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역키잡 보고 싶은데 왜 없음?

연,,, 참,,,




  아직 불이 번지지 않은 술집에 터무니없이 빠른, 마법과 같은 속도로 다가간 새하얀 소녀는 거리낌 없이 노크 하지 않고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어린 마족은 손님이 왔다는 티를 내지 않고서 곧장 술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끼이익―

    

  낡은 문이 밀리는 소리와 함께 조심히, 허나 망설임 없이 발을 옮기는 어린 마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소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린 마족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술집 밖의 온 사방이 불에 타고 있는, 낮 같이 밝은 밤. 건물 안까지 파고든 후끈한 열기와 밝은 불빛 속에서 흑발의 여인과 하얀 머리칼의 어린 마족은 곧 거리를 두고 서로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카운터에 앉아 궐련을 피우던 여인은 마음을 먹은 듯 곧잘 들고 있던 술병을 내려두고, 자연스럽게 카운터에 비벼 궐련의 불을 끄며 한 손을 카운터 아래에 숨긴 뒤 일어섰다.

  

  상체를 숙이며 일어선 여인은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는 한편 그 뒤로는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저 꼬마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래. 그의 옆에 있던 여자애.

  

  "누가 올 줄은 알고 있었지. 근데 생각하던 손님은 아닐 줄은 몰랐는데. 너, 마족이었구나? 그 사람, 어딨어."

  

  평소의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얼어붙기 일보 직전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애초에 말할 생각도 없었던 듯, 어린 마족은 그 목소리마저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중얼거림을 끝없이 중얼거리며 여인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날 믿고, 날 보내줬어. 그러니까, 믿음에 답해줘야 해. 그 사람의 믿음을 지켜줘야 해."

  

  어쩐지 웃는 것처럼 들리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동문서답을 마친 마족은 느긋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조금씩 여인에게 다가갔다. 끝을 모르고 어두워져가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에서 흉흉한 기색을 드러내며.

  

  생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눈, 어느새 앙증맞은 손 위로 무의식적으로 피워낸 검은 연기가 모여들어 구체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어둠이, 새하얀 소녀의 손에 걸쳐있었다.

  

  그런 어린 마족의 일련의 동작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음을, 그리고 모여들기 시작한 검은 연기를 눈치챈 여인은 카운터 밑에 박아둔 단검 자루를 손에 쥐었다.

  

  죽어버린 눈과 제 의도를 숨기려는 기색이 한치도 엿보이지 않는 살해의 의지. 눈앞에 있는 것은 마족이 맞았다. 그렇다면 거리낄 것도 없지 않던가.

  

  그러나 여전히 여인의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단검을 든 손을 카운터 밑으로 숨기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것으로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야, 마족 새끼야. 한 번만 묻는다. 그 사람, 어디 있어."

  

  손발이 떨리며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만은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글쎄. 당신한텐 대답해 주기 싫어."

  

  그 대답을 듣자마자 여인은 왼손에 쥐고 있던 단검 한 자루를 위로 던져 오른손으로 낚아챈 뒤, 어린 마족을 향해 던졌다.

  

  옛적부터 마족에게 원한이 있던 여인은 이 대치를 오래 유지할 생각이 없었다. 눈앞의 어린 마족도 마찬가지인지는 몰랐지만, 그럴것이라 생각했다.

  

  본래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주인을 지키기 위해 던져지거나 휘둘러지던 단검은, 그에 걸맞도록 낮처럼 환히 빛나는 밤에 다시금 던져졌다.

  

  그러나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 단검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소녀가 자그마한 손으로 피워낸, 소녀의 손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검은 구체 속으로 한 순간에 빨려 들어갔다.

  

  "…허."

  

  그것으로 끝. 소리도, 무엇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미숙함과 결함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마법으로 깔끔히 단검을 지워버린 어린 마족은 당황한 여인에게 이해한다는 말투로 말했다.

  

  "당신도 날 보고 그렇게 하는구나. 내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을 땐 조용했으면서."

  

  그 말을 마치곤, 처음 봤을 때부터 무표정했던 표정을 아예 수면 아래로 끌어내린. 정녕 감정이 죽어버린 듯한 어린 마족의 빛을 잃은 눈동자에서 진의를 엿본 여인은 그 태도와 소녀가 한 말에 일련의 끔찍한 가정을 생각해 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그의 소식을 들은 지 어언 이틀이 지난 것도. 사실이었다. 옛날 마족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한 그날처럼, 마족을 앞두고 감정이 격해진 여인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논리적 비약이 스쳐 지나갔다.

  

  격해진 감정 탓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순 없었다. 그렇지만 이틀, 신원불명의 누군가가 죽기에는 충분한 시간. 몇초, 자신에게 소중했던 누군가가 죽기에도 충분한 시간.

