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국회의원 지역구 제도는 '소선거구제'로, 선거구 규모를 작게 잡고 후보 중 1명을 당선자로 하는 제도임. 근데 300석 중 253석이라는 기형적으로 많은 비중을 자랑하는 의석 수에도 불구하고 비수도권으로 가면 홍철화양인, 태횡영평정, 보옥영괴, 밀의함창, 고보장강, 상군의청 같은 이상하고 아름다운 선거구들이 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소선거구제는 '고을' 단위를 획정 기준으로 하고 있음. 제1공화국 시절까지만 해도 독자 선거구를 갖고 있는 군이 많았고, 합쳐져봐야 대체로 2개 군만을 합친 선거구가 많았음. 그래서 이때 기준으로만 봐도 소선거구제를 해도, 보성-벌교 같이 어거지로 군 자체가 하나가 된 곳 말고는 지역대표성 문제는 없었음. 그러다가 90년대 넘어 오면 촌락 인구 감소가 슬슬 사회적 문제로 다가올 정도가 되면서 여러 군끼리 합쳐진 선거구가 대세가 되지.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서로 인접한 군이라도 해도 분명히 다른 지역이라고 여긴다는 점이지. 보성 같은 경우는 고흥의 환상적인 지형적 특성 덕에 계속 고흥이랑 묶이고 있는데, 고흥이 지역주의가 워낙 쩔어주는 동네고(특히 문중 세력 같은 게 좀 강한 편) 고흥군이 보성군보다 인구가 많다 보니 고흥이랑 묶인 다음부턴 계속 고흥 출신만 민주당 공천 받고 고흥 출신만 당선되었음. 물론 보성도 지역주의가 만만찮긴 한데 보성군에 보성읍만 있는 것도 아니고, 보성 vs. 벌교 대립 구도를 군수 선거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얘네끼리 단합이 퍽이나 되겠다(...). 물론 벌교라고 보성 무조건 싫어하고 고흥 편 먹는 것도 아닌 게, 20대 총선 결과 보면 고흥군에서는 고흥읍이랑 멀리 떨어진 동강면 같은 데서도 신문식을 밀어줬는데 군계만 넘어가면 벌교읍마저도 보성군 타지역과 같이 황주홍이 우세였다. 벌교가 아무리 고흥이랑 가까이 붙어있어도 고흥 편은 아닌 게 입증되는 순간. 요약하면 같은 행정구역으로 계속 살아온지라 약간의 유대감은 있지만 완전히 동질화된 지역으로 보긴 어려운 보성-벌교 연합이 있고 그 둘을 압살하는 고흥이 붙어있는 격임. 고흥이랑 붙기 전에 잠시 화순이랑 선거구가 붙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보성 출신인 박주선이 당선되었지만 고흥이랑 붙자마자... 그 여파로 박주선은 탈보성을 하고 광주 동구를 나와바리로 삼아서 현재까지 계속 연임하고 계심 ㅋㅋㅋㅋㅋ.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들을 묶어놓고 데스매치를 시키느라 지역 대표성이 크게 약화되는 것이 현재의 지리적 상황에 따른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임.

 

물론 보성도 전남이고 고흥도 전남이니 같은 지역이라고 주장할 여지도 있고, 분명 타지에서 시군은 달라도 전남 지역 출신인 사람을 만나면 나도 반갑긴 함. 근데 이건 '지역'이 스케일이 다양해서 생기는 일임. '전남'이라는 스케일에서는 보성이나 고흥이나 같은 전남이니 같은 지역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단순히 보성군과 고흥군 둘을 붙여놓은 것을 하나의 구역으로 매긴다면 '전남'이라는 공통분모가 약해짐. '장흥도 전남인데 왜 굳이 고흥과만 연결지어져야 하지' 같은 반론도 가능함. 더 설명하자면, 보성을 광주와 연결지으려 보면 보성은 광주권에 속한 도시이고 보성 사람들이 광주에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며 광주의 경관이 익숙하므로 연결할 때의 개연성이 크지만, 보성을 화순과 연결지으려고 보니 보성과 화순 사이에는 그렇게 큰 정도의 교류가 발생하지 않고 보성과 광주 사이의 교류, 화순과 광주 사이의 교류가 더 중요시되므로 보성과 화순은 일종의 방계(?)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음. 보성과 고흥 또한 방계 관계이기 때문에, 직계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보성과 광주 혹은 보성과 순천의 관계에 비하면 보성 입장에서 가지는 유대감이 클 수가 없지.

