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NoMatterWhat입니다. 바로 이거 전 글에서 말씀 드렸죠. 발상의 전환은 좋은데 현실성은 챙기자고요. 하지만 댓글에서도 써놨지만 저는 고닥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쨌거나 나름의 근거를 대니까...가 그 이유였는데 한 가지가 더 있어요. 브레인스토밍. 한 번은 들어보셨을 단어죠.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고 모든 의견을 모두 받으면 허무맹랑한 의견에도 일정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사고의 유연성은 경직된 사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이죠. 우리 고닥씨는 좀 너무 갔지만. 암튼 오늘도 그냥 하고싶어서 하는 이야기. 이 상황과 어울리는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는 '영국군 사상 가장 졸렬한 전투' 발라클라바 전투입니다. 

때는 19세기 중반. 세계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체스판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대립은 대영제국과 제정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었습니다. 러시아는 항상 바다로 나가고 싶었고, 이미 전세계의 바다를 호령하고 있던 영국은 자신의 경쟁자를 늘리는 것이 탐탁치 않았죠. 1853년에 일어난 크림전쟁 역시 그 일환이었죠. 이미 죽어가던 오스만 제국의 크림 반도는 러시아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역시나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지만 오스만 제국보다는 강했던;; 러시아에게 존나게 발리고 있었습니다. 선전포고는 오스만 제국이 먼저 했지만-영국의 지원을 믿고-예, 존나게 빌리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국면이 변화한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함대가 참전한 이후였습니다. 아무튼 전쟁은 연합군의 우세로 돌아가는 양상이었지만 그 중에 뻘짓도 있긴 했습니다. 그게 바로 발라클라바 전투죠. 글을 읽기에 앞서, 아래 넣어드린 전투 양상도를 참고해주세요.

빨간 색은 영국군, 회색은 러시아 군. Kamara 앞에 있는 5개는 대포를 나타내는 기호이다. 

우선 비극의 시작은 영국군 장교의 자질에 있었습니다. 우선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레글런 경은 아군이었던 프랑스 군을 적군 취급하던 머저리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 '그' 웰링턴 공작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만... 글쎄요. 그냥 멍청이라는 생각만 드는 인간입니다. 다음으로 기병대 사령관 루컨 경과 지휘관 카디건 경은 둘 사이가 개판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세 인간 모두 전략전술 따위는 밥말아먹은 무능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영국군은 매관매직이 매우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성행했다는 게 과장이 아닌게 매관매직이 합법이었다는 거죠.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지휘부와 본대의 거리가 매우 멀었다는 점입니다. 대략 30분 거리로 떨어져있었죠. 무선전신이 전쟁 상황에 투입되지 않았던 당시에 소통의 부재는 치명적이었죠. 시작부터 영 꼬였던 겁니다.

전투의 시작은 2번이었습니다. 러시아 제국군은 오스만 제국군이 버티고 있던 코즈웨이 언덕을 빼앗게 됩니다. 그 위에는 대포 7문이 있었죠. 전투지역과 떨어져서 지 요트에서 놀고있던 레글런 경은 뒤늦게 달려와 지휘를 시작했죠. 늦게 왔으면 지휘라도 잘 해야할텐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병을 오스만튀르크 군 요새 2열 좌측에 배치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기병대 입장에서는 오스만튀르크 군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이동을 합니다. 저기 세모가 많이 있는 곳이 보이시나요? 원래 그곳이 경기병이 있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곧 이동을 했죠. 지도에 표시된 위치로. 그렇게 이동하면서 가장 ㅈ된 것은 중앙에 위치한 93 하이랜더 부대였습니다. 

650명의 스코틀랜드 보병은 정말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보통 병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병사들의 열을 많이 늘어놓는게 가장 좋지만(기본적으로는 3열이죠), 93 하이랜더 부대는 3열을 짤 병력도 없어서 2줄로 늘어서고 러시아 군과 맞서게 됩니다. 러시아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이들을 보고 'Thin Red Line'이라는 말이 나왔고, 93 부대는 불멸의 명성을 얻게되었지만, 그 명성은 참... 거지같은 과정을 통해 얻게된 거죠. 아무튼.

비슷한 양상은 동시간대에 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총사령관 레글런 경은 중기병대에 '흔들리는 오스만튀르크 군을 지원하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오스만튀르크 군'은 이미 후퇴한 이후였지만 우직한 중기병대 지휘관은 겨우 300명을 이끌고 러시아 기병 4000명에 돌격합니다. 와 시바..... 영국군의 필사적인 돌격에 놀란 러시아군은 패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겨우 1분 거리에 있던 경기병대가 돌격을 했다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겠지만 카디건 경은 명령이 없었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았죠. 패주하던 러시아 군이 슬슬 전열을 정비할 정도가 되었을 때, 총사령관의 명령이 기병대 총 지휘관에게 도착합니다. 러시아 군의 대포를 탈환하라. 아까 빼앗긴 그 대포였겠죠? 그러나 지도의 중앙 정도로 이동한 기병대에게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던 코스웨이 고지의 대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물쭈물하고 있던 루컨 경은 대포 60문으로 사방이 둘러쌓여있는 러시아 군의 본대(노스벨리에 위치한)로 진격을 합니다. 미친 짓거리죠. 아니 님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총과 칼을 들고 기관총이 둘러쌓인 곳으로 달려간다고 생각해봐요. 그게 무슨 개죽음입니까? 아무튼 이렇게 달려나간 경기병들은 20분 만에 50%가 넘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후에 저 미친 짓을 본 동맹국 프랑스와 간신히 사태파악을 마친 총사령관이 지원 병력을 보냈기에 이정도 피해로 족한 거겠죠. 뭐 600명이 1만 1000명에 돌격했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더 용하기는 합니다. 

이제 슬슬 정리를 해 봅시다. 결국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이겁니다. 아무리 절대적으로 보이는 명제가 있더라고 하더라도 일정 정도 의심과 그를 위한 유연한 사고는 중요하다. 어째 아돌프 아이히만와 한나 아렌트가 생각나는데.... 암튼 그렇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