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유표(142~208)

자는 경승 또는 경숙. 산양군 고평현 출생.

뛰어난 유학자이자, 형주자사로서도 대단한 인물.

형주에선 황제나 다름 없는 위치에 있었고, 그가 있는 동안 형주는 나름 평화로웠다.

그러나 때는 난세였고, 유표는 난세에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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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편지를 받은 유표는 형주자사로 자가 경승(景升. 경숙景叔이라는 설도 있음.)이고 산양군 고평(지닝시 웨이산현 부근) 사람으로 한경제의 사남 노공왕 유여의 아들 유교의 자손이었다. 주역에 통달해 당대에 그 이름이 널리 퍼져 있었고 친교를 맺는 것을 좋아하여 명사 7인과 벗을 삼았는데 세상에서는 이들을 '강하팔우'라 불렀다. 본래 유학자로 살다 동탁에 의해 형주자사로 임명되었는데, 형주는 일찍이 손견이 전임 형주자사 왕예를 죽여 형주의 수많은 호족들이 각기 난립하고 있었다. 유표는 양양 출신의 호족 괴량(蒯良), 괴월(蒯越), 채모(蔡瑁)를 끌어들여 자기 편으로 삼았고, 그 중 가장 유력한 호족인 채모와는 채모의 누이를 처로 들여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 협력에 힘입어 양양을 새로운 치소로 삼고 유력한 호족 55명을 연회에 초대한 뒤 모조리 살해하여 형주에서는 황제와 다름없었다. 유표는 원소의 편지를 보고는 괴월, 채모에게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손견의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게 했다.


손견의 군사가 도착하자 괴월은 진을 펼치고 앞장서 말을 몰아 나왔다. 손견이 물었다.


"괴이도(異度)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군사를 이끌고 나와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오?"


괴월이 말했다.


"너는 이미 한나라의 신하가 되었거늘 어찌하여 사사로이 옥새를 숨겼느냐? 속히 내놓으면 네가 돌아가도록 해주겠다!"


손견은 크게 성내며 황개에게 나가 싸우도록 했다. 채모가 춤추듯 칼을 휘두르며 나와 맞섰다. 몇 합을 싸웠을 때 황개가 편을 휘둘러 채모를 때렸는데 호심경(고대에 가슴과 등갑옷 안에 넣은 구리 거울) 중앙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채모가 말을 젖혀 달아나자 손견은 기세를 몰아 경계를 넘어 들어갔다. 그때 산 뒤에서 징과 북이 일제히 울리더니 유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다. 손견이 말 위에서 예를 행하고 말했다.


"경승은 무슨 까닭으로 원소의 편지만 믿고 이웃 군을 핍박하는거요?"


유표가 말했다.


"그대가 전국옥새를 감췄다는데 장차 모반하려는 것인가?"


"나한테 그런 물건이 있다면 칼과 화살에 맞아 죽을 것이요, 내 자손들도 천수를 누리는 이가 적을 것이오!"


"나는 그대가 지난날 왕예와 장자를 죽인 것을 기억하네. 그대가 만일 내가 믿도록 하려거든 군의 행장들을 수색해볼 수 있도록 해주게."


손견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감히 나를 업신여긴단 말이냐!"


손견이 싸우려 하자 유표가 즉시 물러났다. 손견이 말을 몰아 뒤를 쫓는데 양쪽 산 뒤에 매복하던 군사들이 일제히 뛰쳐나왔고 뒤에서는 채모, 괴월이 쫓아오니 손견은 포위된 채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정보, 황개, 한당 세 장수가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줘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군사의 태반을 잃은 손견은 겨우 길을 찾아 패잔병을 이끌고 노양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손견은 유표와 원한을 맺게 되었다. *


한편 원소는 군사를 이끌고 하내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군량과 마초가 부족했다. 기주목 한복(韓馥)이 사람을 파견해 양식을 보냈는데 군용으로 쓰라고 도와준 것이었다. 모사 봉기(逢紀)가 원소를 설득했다.


"대장부가 천하를 거침없이 내달려야지 어찌하여 남이 양식을 보내주기를 기다렸다가 먹습니까! 기주는 돈이 많고 양식이 풍부한 지역인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취하지 않으십니까?"


원소가 말했다.


"아직 좋은 계책이 없네."


봉기가 말했다.


