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역키잡 보고 싶은데 왜 없음?

아니 이 새1기 오래 안 걸린다면서 왜 사흘이나 걸림??
= 흐름상,,, 연참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욕심으로 두 편 쓰다보니,,, 그렇게 됐슴,,, 미않,,,



  

  죽어있다. 

  

  강을 이룬 피의 양은 굳이 시체의 맥을 짚고 판단할 필요까지도 없었건만, 외팔이 용병은 일일이 맥을 짚고서야 그리 판단했다.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소녀는 거리낌 없이 하얀 머리칼과 녹색 눈동자를 드러내며 성큼 옆으로 다가와 그 시체를 빤히 들여다봤다.

  

  모르는 이에겐 역광이 잘못 져서 그렇다고 변명할 수 있고, 아는 이에겐 숨겨봤자 의미가 없다는 외팔이 용병의 판단하에 하게 된 행동이었다. 어린 마족은 그에 단 한 치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무릎을 숙이고 시체에 남은 검상을 살피자 어린 마족도 그를 따라 시체의 자세히 살폈다. 괜히 숙일 필요도 없는 무릎까진 숙이진 않았다.

  

  얼떨결에 눈높이를 맞추게 된 둘은 말없이 눈빛만으로 교차 검증을 이어나갔다.

  

  이자는 누구인가, 우릴 통과시켜 준 경비병이 틀림없다.

  

  어떻게 죽었는가. 정확히 목을 노린 칼에 찔려, 단 한 번에 절명했다.

  

  누가 죽였는가. 저기 불타는 시궁창에 있을 교회의 기사단이.

  

  검증을 마친 용병은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경비병의 눈을 감겨주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리하였다.

  

  그 모습을 본 어린 마족 또한 무표정한 눈으로 그 시체를 바라보았다. 소녀가 보는 세상에서, 그 시체는 편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자듯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어린 마족의 상식으론 그것에 의문을 품으며 다시금 경비병을 바라봤다. 죽었음에도 편안한 모습으로 잠든 것 같은 경비병을.

  

  고민하던 소녀가 결론을 내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눈을 감겨주었기에 그렇다. 흠잡을 데 없는 논리적 귀납.

  

  어린 마족은 납득하며 의문스런 시선을 거두고 생각에 잠긴 용병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제 널브러진 시체에 흥미 따위는 없다. 곧이어 들린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가지."

  

  용병은 어린 마족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시체를 넘었다. 분명 사흘 뒤가 다음 근무일이라 생각했건만, 마음은 여려도 성실한 청년인 모양이었다. 부질없는 짓을.

  

  방금 걸로 넘은 경비병의 시체가 어느덧 다섯이었다.

  

  어린 마족을 앞에 두고 잠시 발을 멈춘 용병은 경비병의 시체를 뒤져, 손에 경비병이 지니고 있던 동전을 쥐여주고 검을 챙겼다. 꽤 쓸만한 검이었다. 이 정도면 저번처럼 한번 휘두른다고 간단히 부서져 버리진 않으리라.

  

  검을 들자 무게가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로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무게가 손목을 지나 팔까지 느껴지자 얼굴이 찌푸려졌다.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에서 깃털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 정상은 아니었으니.

  

  아직도 환각이 자신을 옥죄고 있음을 눈치챈 그는, 자신을 바라보기에 앞서 어린 마족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조심해라."

  

  그 말을 들은 어린 마족은 그가 기대하던 반응 대신, 저 멀리서 타오르고 있는 불을 바라보았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위험은 거기에 있다는 듯이.

  

  그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 불에 타오를 것이 분명한 얼굴의 붕대를 벗겨내며 불타는 시궁창을 보았다. 눈으로는 앞을 바라보며, 머리로는 지금 밟고 있는 피 웅덩이의 감촉을 느꼈다. 

  

  경비병들이 죽은 이유는 단순했다. 저 거대한 시궁창에 불을 지를 정도로 제 신앙에 집착하는 순백의 기사들이, 이틀 전에 경비소를 지나간 어린 마족의 잔향을 기어코 맡고야 말았을 것이다.