  

  그녀는 어떻게든 웃고 있던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거칠게 말했다.

  

  "이 망할 마족 새끼가."

  

  마족이 죽었단 소식이 귓가에 들려왔을 때부터, 그가 소식을 물어왔을 때부터 언젠간 이런 날이 오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정화를 좋아하는 광신도들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는 이미 몇 번이고 겪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알고 있는 그라면, 술에 영혼을 판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던 그라면 한 번쯤은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예상했다. 자신이 아닌 단순히 술이 고파서 찾아오는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쯤, 자신을 구해준 그 사람에게 선물이나마 건네고 싶었다. 그 바람을, 눈앞의 마족이 망쳐버렸다. 징그러운 것들, 정녕 내 인생 하나론 부족했나?

  

  그녀는 이를 아득바득 갈며 카운터 밑의 단검을 한 자루씩 양손에 쥐고서, 온 힘을 담아 던졌다.

  

  목과 심장. 종족을 불문하고 살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장소를 향해.

  

  그러나 동시에 일순간, 줄곧 소녀의 자그마한 양손에 들려있던 검은색의 구체가.

  

  팍하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여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그리고, 곧 세상은 어둠이 되었다.

  

  찰나보다도 짧은 시간, 술집 안이 전부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던 불길의 색도, 간간이 들려오던 비명과 불길의 소리도 그 존재를 잊고 한 톨의 어둠이 되었다.

  

  소리를 잊은 어둠에 잠긴 술집, 고요하고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신에 찬, 나긋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가. 희미한 웃음기에 섞여.

  

  "그 사람도, 이걸 원할 거야."

  

  말의 주인인 새하얀 소녀만이 오직 주변에 널리 퍼진 그 어둠 속에서 색을 간직하고 있었다. 소녀의 녹색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소녀의 손이 아래를 향해 살짝 움직이자, 목과 심장을 향해 날아가던 단검이 그 빛과 움직임에 주춤하며 힘을 잃고 떨어져 나갔다.

  

  말 그대로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광경. 그것을 본 순간 결코 자신의 의도가 성공할 수 없단 것을 알면서도 여인은 포기하기에 앞서 다시금 단검을 빼 들었다.

  

  "뒤져! 이 망할 새끼야!"

    

  자신조차도 저 어둠에 파묻힐 것만 같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 같았다. 어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비틀며 발악한 여인은 힘겹게 단검을 던졌다.

  

  발악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여인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런 여인을 바라보며 묵묵히, 방금까지 여인이 짓고 있던 웃음을 따라 하기라도 하려는 듯 어설픈 웃음을 지은 어린 마족은 기도하듯 눈을 감고 두 손을 포갰다.

  

  콰과과―!

  

  툭.

  

  그 간단한 동작과 함께, 던져진 단검은 갑작스레 바닥에서 솟아난 검은색의 장벽에 허무하게 가로막혔다. 

  

  그리고, 연이어. 단검을 가로막은 검은색의 장벽이 떨어지려던 단검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콰득, 콰득―

  

  그 후, 검은색의 장벽이 창의 형태를 한 무언가를 뱉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검은 창이 둥둥 뜬 상태로, 이제는 이질적으로 보일 지경인 새하얀 소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소녀가 다시 한번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빛나는 녹색 눈동자를 다시금 드러낸 순간.

  

  소녀의 곁에 있던 검은 창은 별 다른 동작도 없이 여인의 가슴께를 뚫고 벽 너머에 처박혔다.

  

  푸욱―!

  

  피를 왈칵 쏟은 그녀는 경악하며 증오하는 눈빛으로 어린 마족을 쏘아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느샌가 가슴팍에 뚫린 구멍에서 붉은 액체가 왈칵왈칵 쏟아졌다. 그것만을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쓰러지려는 몸을 카운터의 탁자를 붙잡아 일으켜 세운다. 급속도로 차갑게 식어가는 몸이었지만, 그런 상황이어서 였을까. 머릿속은 끝없이 뜨거워져갔다..


  "너, 너. 마족 새끼가! 네가 그 사람을! 이렇게!"


  몸이 제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졌다. 버둥대는 손이 무언가를 툭, 건드렸다. 더 이상 말할 힘이 없던 그녀는 힘겹게 시선을 돌려 자신이 무엇을 건드렸는지를 확인했다.


  제대로 말을 마치지 못한 여인이 손에 들고 있던, 어린 마족이 들어오기 전부터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탁자 위에 올려진 술병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녀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에게 직접 전해주려 했던 연정이 바닥에 떨어져 새하얀 소녀를 향해 하염없이 굴러갔다. 차라리 깨져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듯 술병은 계속해서 굴러갔다. 그러다 마침내, 술병이 소녀의 발치에 닿았다. 그 광경을 본 머리가 하염없이 뜨거워졌다.

