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는 원래 대학로의 대표지역인 서울 혜화에 위치해있었다. 서울에 집중된 대학교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고자 좋은 명목으로 서울대뿐만아니라 당시 인서울의 많은 종합대학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했다.

이때 혈세로  운영되는 서울대부터 본보기를 보여야했기에 당시 서울대 동문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의 새로운 위치를 물색하게된다. 


 사실 서울대의 위치는 부지선정은 현재 강남코엑스쪽, 종로같은 강북, 영등포 등지에도 후보지가 나왔는데 어쩌다가 지금의 관악산에 위치한걸까?

  

다름아닌 박정희 전대통령이 직접 부지를 지목했다고한다.

그 배경에는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을까?

당시 인서울의 종합대학들은 정부와 교육부로부터 지방으로  이전하라고 압박하라고했고, 대학들은 일방적으로 부지를 팔아넘기고 서울의 알짜배기지역을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을것이다. 따라서 당시 종학대학들은 캠퍼스 이전이 아닌 분교를 두거나 이원화 캠퍼스와 같은형태로 연세대는 원주, 고려대는 조치원, 동국대는 경주, 성균과대는 수원, 한양대는 안산지역에 새로운 캠퍼스를 짓는식으로 편법을 썼다. 

 하지만 당시 이대나 숙대와 같은 4년제 종합대학을 비롯하여 여대들은 왜 지방에 캠퍼스가 없을까?


  이것은 당시 군사정권이 대학생을 필두로 학생운동이 활발해지자 학생들을 주축으로 시위를 저조시키고자 지방분산이라는 보기좋은명목으로 대학들에게 압박을 가한것이다.  이에 대조적으로 여학생들만 있는 여대의 경우 학생운동이 덜 활발하기 때문에 굳이 여대에는 그러한 압박을 가히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박정희 전대통렁)는 의도적으로 국립서울대의 위치를 지금도 서울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딴지역에 반강제적으로 부지를 지목해버린 것으로 볼수있다.


요약

1.  대학생, 지식인들 주축으로한 학생운동을 막기 위해 박정희가 의도적으로 관악산을 선정.

2. 같은 이유로 인서울의 대학들에 한에 최초로 분교/이원화 캠퍼스가 존재.(지방의 이원화 캠퍼스는 따로 설치된게 아니라 경쟁력떨어지는 부실 대학교가 국립대나 경쟁력을 갖춘일부 대학교로부터 매각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임)

3. 여대는 분캠이나 이원화 캠퍼스가 없는이유는 학생운동이 덜 활발해서 그렇다.


ㅡ 끝ㅡ

사실상 피셜이아니라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박정희의 뻔한 속셈이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