  

  마족의 잔향이 풍기는데도 마족의 시체는 없으며, 그에 관한 보고도 듣지 못했다. 특히 독실한 한 명이 이단을 즉각 처벌하기 위해 나선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마족과 내통했다고 생각해서 죽였겠지.

  

  나머지는 방관했겠고. 그는 그 대목에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을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던가.

  

  "미친 광신도들이."

  

  경비병들이 말한 정보는 이단의 말이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을 테니 그 점만은 다행일지도 몰랐다. 최소한 자신들의 정보가 퍼져나가지 않았다는 점만은.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가 내뱉은 뜬금없는 말에 자신을 향한 어린 마족의 의문에 찬 시선 속에서, 용병은 붕대 뒤로 감추고 있던 흉터가 욱신거리는 걸 무시하며 흉터 진 얼굴을 드러냈다.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복수를 해줄 까닭은 없었다. 애초에 상대가 인간인 이상 해주지도 못하는 것에 가깝지 않던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이 기회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솟아오르려는 잡생각을 먹어 치웠다. 오늘을 넘겨버리면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 돼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녀와 한 약속도 끝끝내 이루지 못하게 되리라. 그 생각은 그에게 제대로 된 동기가 되어 그제야 허리춤에 매단 검에서 제대로 된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비소 구석에 굴러다니던 물통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영문을 몰라하는 어린 마족에게도 아무 말 없이 물을 부어버린 그는 자신에게 꽂혀오는 진심 어린 책망의 시선을 무시하고 담담히 말했다.

  

  "시작하지. 먼저 출발해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어린 마족을 앞세우는 편이 나으리라.

  

  졸지에 물벼락을 맞은 물에 젖은 토끼 같은 모습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그를 원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잠시, 어린 마족은 그 말을 따라 시궁창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달음에 달려 나가기까지의 찰나, 소녀는 말없이 눈빛을 보내며 용병을 돌아보았다. 불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탓인지, 빛을 담아 반짝이는 눈은 그의 시선에선 차라리 무언가를 원하는 눈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에 용병이 무언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하얀 소녀는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시궁창도 도시도 아닌, 어딘가를 향해.

  

  외팔이 용병은 그 뒤를 하염없이 쫓아 달려 나갔다.

  

  발을 들어올리고, 땅을 박차는 일련의 과정을 수도없이 반복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익숙한 길이 아닌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에 떠밀린 오물을 태운 불씨가 그들이 달려가는 방향으로부터 날아오기 시작했다.

  

  햇살 아래를 거닐며 본 나무에서는 이전의 싱그러운 향기 대신 매캐한 탄내가 났고, 종소리가 딸랑거리던 옷 가게에는 길다란 핏자국과 불길 소리만이 날 뿐이었다. 옷 가게에서도 마족의 마력을 느껴서, 그래서 죽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녀와 용병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여 뜨거운 바람을 정통으로 맞아가며 앞만을 보고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쓰디쓴 재가 입안으로 이따금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궁창이라 불리기 시작하는 곳들의 공통점, 난잡하게 세워진 건물들로부터 퍼져나간 재였다. 그는 그것을 사양하지 않고 한껏 들이켰다.

  

  재를 들이마실수록 용병의 머리 한켠에서 시궁창에서 쓰레기처럼 박혀있던 나날이 생각났다. 짐승처럼 일어나 상처를 입고 돌아와, 술을 마신 후 시체처럼 잠드는 삶이.

     

  갑작스레 덮쳐온 생각에 빠져들려던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은 용병은 반사적으로 검을 거머쥐고 주변을 둘러봤다.

  

  술을 마실 돈을 벌러 제집처럼 드나들던 의뢰소가 불타고 있었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시체의 면면을 살핀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자신에게 돈과 일자리를 던져주던 물주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이름도 모르며 개인적인 추억도 한 톨 나오지 않는 타인에 불과한 남성이.

  

  그저 그뿐인 누군가가 죽은 일에 불과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이미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시체라면 지긋지긋하게 봐온 참이지 않았나.