  

  폭포처럼 피가 쏟아지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말을 하지 않고서는 허무하게 죽어가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죽였구나! 네가! 술을 끊는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는데, 네가…"

 

  가슴에 구멍이 난 상태에서도 그녀는 폐에 남은 공기를 미련 없이 전부 써가면서까지 어린 마족을 힐난했다. 그 목소리는 종극에 이르러선 가히 말하는 것이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소녀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바닥을 구른 술병을 들고 차분히 눈을 감았다.

   

  어둠으로 가득 찬 술집에서. 첫눈이 내린 겨울의 들판처럼 생기 있고 새하얀 머리카락을 빛내며, 물기를 머금고 청량하게 반짝이는 녹색 에메랄드빛 두 눈을 조용히 살짝 감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신비한 분위기의 인형 같은 소녀는.

  

  정말로 끔찍하게도, 죽어가는 여인의 눈에도 몽환적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을 구해준, 그때는 마족인 줄 몰랐던 새하얀 소녀와 같이 있던 그를 떠올렸다. 

  

  그때 끝까지 캐물었으면, 추궁에 추궁을 이어나갔더라면 뭐라도 달라졌을까. 그랬더라면 지금 자신의 최후가 혼자가 아니기라도 했을까.

  

  오늘, 아니. 어쩌면 이틀 전. 자신이 그를 죽인 건 아닐까.

  

  후회가 후회를 먹으며 후회를 낳았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

  

  "미, 안해. 당신한테 직접, 주고 싶었는데."

  

  여인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애처롭게 손을 뻗으며,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죽어서라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초라한 죽음 앞에서 어린 마족이 입을 열었다.

  

  "응. 나, 해냈어."

  

  심장이 멎은 그녀를 두고 절로 굴러온 술병을 손에 쥔 어린 마족은, 약속대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을 용병을 생각했다.

   

  '이걸 원한 거지?'

  

  술집을 찾아가란 말, 그의 무릎을 꿇게 만들던 그 여인을 찾아가란 말로부터 용병의 뜻을 짐작한 소녀는 그의 뜻을 이뤄주었음에 기뻐하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을 보자마자 죽이려던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흰 머리카락을 본 대부분의 인간은 그리했으니까. 마법을 쓸지언정, 사지를 묶어두는 선에서 그치려 했다.

  

  하지만 여인의 입에서 그 사람이란 말이 나온 순간, 그리고 그 사람이 곁에 있어 준 용병이란걸 눈치챈 순간. 그러니까, 사실상 처음부터.

  

  소녀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뚜렷한 적의를 가지고 여인을 바라봤다.

  

  처음부터 그랬다. 살갑게 그 사람과 얘기하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다만 위기를 앞둔 직감이라 생각하며 술집의 구조를 살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어린 마족은 얼굴에서 웃음을 지운 다음, 자신이 퍼트린 검은 세계를 도로 구체의 형태로 만든 뒤 그대로 몸속으로 빨아들였다.

  

  술집으로 오는 길, 그리고 그와 지냈던 이틀간 검은 연기는 충분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를 위해 검은 연기를 사용한 지금, 어린 마족에겐 일말의 기쁨마저 느껴졌다. 자각할 일 없는 기쁨이.

  

  검은 연기를 빨아들인 그 상태 그대로, 기다리고 있으라던 그의 말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던 소녀는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여인의 시신을 낑낑대며 옮기기 시작했다.

  

  타각거리며, 기분 좋은 소음을 내는 나무 바닥 위로 기다란 주홍색 글씨가 적히기 시작했다. 어느덧 저 멀리서 열기가 느껴지고 타닥거리는 불소리가 들리자, 글씨의 획도 그곳에서 끊겼다.

  

  힘겹게 그녀의 시체를 옮긴 어린 마족은 몇 시간 전 그가 그러했듯 원망하는 눈을 부릅뜬 채 죽은 그녀의 시신의 눈을 감겨주었다.

  

  과연, 자세히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위의 건물이 온통 불에 휩싸인 가운데, 평온히 눈을 감은 여인의 모습이 소녀에겐 조금이나마 썩 편해 보였다.

  

  역시 그 사람의 행동은 틀리지 않아. 눈을 감은 그녀의 시신 옆에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은 소녀는 조용히, 자신에게 닥쳐오는 열기와 재, 그리고 연기에는 개의치 않아 하며 그저 불에 타고 있는 시궁창을 바라보며 가만히 용병을 기다렸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로부터 한 걸음, 더도 말고 덜도 아닌 딱 한 발짝의 거리를 둔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어느 한쪽이나마 살아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용병은 절대, 다행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피를 뚝뚝 흘려대는 지친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 한 발짝씩 발악하듯 자신을 옮겼다.

