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고학 채널

독일은 칸트 이래로 철학의 중심지였다.

칸트, 슈티르너, 니체, 헤겔등 여러 19세기의 철학자들은

독일의 지식인 계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히틀러가 이들 철학자들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한것 같지는 않다.

허나 그는 단편적인 철학자들의 발언들을 활용해

그의 권력 선동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칸트의 윤리학(다음 기사에 자세히 다루겠다)은

개인의 사회에 대한 희생을 주장한 히틀러가

내세울 수 있는 강력한 근거였다.

칸트의 반유대적 성향또한 홀로코스트를

대학 캠퍼스내로 적용할때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하이데거의 협조또한 대학 확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슈티르너의 에고이즘(이기주의)는 굉장히 왜곡되어

"독일민족"의 이기주의의 근거가 되었으며

침략전쟁과 악탈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됐다.

참고로 슈티르너는 아나키스트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기독교와 유대교탄압의 근거가 되었다.


또한 히틀러는 자기야말로 니체가 말한 초인이라 주장했다.

허나 니쳬의 초인은 기존 관습을 뛰어넘는 자이지만

히틀러는 민주주의와 지성을 뛰어넘는게 아니라

독재와 전체주의 그리고 무지의 시대로 희귀했다.


히틀러는 이런 철학을 활용하여 

대학 캠퍼스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자신을 철학적 지도자로 치장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다시한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