 

  당장 지금도 주위에 시체가 곳곳에 버려져 피 흘리고 있었다.

  

  마족 몇 명이 살고 있던 것이라 치기엔 너무나 과한 처사였다. 짙은 마족의 냄새를 맡은 광신도 몇 명이 결국 일을 벌인 것인가.

  

  잘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졸속들. 용병은 그렇게 그냥 지나치려던 널브러진 시체 더미에서, 불현듯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환각일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한 그는 결국 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쓰레기 같은 놈. 어린 마족을 만나지 못하고 쓰레기처럼 살다가, 시궁창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끝까지 술병을 손에서 놓지 못한, 어디까지나, 자신이. 누워 있었다.

  

  '이 꼴이 되어도 술을 놓지 못했나.'

  

  쓰레기 같은 삶이며, 죽는 게 나은 삶이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면서도 끝내 죽음을 택하지 않았던 것은 혐오스러운 자기 자신이 소중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소중할 정도의 가치가 있었더라면, 처음부터 아무도 죽지 않았을 테니까. 그녀를 잃는 일 같은 건 애초부터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니.

  

  그렇다면 어째서 살아왔는가. 그는 자신이 용병을 자칭하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에 반하는 목적으로, 최대한 초라하게 죽길 원해서 시궁창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는 죽은 그녀의 그리운 웃음과, 같은 곳을 향해 검을 휘두르다 하나둘씩 쓰러져간 친우들을 생각했다.

  

  '그저.'

  

  그저 약속해서, 소중했던 이들에게 당신들의 몫까지 살겠노라 약속하고.

  

  그리고 인연을 맺어서, 그들과 한 약속을 지켜 나가기 위해.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의 일생을 살고 술로 넋을 달래며.

  

  그렇게 살았다.

  

  그러고도 살아남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두통을 느끼기 위해 술을 마셔댔다. 근래들어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건만, 용병은 술에 취한듯한 기분을 느꼈다.

  

  문득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용병의 옆에서 그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으로부터 보내진, 그 자신밖에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가 웃고 있었다. 그리운 웃음으로.

  

  얼마전부터 계속해서 나타나던 것과는 달리 대놓고 환각이라 말하는듯한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용병은 그를 부정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인연을 지키지 못했던 무력한 자신을 향해 혐오감을 키워나갈 따름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이 비처럼 내린 재에 파묻혀 하얗게 퇴색될 지경이 되자, 그녀의 모습을 한 환각이 사라지고 헛기침이 목에서 튀어나왔다.

  

  "쿨럭, 쿨럭!"

  

  발을 멈춘 용병의 눈에 저 멀리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녀가 보였다. 사소한 이유로부터 시작된 인연이었다.

  

  그리고 저 불타고 있는 시궁창 속에도, 자신이 쓰레기 같은 삶을 살면서 의도치 않게, 허나 유일하게 맺은 인연이 있었다. 소중한 인연이.

  

  소녀에게 들리도록, 그리고 자신의 귓가에도 울려 퍼질 수 있을 정도로 말하기 위해 용병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먼저 가라! 구해야 할 인간이 있다! 시궁창 안으로 다시 들어온 이상, 건물에 몸을 숨기면 널 쉽게 알아볼 수 없을 거다! 널 알아보는 인간이 있다면 곧장 방향을 돌려 도망쳐라! 알겠나!"

  

  이번만큼은 구하고 말 것이다. 타오르는 건물에서 불덩이가 떨어졌다. 몸을 던져 피한 용병은 충분한 거리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후끈한 열기를 느꼈다.

  

  그 와중, 몸을 돌린 그를 돌아보는 마족이 시야의 한 귀퉁이에서 허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듯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사정없이 떨기까지 해가며. 이 아이도, 그 여인도. 어느쪽이건 구해야 하리라. 

  

  소녀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자신의 과거로부터 굳게 다짐한 용병은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린 마족을 무책임하게 버릴 생각은 없었다. 달려가면서 고함을 치든, 비명을 지르건 소란을 일으키기만 하면 이단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이들이 자신을 덮치리란 확신이 있었다.

