 까만 눈빛은 놀랄만큼 선명했다.

 말하자, "렌즈 빨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하얀 이불이 우리의 몸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흐린 어둠 속에서 Y는 나를 내려다봤다. 새벽처럼 흐린 햇살이 그녀의 작은 젖가슴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지 서글프게 보여 나는 일어나 여자의 몸을 쓰러트렸다. 쓰러트린 채 입술을 만지자 미소짓고 있었다.


 "...나를 죽여주지 않을래?" Y가 수줍은 듯이 말했다.


 그러더니 장난스럽게 내 한 손을 붙잡고 자신의 목덜미로 옮겨갔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목은 여전히 쉽게 부러트릴 수 있을 것처럼 가냘팠다.

 다만 표정이 많아졌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저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Y의 목을 매만졌다. 내가 물었다.


 "어째서? .......이제 나는 데려가 주지 않는 거야?"


 처음 친해졌을 때, 그녀는 내게 같이 죽지 않겠느냐고 물었으니까.


 "......응. 이제는 안 데려갈 건데."


 그러더니 내 다른 한 손도 자신의 목으로 옮기고는 내 손목 위에 하얀 손을 얹었다.


 "자." 그렇게 말하고는 어딘가 뿌듯하게 웃으면서 두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부러질 것처럼 슬픈 모습이라고,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손을 내리고 허리를 숙이고는 그녀의 뺨에다 입을 맞췄다. 달리 어쩌겠는가? 그러자 어듬 속에서 다시 치켜 뜬 눈이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나는 그저 웃고는 조용히 다시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이윽고 간지러운 듯 꺄하하, 하고 웃으며 고개를 돌린 Y는 잠시 후엔 조금 코를 훌쩍이는 것 같았다.


 살짝 놀라, 그녀의 뺨을 타고 올라가 손 끝으로 만져보니 뜨거워져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 방울이 금세 손가락에 닿았다.


 "......울어?"


 "응! 우는데?"


 Y는 내게 말하며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마치 남동생 같은 몸짓이었다. 그러나 가는 팔이 벗은 등허리에 맞닿아 애달플 정도로 아팠다. 그러더니 Y는 이내 완전히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냐고, 부드럽게 물어보며 검은 단발을 쓸어내리자 Y는 머리를 흔들었다.


 뜨거운 눈물은 자꾸 내 어깨 위로 떨어졌다. 정말이지 놀랄만큼 뜨거운 눈물이었다.


 Y가 내게 말했다. "가끔씩, 나는 너무 죽고 싶어할 때가 있어. 그런 내가 싫은데도, 그럴 수 밖에 없어. 오빠 너는 무슨 말인 지 알아...?"

 

 "...알아."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벗은 등을 한 손으로 가만히 덮었다. 격한 감정으로 달아오른 여자의 몸은 정말이지 뜨거웠다.


 "정말... 왜 죽고 싶어지는 걸까..." Y는 조용하게 되뇌었다. "너는 나를 사랑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만큼 예쁜 여자도 죽고 싶을 수 있다는 걸, 나는 Y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 처음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이었다.


 대답을 들은 Y는, 조금 후에 다시 훌쩍이면서 나를 끌어안았다. 그저 나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그녀의 눈물은 계속해서 내 어깨 위로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표현했던 비유를, 그제야 정말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렇게나 많은 눈물을 내게 떨어트려주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위해 남겨둘 눈물은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나는 그녀가 없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도 없다.


 그러니 그녀가 나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선인장이 된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무척 당연한 일이었다고.


 나는 Y를 끌어안은 채, 혼자 조용히 되짚어 보았던 것이다.



 /끝




 어쩐지 기분이 울적해서

 예쁜 여자 인물 울리고 싶어서 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