  

  결국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그 앞까지 꾸역꾸역 도달한 용병은 어린 마족이 말없이 의문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넋을 잃고 여인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지도, 감정이 격해지지도 않았다. 왜,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싸늘하게 식은 그녀를 앞에 두고, 그림자를 쫓듯 두 눈을 뜬 채 환각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웃고 있는 환각이었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그녀가 누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해진 오른팔이 차마 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검을 놓치고 말았다.

  

  검이 바닥을 뒹굴었다.

  

  '죽었나.'

  

  용병은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나는, 구하지 못했다. 그는 새하얀 소녀와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를 나란히 두 눈에 담았다.

  

  어쩌면 어린 마족이 여인을 죽였을까.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결국 자신이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번에도 구하지 못했다는 점뿐인데.

  

  '구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마족은 자신을 보곤 제가 뭘 잘못했는지를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한 태도로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마지막 남은 인연이라도 지키려면, 응당 그리해야 할 것이다. 그러는 편이 낫겠지.

  

  여인이 아직 눈앞에 있었다. 주저앉으려던 용병은 기어코 몸을 넘어트리지 않고 이를 갈며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려 어린 마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눈을 감겨주었나."

  

  "응."

  

  용병은 그 짧은 말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새에 충혈된 눈을 소녀에게로 향했다.

  

  핏발 선 눈이 어린 마족을 꿰뚫어버리려는 듯 바라보았다. 어린 마족은 순간 움찔했으나 그뿐, 그는 더 이상의 행동도 말도 없었다. 떨어진 검을 다시 허리춤에 매단 용병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너를 믿겠다."

  

  어둡다. 아무리 불을 지펴봐도 여전히 밤이 어두웠다. 내게 남은 것은 열기와 잿빛 먼지뿐이었다. 아직 밤은 너무나 어둡다.

  

  용병의 허심탄회한 목소리에 어린 마족은 피 흘리는 그를 향해 손을 내뻗으려다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던 불소리가 지금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에게 전해줘야 할 것이 있었다. 소녀는 어색한 정적 속에서 그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조금은 자랑스레 내밀었다.

  

  "이거, 저 인간이 당신에게 주고 싶어 했어."

  

  익숙한 모양의 술병, 용병은 그것이 그녀가 남긴 유품이란 것을 알고 끝에 끝에서 이르러 소리 없이 눈물 흘렸다.

  

  흐르는 눈물을 보곤 조금 당황한 소녀는 뭔가 묻기라도 하기 위해 입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 목소리는 용병의 느릿한 움직임에 가로막혔다.

  

  그는 시궁창에서 사는 동안 일생을 맡겨놓은 듯이 드나들던 술집에서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기억하고 있는 탈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어린 마족은 그를 쫓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그 무거운 발걸음을 무릎 꿇은 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이어 자신의 눈동자처럼 색과 빛을 잃은 눈을 마주쳤다.

  

  "가지."

  

  그의 지친 입이 열렸다.

  

  그리고 소녀는 기쁜 얼굴로 자신에게 건네진 피 흘리는 손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기라도 하는 듯 소중히 붙잡아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고 자신과 보폭을 맞추려는 어린 마족이 용병의 시선에 보였다. 새하얀 머리칼을 늘어트리며 걷는 소녀를 보며 생각했다.

  

  나가야 한다. 탈출해야 했다. 교회의 기사는 당장 떼어놨을 뿐이지 언제 다시금 덮쳐올지 몰랐다. 지켜야 한다. 내게 남은 하나를 잃었으니,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만큼은 기필코.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병은 처음부터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피 흘리는 자신의 몸과 잔뜩 헤진 리본이 몇 개 달린 옷 아래로 상처가 몇 개씩이나 난 어린 마족을 본 용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단, 나가자. 나가서 쉬자.

  

  "탈출한다. 우리는, 탈출한다."

  

  둘은 그 후로 하염없이 걸었다. 몇 번이고 쓰러지려는 용병의 몸을 어린 마족의 몇 마디가 일으켜 세웠다.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기뻐. 이건, 진심이야."

  

  용병은 어린 마족과 저 멀리 누워있을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불타고 있는 시궁창을 번갈아 보더니, 검을 쥐고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린 마족은 진심을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염려하던 교회의 기사와 마주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없이 시궁창을 벗어난 둘은 인기척이 없는 곳을 쫓아 하염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를 제외한 모든 걸 잃은 외팔 용병과 어린 마족은,

  

  수많은 피를 밟고서 탈출에 성공했다.




사실,,, 원래는 6, 7, 8화 내용이 6화 하나에 전부 고봉밥으로 담겨있었슮,,,

하지만 이제 그런 6화는 없다,,,



오탈자 지적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