  

  정 안되면 자신이 먼저 교회의 기사를 찾아 덮쳐버리면 이목정도는 끌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지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정도의 힘은 있지않나.

  

  어린 마족과 충분히 멀어졌다는 확신이 들 때쯤, 목청껏 소리를 지르려던 그는 자신을 쫓아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검을 빼 들었다.

  

  그러나 검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용병의 옆에서 그녀가 그러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조차 환각이었음을 상기했을 때는 이미 인기척이 충분히 가까워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곧바로 검을 쥐고 사방을 경계했다. 일합一合에 쳐내고, 이합二合에 도망가야 한다.

  

  언제 무엇이 닥쳐올지 알 수조차 없다. 당장 위에서 빛줄기가 내려꽂힐 수도 있었고, 어디선가 빛에 휘감긴 화살이 날아올 수도 있지 않던가. 강제로 무릎을 꿇고 목을 베일지도 모른다는 건 말할 가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위험은 닥쳐오지 않았다. 그것에 의아함을 느끼고 다시금 달려 나갈 준비를 하려던 찰나, 저 멀리서 실낱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감정한, 그러나 어쩐지 절박한 여린 목소리가. 용병은 곧장 뒤를 돌아봤다.

  

  "난, 나는. 나도, 데려가 줘… 버리지 말아주세요…"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며, 힘겹게 한마디씩 간신히 내뱉는 어린 마족에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쪽을 향해 걷건 서둘러야 한단 걸 알면서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열기와 재, 불씨로 가득한 골목 위.

  

  지독한 침묵이 짙게 내려앉았다.

  

  침묵을 깬 건 불타 떨어지는 건물의 잔해였다. 소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불덩이를 보자마자 용병은 재빨리 소녀를 감싸고 앞으로 굴렀다.

  

  그 순간 들려온 비명에 그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리기 두려워졌으나, 침착히 저 멀리서 들려온 비명의 거리를 파악하며 자신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부여잡은 어린 마족의 손을 뗐다. 

  

  소리는 멀었다. 하지만 충분히 가깝기도 했다. 위험하다.

  

  구르는 도중 어린 마족을 감싸느라 살갖이 긁힌 용병은 신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가라고 했을 텐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마족은 애절한 손짓으로 용병의 품에서 떼어지는 손을 몇 번이고 도로 붙잡길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촌극이 계속해서 이어지려던 찰나, 무언가 잡음이 들려오는 것을 눈치챈 용병은 소리의 방향을 향해 귀 기울였다. 어린 마족이 숨소리에 가까운 소리로 쌕쌕거리며 간신히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버리지 말아줘, 버리지 마. 같이 있어 줘…"

  

  용병은 얼굴을 찌푸렸다.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했기에.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그 뒤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백옥같이 하얀 얼굴, 촉촉이 젖은 눈가에서 물방울 하나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이 눈물이 연기 따위가 아님을.

  

  마족은 연기로는 눈물 흘리지 못한다. 이 소녀는, 진심으로 자신이 버려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용병은 헛기침했다. 들이마신 재와 연기 때문에 시야 한쪽이 희뿌예지기 시작했다. 열기에 노출된 몸의 말단엔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지 않던가.

  

  냉철하게 몸에 아무런 문제도 없음을 파악한 그는 어린 마족을 껴안았다.

  

  "버리지 않는다. 날 믿어라. 지금 이곳은 오래 있을수록 위험하다. 교회에 발각되기 전에 먼저 떠나라. 내가 널 찾을 테니."

