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고학 채널

대부분의 2차대전 매니아라고 자칭하는 자들에게

체르냐홉스키를 아느냐? 라고 물으면

그 듣보잡은 누구냐?자신들의 무지를 들어낸다

허나 그의 한국에서의 무명은 

그의 요절에서 기이한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39살에 대장으로 진급하고 

동부전선 최후의 대공세 비스와-오데르 대공세에서

주공 제3 벨라루스 전선군을 지휘한것은 

그가 주코프나 바실렙스키 원수 못지않은 

용병가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어린시절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철도노동자였으며 티푸스로

체르냐홉스키가 9살때 죽었다.


체르냐홉스키는 1928년에 임관하여

대숙청 시기때 고속승진 1941년엔 대령이 되었다.

42년 6월엔 보로네시의 18 기갑군단의 

사령관으로 임명됬으며

동년 7월엔 상급제대 60군의 사령관에 서임되었다.


43년 8월 쿠르스크 에서 독일이 대공세를 펼치자

보로네시를 방어하였으며 후에 이어진 반격전에서

가장 먼저 쿠르스크에 입성하였다.

이 공으로 그는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44년 바그라티온 작전에선 민스크를

신속하게 점령하고 기동로를 확보

중부집단군에 괴멸적 타격을 입혔다.

이시기 그는 폴란드 저항군 8000명을 

NVKD와 함께 무장해제후 시베리아로 압송하기도 했다.


1945년 소련이 배를린 점령을 목표로

비스와 오데르 대공세를 게시하자

그는 북부집단군 20만명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포위 

하였으나 북부집단군의 저항은 완강하였고

체르나흡스키는 정찰을 위해 전산으로 같고

이는 치명적 실수가 됬다.

그는 그 정찰도중

국방군의 포격 유탄에 의해 전사하였다.

젊은 천재 대장의 허망한 죽음 이었다.


그가 전사한곳엔 소련의 기념비가 있엇으나

2015년에 폴란드가 철거했다.

체르냐홉스키가 폴란드 국내 저항군 8000명을

시베리아로 압송한 만큼 당연한 대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