"공손찬에게 은밀히 서신을 전해 출병시켜 기주를 취하라 하고 우리도 협공하겠다고 약속하면 공손찬은 반드시 군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한복은 지모가 없는 사람이라 필시 장군께 기주의 일을 통솔해달라고 청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중간에서 일을 실행하면 손바닥에 침을 뱉기만 해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원소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공손찬에게 편지를 발송했다. 공손찬이 받아보니 기주를 함꼐 공격해 땅을 고르게 나누자는 내용이라 매우 기뻐하며 그날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원소는 도리어 사람을 시켜 그 일을 한복에게 은밀히 알렸다.

당황한 한복은 모사 신평(辛評)을 불러 상의했다. 신평이 말했다.


"공손찬이 연과 대(연나라, 대나라의 영토. 유주를 의미)의 군사로 먼 거리를 신속하게 달려오면 그 예리함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움까지 받고 있어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원본초는 지혜와 용맹이 뛰어난 데다 수하에는 명장이 많으니 장군께서 기주의 일을 함께 통치하자고 청하시면 그는 장군을 반드시 후하게 대접할 것이고 공손찬을 근심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한복이 즉시 별가 민순을 보내 원소를 청하려 하자 장사 경무가 간언했다.


"원소는 무리에서 떨어진 곤경에 쳐한 고립무원의 군대라 우리의 호흡에 의지하는 형세로 마치 갓난아기가 허벅지와 손바닥 위에 있는 것과 같아 젖을 먹여 기르지 않으면 즉시 굶어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기주의 일을 그에게 맡기려 하십니까? 이것은 호랑이를 끌어다 양떼에 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한복이 말했다.


"나는 원래 원씨 집안에서 관리를 지냈던 사람이고 재능 또한 본초보다 못하다. 설령 본초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본초와 합하지 않으면 공손찬을 이길 수 없다. 옛사람들은 현자를 가려서 양보한다고 했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시기만 하는가?"


경무가 탄식하며 말했다.


"기주도 끝장났구나!"


이에 순욱(荀彧) 등 관직을 버리고 떠난 자가 30여 명이나 되었다. 경무와 민순만이 성 밖에 숨어서 원소를 기다렸다.

며칠 후 원소가 군사를 이끌고 도착해다 경무와 민순이 칼을 뽑고 달려나가 원소를 찔러 죽이려 했다. 그러나 원소의 장수 안량이 바로 경무를 베었고, 문수는 민순을 붙잡아 원소의 눈 앞에서 목을 베었다.


기주로 돌아온 원소는 한복을 분위장군으로 임명하고, 전풍(田豊), 저수(沮授), 허유(許攸), 봉기 등에게 주의 일들을 나누어 맡겨 한복의 권한을 모두 빼앗았다. 한복은 후회했으나 어쩔 수 없었고 아들마저 도관종사 하내 사람 주한에게 두 다리가 부러지자 두려움에 결국은 진류태수 장막(張邈)에게 의탁하러 갔다가 장막이 배신할까 두려워 측간에서 서도(죽간의 글자를 고칠 때 쓰는 칼)로 자살했다.


한편 공손찬은 원소가 이미 기주를 점거한 것을 알고 사촌 공손월(公孫越)을 원소에게 보내 약속했던 땅을 나누자고 했다. 원소가 말했다.


"내가 상의할 일이 있으니 그대 형님보고 직접 오시라 하시게."


공손월이 작별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50리를 채 못 갔을 때 길옆에서 한 떼의 군마가 갑자기 나타나 "나는 바로 동승상의 가장(무장한 하인)이다!"라고 외치더니 어지럽게 화살을 쏘아 공손월을 죽였다. 수행원이 달아나 돌아와서 공손찬에게 공손월이 이미 죽었다고 보고했다. 공손찬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원소가 나를 꾀어내 군사를 일으켜 한복을 공격하게 하고선 도리어 그 사이에 일을 치렀구나. 게다가 이제는 동탁의 병사로 가장하여 내 아우마저 쏘아 죽였으니 이 원한을 어찌 갚지 않는단 말이냐!"


본부의 군사를 모조리 일으켜 기주로 내달려왔다.


승부는 어떻게 될까?


* 유표와 손견: 실제 역사상 손견이 돌아가는 길을 유표가 가로막고 싸운 것은 연의의 창작으로 보인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나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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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조자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