  

  "싫어. 같이, 같이 있어. 당신이랑 떨어지면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같이… 있어 줘…"

  

  겁에 질린 소녀의 머릿속에선 용병과 보낸 이틀간의 추억이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납치를 당할 뻔한 일, 실수로 광장에서 마법이 풀려 마족인걸 들킬 뻔했던 일. 잠시 떨어져 있었다가 길을 잃었던 일, 하나같이 추억이라 부르기엔 험난한 기억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근처에 있어 주는 그 사람이 구해주었다. 그렇기에 추억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을 배신한 부모, 팔아넘기려 한 동족. 죽이거나 납치하거나 음험한 속내밖에 드러내지 않는 인간들. 수많은 장애물과 악몽들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낼 때, 그럴 때만이 마음이 편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사로잡은 제 것이 아닌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알고 싶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마법에 관한 지식도 희미해졌다.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태어났으나, 감정이란걸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버려지기 싫었다. 그와 한시라도 떨어지는 것은 애당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버려지는 상상만이 어린 마족의 한계였다. 그 상상이 끝없이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버리지 마. 제발. 같이 가… 뭐든 할 테니까 버리지 말아주세요…"

  

  용병으로선 그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 애초에 인연을 지키기 위해 이 불지옥의 깊은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았던가. 이 어린 것을 두고 가는 선택지 따윈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든 안전하게 빠져나가길 바라며 이목을 끌 일이라면 뭐든 생각해 두기도 했다. 아예 먼저 교회의 인물을 덮치거나, 어린 마족에게 부탁해서 자신이 마족인 양 행세하거나,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말하는 것 까지.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었다. 용병은 무슨 일이 있지 않는 한, 어쩌면 그런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옷깃을 부여잡은 소녀가 결코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 같이 가지. 내게서 떨어지지 마라. 떨어지는… 도망쳐."

  

  그리고 그 말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체념과 함께 소녀를 품에 안고서 일어서기 직전, 불빛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본 용병은 곧장 소녀의 뒷덜미를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읊조렸다.

  

  '씨발.' 

  

  저게, 왜 여기 있지.

  

  그러고도 소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울먹거리며 자신을 향해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오자,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빛을 향해 검을 겨눈 용병은 윽박질렀다.

  

  "당장 도망쳐! 저건 괴물이다. 시간을 끌 테니 마법이든 뭐든 써서 도망쳐! 당장!"

  

  그 고성이 자신만을 향한 것이 아님을 눈치챈 소녀의 눈에도 그 화려한 빛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의 세계에서도 조금도 자신을 감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빛은, 사방이 불로 가득한 불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고고하게 빛났다. 마치 저 높이 떠 있는 달과 태양같이.

  

  그런 빛이 불빛을 역으로 먹어 치우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던 거리를 샛노란 빛의 요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저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소녀의 눈에는 차마 보이지 않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빛을 본 소녀는, 본능적으로 용병과 떨어져 있을 공포에 질려있을 때가 아님을 깨닫곤 몸을 떨며 간신히 말했다.

  

  "나, 나는. 뭘 하면 돼? 당신이랑 떨어지긴 싫어. 도망치라는 말만 아니면 되니까. 내가 할걸 말해줘."

  

  그 말에 용병은 검을 겨누길 포기하고 떨고 있는 소녀의 몸을 안아주었다. 서서히 떨림이 잦아들자 조용히 속삭였다.

  

  "…그럼 그 술집에 가서 그때 본 여인을 찾아라. 찾아서 거기에 있어. 내가 거기로 갈 테니. 그러니, 지금은 일단 가 있어라. 떨어지는 게 아니다. 다시 만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거다. 널, 믿겠다."

  

  터벅, 터벅―

  

  빛이 걸어오는 것이 이젠 그 자리에 있는 누군들 소리로도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타오르는 불마저 사그라트리는 빛이 다가온다.

  

  그 빛을 앞에 두고도 어린 마족은 넋이 나간 듯 서있었다. 방금 자신이 들었던 말을 기억 깊숙한 곳에 새기려는 듯. 용병은 다급하게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알아들었으면 달려!"

  

  마지막에 이르러 고함지름과 동시에 빛무리가 달려 들어왔다. 쉴 시간 따위를 줄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용병은 소녀를 밀치고 곧장 찔러 들어오는 빛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오자, 소녀는 울려 퍼지는 빛을 뒤로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단 살아남기 위해서만이 아닌, 용병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음화는,,, 이미 써둚,,,
퇴고 몇 번 하고 오늘 안에 올리겟슮,,,
시리즈 기능 잘 작동하는거 확인,,, 적극 이용 하겟슮,,,

오탈자 지적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