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보성 집에 왔는데 보성 오니까 서울~보성 2시간대 남해안 고속철도 확정 운운하면서 현수막으로 엄청나게 떠들고 있는데... 과연 저 사업으로 인해 보성 지역 철도 교통이 대체 어떻게 바뀌는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철도 고속화에 대해 지역민 입장에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크게 2가지임.

1. 새로 만들어지는 역은 기존 중심가와 멀어지는데, 이로 인한 수요 이탈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2. 기존에 열차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가?


일단 1번에 대해 논하자면, 당장 수요가 비교적 많은 보성역조차도 이설이 확실시돼있고, 그 위치는 우산리 현촌마을 앞으로 보임. 한편 경전선은 열차가 매우 적게 운행하며, 광주 시내 철도 이설의 여파로 구도심 접근이 불편해져서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데, 그래도 좌석이 편하고 시외버스보다 요금이 많이 싸서 싼 맛에 타는 사람이 조금은 있기에 아직까지 일 평균 탑승객이 100명 이상 나오고 있음. 또 보성은 옛날부터 철도가 있었던 곳으로서 나이 지긋한 분들은 예전에 기차를 주로 타고 다녔었고, 역이 읍내 정중앙에 떡하니 자리잡고있으며 역 앞엔 광장도 있고 보성 들어오는 군내버스들이 전부 보성역을 거치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동네에 철도가 있다' 정도는 모두 알고 있음.

근데 이 상황에서 역이 읍내 바깥으로 쫓겨난다는데, 그럼 편하고 싼 맛에 기차를 타러 가던 사람들이 과연 기차를 타러 갈까? 안 그래도 노인들 많은데 노인들 역에 걸어가다가 지치겠다(...). 보통 이런 문제는 군내버스를 경유시키는 방식으로 조치를 해놓는데 농어촌버스 특성상 배차시간대가 좀 걸리고... 하동 같이 아예 버스터미널을 역 앞으로 옮겨버리면 시외버스가 기차랑 똑같은 위치에서 경쟁을 해야 하므로 그나마 나을 순 있겠는데 이 정도 되면 버스터미널까지 좆같은 데다 옮겨놓냐고 극심한 반발이 일어날 수가 있음. 또 광주행 같은 경우는 어차피 '북문정류소'가 있어서 터미널을 이전해봤자 타격이 비교적 작음. 그래서 신 경전선 여객 수요의 향방에 한 축을 자리잡을 것임.


2번에 대해 논하자면, 기존에 여객수요가 저조한 곳에 억대 예산을 때려부어서 고속화를 시키는데, 광주<->순천, 광주<->부산, 서울<->보성 같은 장거리 구간에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어 이득을 볼 수도 있으나, '그럼 기존에 무궁화호 타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직 준고속열차 운행 확정 안 난 동네도 면단위 역들은 다 뒈짖뒈짖시키고 있는데, 그런 상황이 바로 지역민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 볼 수 있음. 보성도 충분히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고. 1학기 정기답사 갔을 때 영주역을 잠깐 들렀는데 교수님마저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셨었음. 근데 아직 '장거리 수요'의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판에, 이왕 선로를 깔아놨으니 지역민들 수요 싹싹 긁어다가 기존처럼 지역수송도 병행하는 게 마냥 나빠 보이진 않는다? 심지어 득량, 예당, 조성에서는 '유일한 광주행 직통 교통수단'이고, 득량면과 조성면 인구 합치면 보성읍 인구랑 거의 비슷해지기 때문에 나름대로 수요 긁어먹을 수 있을 거 같음. 그래서 기존 지역수송도 병행하느냐에 대한 것도 나름 지역에서 말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음.


근데 이 문제들을 간과한 채 그저 '우와! KTX 들어온다!' 이러면서 마냥 쾌재만 외치고 계시는 우리의 보성 아재들... 뭐 사업이 진척되다 보면 열차 운행에 대해 공론화가 될 순 있겠으나... 일단 역을 짓느냐 마느냐부터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 확실히 지역민들에게 알 권리와 의견 제시 권리가 주어지고, 가능하면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허울 있는 대중교통이 될 수 있도록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생각함.


내가 팔로우하는 모 지역언론 SNS 채널에서 내가 강조하는 게 뭔지 앎? '여객철도는 선로만 보고선 좋은 교통수단인지 판단할 수 없다'임. 단순히 고속 선로 깔린다는 사실만으로 좋아하지 말고, 역이 어디에 어떻게 지어지고 열차는 몇 시에 어디서 어디로 운행하며 정차하는 역은 어디인지 등을 다 따져봐야 한다는 소리. 선로만 좋다고 좋아하는 건 그저 눈 가리고 코끼리 만지고 코끼리 이렇게 생겼다며 병림픽하는 꼴. 이게 오송역 빠는 청사모 사고방식이랑 겹쳐보임...


지역민으로서 지역에 새로 들어오는 철도가 지역민들도 가능한 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글 좀 싸질러봤음.