 

따라서, 촌락 인구가 극도로 감소한 현 상황에서, 지역구 의석을 줄이면서도 생활권과 지역대표성을 잘 반영하고 촌락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선거구를 만들려면 지역구 제도의 도시권별 중대선거구화가 필요함. 중대선거구는 선거구 규모를 크게 잡고 여러 명의 후보를 당선시키는 제도로, 1인만 당선되던 현행 소선거구제에 비하면 표의 대표성이 증가하고, 따라서 소수정당이나 소규모 지역 출신자도 당선 가능성이 높아짐(물론 후보자 개인이 어느 정도 노오력을 했을 때 말이지). 그리고 방계 관계에 불과한 특정 도시권의 말단 지역 여러 개를 묶어놓는 것보다는 도시권 하나를 통째로 묶어놓는 게 더 동질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음. 그리고 현재의 도제 하에서의 광역자치단체는 생활권을 잘 반영하지 못하므로 중대선거구의 획정 기준이 되기 부적합하고, 실질적인 도시권을 반영해야 함. 그리고 그렇게 묶은 도시권별로 인구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 여기서 수도권 견제를 좀 하고 싶다 하면 비수도권에 가중치를 부여한 다음 역시 비례 관계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면 될 거 같음. 한편 선거구를 등록한 다음, 개인을 후보로 등록하여 개인에게 표를 던지느냐, 당 자체를 후보로 등록한 다음 당 내부 명부에 따라 각 당의 당선자를 결정하는가 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전자는 무소속 후보 및 유권자가 원하는 특정 후보에 대한 선택 기회를 보장할 수 있으나 소수정당이나 소규모 지역 출신이 여전히 낙선할 수 있다는 장단점이 있고, 후자는 당에서 작성하는 공천 명부를 통해 소규모 지역 출신 및 소수자대표 등을 당선시키기 쉬워지지만 유권자가 원하는 특정 후보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없고 특정 파벌만 명부에 넣어주는 경우와 같이 당이 공천권을 제멋대로 행사하는 일이 일어나도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장단점이 있음. 후자의 경우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는 듯한데,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도시권에 따라 선거구를 만든다면 중앙선관위가 예전에 제안한 전국 6분구 안보다는 더 쪼개지겠지.

 

물론 지역구의 기저 의석수를 미리 결정해놓고 선거를 치르는 이상, 지역구 당선자가 정당 득표율을 초월해서 생기는 추가의석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음. 애초에 지역구 기저 의석수를 설정 안 해놓고 선거를 한다면 지역구의 당선 범위(몇 등 안에 들어야 당선되는가)가 유동적으로 조절되겠지만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당선자를 어떻게 가리느냐가 매번 혼파망이 될 듯.

 

그래서 지역구를 어떻게 짜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나도 확실한 시안은 안 떠오르지만, 내가 예전에 만든 부 개편 시안과 비슷하게 가는 게 가장 적절할 듯. 수도권에서는 서울은 광명을 제외하면 경기-인천 지역과 합구되지는 않는 것으로 하고 경기-인천은 부채꼴 모양으로 쪼개져 고양지구, 의정부지구, 구리지구, 성남지구, 수원지구, 인천지구가 필수로 생길 것으로 보임. 그리고 비수도권은 대전지구, 천안지구, 청주지구, 전주지구, 광주지구, 순천지구, 부산지구, 창원지구, 진주지구, 울산지구, 대구지구, 포항지구, 안동지구, 구미지구, 춘천지구, 원주지구, 강릉지구, 제주지구가 필수로 생길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서 좀 더 세분화시켜서 몇 개의 선거구가 추가될 수 있을 거 같음. 그리고 취지가 도시권을 반영하잔 것이니 도 경계를 넘나드는 선거구가 있어도 무방한데, 아마 철원은 의정부지구로, 옥천-영동은 대전지구로 무조건 편입시키고, 검토안으로는 제천-단양을 청주지구가 아닌 원주지구로 하거나 고창과 순창을 전주지구가 아닌 광주지구로 하는 안, 또 평창군을 남평창과 북평창으로 분할해 각각 원주지구와 강릉지구로 보내거나 보성군을 보성권과 벌교로 분할해 각각 광주지구와 순천지구로 보내는 안, 용인시를 처인-기흥과 수지로 분할해 수원지구와 성남지구로 보내는 안 등을 검토하게 될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